살다보면 어떤 때는
그냥.. 아무런 책도 읽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책장을 바라보면 마음 한쪽이 무겁고,
손끝이 움직이지 않는다.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는데,
이상하게도 눈은 글자를 밀어내고,
머리는 이유 없이 멍해진다.
나는 그 시간을 오래 견뎠다.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책을 펼치는 일이
마치 숙제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읽기 싫다’는 감정이 처음 찾아왔을 때,
나는 그걸 게으름으로만 치부했었고
“요즘 내가 나태해졌나 보다.”라고 스스로를 다그치기만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마음이 제자리를 찾지 못해 내는 신호였다.
그때 나는 일과 관계에 지쳐 있었다.
사람의 말보다, 숫자와 계획표 속에서 살던 시기였다.
퇴근하면 머리는 피곤했고,
생각을 정리하기보다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멈추고 싶었다.
책은 여전히 내 곁에 있었지만,
그런 나날들 속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며칠을 그렇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장 가장 아래에 꽂혀 있던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표지 색이 바래 있었고, 모서리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그 책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냥 별생각 없이 꺼내 들고,
책상에 앉아 첫 페이지를 펼쳤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순간에도
읽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없었다.
그냥 ‘이 책이라면 무언가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라는
막연하고도 미미한 작은 기대감 하나였다.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됐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은,
사실 마음이 조용히 회복 중인 날이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손끝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마음 한가운데서 무언가가 ‘뭉클’ 하고 울렸다.
참..이상했다.
그 문장은 단 한 줄이었는데,
그 한 줄이 나를 멈추게 했다.
책을 읽고 싶지 않던 내 마음이
그 한 줄로 인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회복의 시간이라니.’
그 말은 나를 이상하리만큼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나는 늘 뭔가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생각 속에 살았다.
읽어야 하고, 성장해야 하고, 노력해야 했다.
그런데 그 한 문장은
그 모든 ‘해야 한다’의 긴장을 살짝 풀어주었다.
책을 덮지 못하고,
몇 번이고 같은 문장을 다시 읽었다.
그랬더니 그 한 문장이 나를 천천히 끌어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책을 읽을 때 더 이상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몇 쪽을 읽을까’, ‘이번 달엔 몇 권을 읽을까’
그런 숫자에 집중하는 것 보다는,
그날 마음이 가는 문장 한 줄이 내 마음 가운데 스며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자
다시 책이 읽히기 시작했다.
책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는데,
문제는 책이 아니라 내 마음의 상태였다.
책을 읽기 싫을 때 우리는
종종 자신을 나무란다.
하지만 그 시간은 어쩌면
책과 나 사이의 숨 고르기 시간이 필요해서 일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읽기 싫다는 감정은,
책을 밀어내는 게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다시 돌아보는, 그런 초대하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그날 이후,
나는 책을 읽지 않는 시간도
‘독서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읽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 시간 동안 마음은 조용히 회복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읽기 싫을 때 선택한 그 책은
결국 나를 다시 책 속으로 데려왔다.
읽는다는 건 단지 글자를 따라가는 일이 아니라,
나를 회복시키는 문장과 다시 만나는 일이라는 걸
그날 알게 되었다.
그래서 책을 읽고 싶지 않은 날이
이제는 두렵지 않다.
그건 마음이 쉬고 싶다는
작은 신호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날 이후 나는 책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다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책을 ‘읽는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면,
이제는 책과 대화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 것이다.
책 속 문장을 따라가면서도
내 마음이 그 문장을 받아들이는 속도를 살피기 시작했다.
읽는 속도가 아니라 느끼는 속도에 집중한 것이다.
어떤 날은 한 페이지도 채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의 나는
그 한 페이지로 충분했다.
읽은 분량보다 남은 감정의 잔향이 더 컸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
이제는 ‘얼마나 읽었나’보다
‘어떻게 읽었고, 무엇이 내 마음에 남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책을 덮고 나면
내 안에 조용히 남는 문장이 있었다.
그 문장이 마음에 오래 머물면,
그날의 독서는 그걸로 끝이었다.
책 한 권을 다 읽지 않아도,
나는 이미 충분히 읽은 셈이었다.
읽기 싫었던 시절을 지나오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독서’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책을 더 이상 어떠한 달성해야 되는 수치치적으로, 혹은 그 달성한 수치로 내 자신을 평가하는 도구가 아니게 된 것이었다.
얼마나 빠르게 많이 읽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이해했는지,
그런 수치로 재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내가 얼마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내 자신과 가까워졌는가가
나만의 독서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
이제 나는 책을 고를 때
이상한 기준을 하나 두게 되었다.
“지금의 내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예전엔 ‘읽어야 할 책’을 골랐다면,
지금은 ‘읽힐 수 있는 책’을 고른다.
내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이 나를 읽어주는 느낌이 드는 책을 말이다.
이상하게도 그런 책들은
항상 내 마음이 약해져 있을 때 내 눈에 밟히고 시선이 갔다.
그때마다 그 책은 조용히 내 옆자리에 앉아
내 이야기를 대신 말해주었다.
읽는 내내,
책이 나를 위로해 주거나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해 주거나
미처 깨닫지 못한 것들에 대한 깨달음을 주기 시작했다.
때론 마치 나를 잘 이해하는 친구처럼,
때론 나의 성장을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스승처럼,
때론 아무말 없이 나와 함께 해 주고 내 마음을 헤아려 주는 동반자처럼
때론 묵묵히 나를 어둠 가운데서 밝은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는 목자처럼 말이다.
….
한 번은 카페에서 우연히 펼친 책 한 권이 있었다.
그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책을 읽을 수 없을 때 조차,
당신은 이미 책 안의 스토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 문장을 읽고 한참을 멈췄다.
그 말이 내게 너무 명확하게 다가왔다.
그동안 내가 책을 멀리했던 시간조차,
사실은 내 인생의 한 챕터였다는 걸 깨달았다.
책을 읽지 않았던 날들조차,
나는 여전히 삶이라는 책의 한 구절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 깨달음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책이 읽혀 지지 않는 나’ 닥달하거나 ‘책을 안 읽는 나’를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책을 읽지 않는 나도 여전히
이야기 속에 있는 ‘진행형의 나’였으니까.
이런 생각을 하자
읽는다는 행위가 훨씬 자유로워졌다.
예전에는 책을 통해
정답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책을 통해
질문을 배우게 되었다.
그게 더 깊은 독서가 아닌가 싶다.
답을 찾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묻는 법을 배우는 독서‘ 말이다..
시간이 지나고…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묘한 평화를 느끼게 되었다.
활자를 따라가며 생각이 조금씩 정돈되고,
그 안에서 내 감정의 결이 보였다.
읽기 싫었던 시간은
결국 나를 다시 읽게 만드는 시간이었구나.
그걸 깨닫는 순간,
그동안의 ‘공백’이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졌다.
책과 나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 다시 좁혀졌다.
이전보다 느리지만, 훨씬 깊어졌음을 느낄 수있었다.
읽지 못했던 시간들이
결국엔 나와 책과의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던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책을 읽지 않는 날에도 메모를 남기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책 대신 내 마음의 상태를 기록했다.
“오늘은 아무 글귀도 읽히지 않았다.”
“마음이 피곤하고 지친다”
“그래도 내일은 조금 나아질 것 같다.”
그 기록들이 쌓이자
책을 읽지 않은 날들이
하나의 ‘내면 일기’가 되었다.
책을 읽는다는 건
결국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걸
조금 늦게 깨달았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책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말을 걸기 위해
다시 독서를 시작했다.
이제 책을 읽는다는 건
성장을 위한 의무가 아니라,
삶을 회복하는 작은 의식처럼 느껴진다.
읽고 싶지 않은 날조차
그 마음을 부정하지 않고,
그 마음을 품은 채로 책을 펼친다.
그게 나에게는
가장 인간적인 독서의 형태였다.
………..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하루는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문득 예전처럼 가방 속에 책을 넣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을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책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좋아서였다.
그날 밤, 오랜만에 책을 꺼내어 표지를 쓸어보았다.
손끝에 닿는 질감이 묘하게 따뜻했다.
이건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마치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나의 한 조각처럼 느껴졌다.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책을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책을 사랑한다는 게
많은 책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책을 사랑한다는 건,
책이 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게 허락하는 일이라는 걸..
책과 나 사이에는 늘
‘의무감’이라는 벽 같은게 있었다.
그 벽은 늘 나를 버겁고 지치게 만들곤 했다.
읽어야 한다, 습득해야 한다.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 벽이 사라지자
책은 다시 친구처럼 다가왔다.
이제는 책을 통해 배우려 하기보다
그냥 책 옆에 머물러 있으려 한다.
어떤 날은
책을 펼쳐놓고 한 페이지도 읽지 못했다.
그저 책 옆에 커피잔을 두고 앉아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 참 좋게 느껴졌다
때론 책은 말을 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친구 같았다.
아마도 그건
‘읽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마음이 자리 잡고 나서부터
독서가 다시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책은 나에게 더 이상 ‘지식’이 아니라,
감정의 언어였다.
읽는다는 건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내 마음에 옮겨 담는 일이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된 것이었다.
어느 날에는 책 속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삶을 잠시 빌려 사는 일이다.”
그 문장을 읽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말은 너무나도 마음에 와닿았다.
책 속의 문장들은 누군가의 체험이자 자신이 경험한 것을, 느낀 것을, 깨달은 바를 다른 누군가도 경험하기를, 그리고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라는 염원이 담긴 것인 줄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깨닫게 되자
독서는 더 이상 혼자의 일이 아니었다.
그건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대화였다.
이후로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그 문장을 쓴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이 문장을 썼을까.
그 마음이 내게 와 닿을 때,
나는 그와 보이지 않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읽는다는 건
결국 마음을 옮겨 심는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변화는
내 일상에서도 조금씩 드러났다.
대화 중에도,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어딘가 모르게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배운 건 문장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법이었다.
활자 속에 담긴 감정의 결이
사람의 마음에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 후로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분석이나 판단보다 ‘멈춤’을 먼저 배우게 되었다.
책을 읽듯,
그 사람의 마음을 천천히 읽으려 했다.
책을 사랑하게 되면서
나는 나 자신과도 조금 더 가까워졌다.
예전에는 내 감정을 분석하려 애썼지만,
이제는 그냥 그 감정이 지나가도록 둔다.
책이 내게 알려준 건
감정을 이기려 하지 말고,
그 감정을 ‘읽는 법’이었다.
하루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책은 내게 언어를 주지 않았다. 대신 마음의 여백을 주었다.”
그 문장을 쓰고 나서
나는 비로소 알았다.
책을 읽지 못하던 그 시절이
결국 내 마음을 비워내는 시간이었다는 걸.
책을 사랑한다는 건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일과 닮아 있었다.
나를 몰아붙이지 않고,
그저 오늘의 속도로 살아가는 것.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깨달음은,
성장은 ‘채움’이 아니라 ‘여백’을 배우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 후로 나는
책을 덮는 순간에도 독서는 계속된다고 믿게 되었다.
활자 너머의 침묵,
그 안에도 이야기가 있었다.
그렇게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뒤,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예전에는 ‘해야 할 일’과 ‘끝내야 할 목표’로 세상을 보았다면,
지금의 나는 세상을 더 ‘아직 써내려 갈 것이 있는 여백이 있는 이야기’처럼 세상을 본다.
모든 일이 하나의 장면 같았다.
좋은 날도, 힘든 날도,
그날의 문장이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다.
그 생각 하나가 내 하루를 조금 다르게 만들었다.
책을 다시 사랑하게 된 이후,
나는 신앙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이전엔 말씀을 ‘공부’하려 했다.
무언가를 이해하고, 정리하고, 기억해야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책 속의 한 문장이 나를 바꿔놓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말씀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초대입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성경을 ‘지식’으로 읽을 수 없었다.
그건 하나님의 마음이었고,
내 일상으로 흘러들어야 할 언어였다.
그 이후로 말씀을 읽는 시간은
‘공부’가 아니라 ‘대화’가 되었다.
마치 책과 이야기하듯,
하나님과도 그렇게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부터 신앙이 다시 따뜻해졌다.
내가 책 속에서 배운 ‘읽는 법’이
기도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던 것이었다.
기도도 책 읽기와 닮았다고 느껴졌다.
억지로 말하려 하면 막히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내어놓을 때
마음이 열린다.
책의 문장이 나를 다독이듯,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을 천천히 어루만지셨다.
그때 깨달았다.
‘읽기 싫다’는 감정은
하나님이 내게 잠시 멈추어 마음을 회복하라고 하신 신호였다는 걸.
그 시절의 공백이,
사실은 가장 깊은 영혼의 쉼표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책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이야기는 멈춤을 통해 완성된다.”
그 말은 내 신앙의 문장이기도 했다.
하나님은 언제나 멈춘 자리에서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셨으니까.
이제는 성경 말씀을 읽을 때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한다.
인간의 언어를 통해 말씀하시고,
평범한 문장을 통해 위로하시는 그분의 손길을 느낀다.
…..
책은 신앙의 거울이 되었다.
나는 책을 통해 하나님이 쓰신 다른 사람의 삶을 읽는다.
그리고 그 삶을 통해
내 이야기도 다시 읽게 된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책과 신앙이 맞닿자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말 속에서 ‘틀림’을 먼저 찾았다면,
이제는 그 말 뒤에 있는 ‘이유’를 듣게 된다.
책이 가르쳐준 것은
판단보다 경청을 먼저 하게 되는 지혜였다.
책 속 문장은 언제나 단정하지 않았다.
그건 완결된 해답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질문은 믿음의 반대가 아니라,
믿음의 언어라는 걸 책이 가르쳐주었다.
하나님도 때로는 대답 대신
우리에게 질문으로 다가오시는 것 같았다..
또 때로는 이렇게 책을 읽는다는 건 이렇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세상을 대하는 시선에
조용한 여백을 주는 일처럼 말이다
누군가를 판단하려는 순간,
그 문장이 내 마음을 잡아 끈다.
“모든 일을 조급하게 단정하지 말라.”
그 말처럼,
사람의 인생도 중간에 멈춰봐야 보인다.
그걸 안 이후로
나는 관계 속에서도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책은 내게 삶의 속도를 다시 가르쳐주었다.
예전의 나는 늘 서두르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 문장을 오래 바라본다.
그 문장 안에 내가 있고,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이게 이 글의 핵심이자,
내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읽기 싫은 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건 내 영혼이 쉼을 배우는 날이다.
그 시간 동안 하나님은
또 다른 책장을 조용히 넘기고 계실 테니까.
이제 책을 덮는 일조차
하나의 예배처럼 느껴진다.
읽지 않아도, 그 문장은 내 안에서 계속 쓰이고 있다.
내가 멈춰 있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계심을 지금의 나는 믿는다.
…
이렇듯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뒤,
내 하루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건 거의 같았지만,
그 안을 살아내는 마음의 리듬이 달라졌다.
예전엔 늘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 버거웠다.
하루를 다 채워도 늘 모자랐고,
쉬는 시간조차 ‘비효율적’이라 느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책을 덮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이 여백도 문장의 일부일지 몰라.”라고 말이다.
그 이후로 나는
‘빈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건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문장이 자라나는 시간이었다.
..
책을 통해 배운 건 단지 생각의 확장이 아니었다.
그건 시간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였다.
예전엔 늘 ‘결과’를 향해 달렸지만,
이제는 ‘흐름’을 느끼며 걷는다.
책을 읽듯,
하루도 한 문장씩 천천히 이해하고 싶어졌다.
이 변화는 일의 방식에서도 드러났다.
예전에는 해야 할 일을 쌓아두고
끝낼 때까지 불안해했다.
하지만 지금은 잠시 멈추는 법을 배웠다.
잠깐 커피를 마시며,
책 한 문장을 다시 떠올린다.
그 짧은 순간에도
마음의 결이 정돈된다.
그리고 책을 통해 알게 된 건
일의 성과보다 방향의 중요성이었다.
책 한 권을 다 읽지 않아도,
그 안의 한 문장이 방향을 잡아주듯이.
삶에서도 모든 일을 완벽히 끝내지 않아도,
하나의 올바른 마음이
그날을 충분히 의미 있게 만든다는 걸 배웠다.
이와함께 책을 읽으며 생긴 또 하나의 변화는 ‘관계’였다.
예전엔 대화를 하면서도
내가 할 말을 미리 생각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마음속에서 답변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책을 다시 읽으며 알게 되었다.
좋은 대화는 읽기와 같다.
먼저 듣고, 이해하고, 그다음에 반응하는 것.
그 후로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문장’을 떠올린다.
이 사람의 삶에도
지금은 읽히지 않는 문장이 있겠구나,
그걸 기다려주는 마음이 생겼다.
이건 내게 아주 큰 변화였다.
책이 내게 가르쳐준 건
‘지식’이 아니라 ‘인내’였다.
책은 늘 조용하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깊은 경청이 있다.
그걸 배운 이후로,
나는 사람의 말에서도
‘침묵의 의미’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삶의 속도가 조금 느려졌지만,
그 느림은 내게 평화의 공간이 되었다.
책을 읽지 않았던 시절이
이제는 부끄럽지 않다.
그건 내 삶의 쉼표였고,
그 쉼표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
요즘 나는 책을 읽을 때
메모 대신 기도의 마음의 글귀를 남긴다.
문장 옆에 이렇게 적는다.
“이 말이 내 삶에서도 진실되게 삶으로 나타나게 하소서.”라고 말이다.
이건 단지 문학적 감상이 아니라,
삶을 살아내려는 고백이었다.
책이 내 신앙의 언어로 스며든 것이다.
어떤 날은,
책을 덮고 나면 기도문이 흘러나온다.
“주님, 제 마음이 닫힐 때마다
당신의 저를 향한 삶의 메시지를 보게 하소서.”
그 기도는
내가 책을 통해 배운 ‘읽는 법’을
삶에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살기 시작한 뒤로
마음이 덜 흔들렸다.
불안이 오면
책 한 구절이 떠올랐다.
“조급해하지 말라.
모든 문장은 읽는 이의 속도로 완성된다.”
그 하나의 글귀가 내 하루의 호흡을 정리해주었다.
이제 내 삶에서 책은
‘행동’이라기보다 ‘호흡’에 가까워졌다.
책을 읽지 않아도,
그 문장들이 내 일상 속에 녹아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의 첫 생각은 “오늘은 어떤 마음으로 삶을 읽어 나갈까?”였다.
책을 펼치지 않아도,
사람을 보고, 일을 하며, 대화를 나누며
나는 여전히 ‘나의 삶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또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보고서를 쓸 때도,
책에서 배운 리듬을 떠올렸다.
글자 사이의 여백처럼,
사람 사이에도 ‘숨’이 필요하다는 걸 배웠으니까.
그래서 회의 중에도
서두르기보다 잠시 멈추었다.
누군가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일,
그건 예전의 나였다면 못 했을 일이다.
책이 내 안에 심어준 건
느림에 대한 용기였다.
책을 읽으며 배운 건
결국 ‘속도의 전환’이었다.
세상은 언제나 빠름을 요구하지만,
책은 언제나 속삭인다.
“조금 느려도 괜찮아.”라고 말이다.
그 말은 단지 문장의 리듬이 아니라,
삶의 박자였다.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하루가 조금 더 여유로워졌고 또 넓어졌다.
이 느림은 관계에서도 드러났다.
예전에는 대화를 마치기 바빴지만,
이제는 상대의 말 한마디를 오래 곱씹는다.
그 말의 의도보다
그 말 뒤에 있는 마음을 읽으려 한다.
책이 내게 알려준 건
‘문장을 읽는 눈’이 아니라,
‘사람을 마음을 이해하려는 마음의 눈’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신앙 안에서도 이 느림은
깊은 의미로 이어졌다.
예전에는 하나님의 응답을
빨리 듣고 싶어 조급했다.
하지만 지금은
기도의 침묵조차 하나의 문장으로 느껴진다.
“하나님은 때론,
침묵 속에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말씀하신다.”
그 깨달음이 찾아온 이후로,
나는 침묵 시간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기도가 막혀도,
그건 완전한 멈춤이나 절망의 상태가 아니라 잠시 쉼이 필요한 순간의 문장의 여백일 뿐이니까…
책을 통해 배운 건,
하나님의 말씀은 꼭 성경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때로는 세상 속의 문장,
누군가의 고백,
심지어 실패담 속에서도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이 쌓이자,
삶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완벽’을 추구했지만,
지금은 내 삶을 향한 ‘진심’을 추구한다.
책 속 문장이 완벽하지 않아도 아름답듯,
사람의 삶도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삶을 대하는 진심은 빛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작은 일에도 감사가 생겼다.
책 한 권을 얼마나 빠르게 읽느냐 보다,
책 한 문장을 내 마음에 새기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이제 책을 읽는다는 건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돌보는 일’이 되었다.
책의 문장들은 내 마음의 정원에 심긴 씨앗 같았다.
때로는 자라지 않는 듯 보이지만,
언젠가 조용히 꽃을 피우게 된다.
그 꽃이 피는 순간은 언제나 예상 밖이었다.
누군가를 위로할 때,
문득 떠오르는 문장 하나가
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책을 읽기 위해 책을 펼치지 않는다.
그저 내 안의 조용한 하나님을 다시 만나기 위해
책을 펼친다.
읽기 싫었던 그 시절이 없었다면
이 평안을 몰랐을 것이다.
그 시간은 신앙의 공백이 아니라,
신앙의 뿌리가 자라던 시간이었다.
가끔은 생각한다.
“읽기 싫었던 그날의 내가
책을 다시 펼치게 될 줄 알았을까?”
아마 몰랐을 것이다.
그날은 단지 버티는 하루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그 하루가, 그 공백이,
모든 변화를 준비하던 시간이었음을.
그래서 이제 나는
책을 읽지 못하는 날이 와도 괜찮다.
그날도 여전히
하나님은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계시니까.
내가 잠시 멈춰 있을 때에도
그분의 문장은 멈추지 않으심을 이제 나는 믿는다.
오늘도 책을 펼친다.
무슨 내용을 읽을지는 모르지만,
그 안에 분명 내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 난 믿는다
그리고 하나님이 쓰고 계신
내 인생의 다음 문장을
조용히 따라 읽는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읽기 싫었던 그날이,
결국 나를 다시 읽게 만들었고
내가 멈춰 있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내 삶 속에서 나를 향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써 내려가고 계시고
언젠가 내가 그 이야기를 조용히 읽으며
그 분이 나를 향한 마음을 이해하고 느끼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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