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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나답게 살기 위한 가장 조용한 결심

처음 『미움 받을 용기』를 읽었을 때를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큰 사건이 있었던 날보다 조용한 밤에 가까웠다..

마음이 어수선한 시기였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누군가와 갈등을 겪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어떤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었고,
남들과 분쟁 없도록 그리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욕 먹지 않고 미움 받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설정해 놓은 내 자신에 대한 행동의 규제 같은 것들은 살아가는 동안에 당연히 필요한 디폴트 값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 책이 나에게 던진 첫 번째 충격은 그 문장이었다.
“누군가에게 미움받기 싫다면, 결국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

처음엔 이 글귀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남에게 미움 받기 싫다는 마음이 나쁜건가?
무례하지 않는 선을 지키고,
예의를 지키며,
관계를 유지하려는 게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하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그 문장이 조금씩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랑받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미움받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 속에 갇혀 있던 내 모습이 보였다고 해야 할까…

호의를 베푸는 것과 상대의 기대치,
상대의 요구 기준에 맞춰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데
나는 그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그동안 “나는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살았지?”라고 스스로에게 자주 묻던 순간들이 한꺼번에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느꼈던 피로는 ‘일’에서 온 것이 아니라 ‘시선’에서 온 것이었다.
책은 그 시선을 끊임없이 해체해 나간다.
어떠한 것들이 나의 과제인지, 타인의 과제인지 다시 묻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단순한 질문이 내 삶의 여러 장면을 다시 불러냈다.
가족 안에서, 직장에서, 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보다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내가 남에게 민폐 같은 존재는 아닐지,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 긴장감’
나도 모르게 이런 것들을 먼저 신경을 쓰는 타입이었다.

그런 습관이 오래되면 난 원래 그런 성향의 사람인 것처럼, 또는 성격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선택의 반복일 뿐이라는 걸 책은 조용히 말해 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이 내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든 부분은 ‘용기’라는 단어를 아주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는 대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어떤 명확히 보여지는 사건의 행동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회사를 그만두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관계를 정리하는 선택처럼 말이다
하지만 책이 말하는 용기는 좀 더 조용한 방향을 가리킨다.

‘오늘부터, 지금 이 자리에서, 나답게 살기로 결심하는 것.’

그 순간은 겉으로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스스로도 큰 변화라고 느끼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삶의 방향을 바꾸는 시작이 된다


어느 날 밤에 책을 읽다가 문득
특별한 장면이 아니었는데도, 마음속에서 방향 하나가 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기보다, 내 삶의 초점을 나에게 다시 돌려야겠다.’
그 조그마한 문장을 속으로 중얼거리는 동안,
마치 오래 잠겨 있던 무언가가 천천히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사실 인간이 타인의 시선을 완전히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
책도 그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시선을 기준으로 살아갈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이 차이가 삶의 밀도를 바꾼다는 걸, 읽고 나서 시간이 흐를수록 더 실감하게 된다.

내가 이 책을 다시 꺼내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알고 있는 문장들이더라도,
삶에서 조금만 균형이 흐트러지면
그 지혜가 다시 필요해진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인간관계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누군가의 기대에 무조건 맞추는 게 친절이 아니라는 것,
거절하는 것이 때로는 상대를 존중하는 방식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내 삶을 책임질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명확한 기준은
‘내 과제를 내가 감당하는 것’이라는 점을 조금씩 체득했다.

그런 변화는 거창하지 않다.
하지만 하루의 방향을 바꿀 만큼은 충분하다.
그리고 방향이 바뀌면 결국 도착하는 곳도 달라진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상하게도 ‘어른이 되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깨달은 것 같다.

마음의 독립이라는 건 생물학적 나이와는 별개로 찾아오는 순간이었고,
사실은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내 삶의 기준에서 슬며시 내려놓는 일’과 닮아 있었다.

어떤 관계에서는 그게 훨씬 어려웠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일수록,
그리고 마음이 깊게 엮여 있을수록 더 힘들었다.
‘여기까지가 내 과제다’라는 선을 그어야 하는데
그 순간에 오는 죄책감 같은 게 있었다


책에서는 이를 ‘과제의 분리’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삶에 적용하려 하면 단순한 이론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감정이라는 건 그렇게 반듯한 직선이 아니라서.
나는 그 부분에서 오래 붙들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책이 그 죄책감을 공감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네가 느끼는 그 불편함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는 듯했고,
중요한 건 불편함을 없애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을 넘어서는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아주 작은 시도들을 해보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부탁을 받았을 때
정말 하기 싫으면 거절하는 연습.
정중하게 설명하되, 불필요한 사과를 덧붙이지 않는 연습.
혹은 누군가의 기분을 ‘내가 관리할 책임’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연습.

이 작은 시도들이 쌓이면서
조금씩 마음의 힘이 생겼다.

뭔가를 거절하는데 죄책감을 덜 느끼게 되었고,
누군가가 살짝 불편해하는 얼굴을 하더라도
그게 반드시 ‘나 때문’이라고 단정짓지 않게 됐다.
사람은 각자의 감정을 갖고 사는 존재라는
단순한 사실이 어느 날 문득 선명해지기도 했다.

한 번은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그날 나는 큰 결정을 앞두고 있었고
회사 오너를 포함해서 주변에서 여러 의견이 쏟아지던 중이었다.
평소 같으면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꽤 많이 의식했을 텐데
그날은 조금 달랐다.
머릿속에서 책의 문장이 떠올랐다.

‘나를 좋아해 달라는 요구는 결국 상대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내가 판단하는 기준에서
“저는 이 방식이 더 맞다고 느낍니다”
라는 말을 비교적 담담하게 꺼낼 수 있었다.
손이 약간 떨리긴 했지만
그 떨림보다 더 분명한 것이 있었다.
말을 내뱉고 난 뒤 찾아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상한 평온함 같은 것.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볼지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한 자리로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들러의 말이 단순한 명언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바꾸는 관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책임져야 할 경계’를 아는 태도라는 점에서..

그러다 보니 관계의 밀도가 달라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여백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여백이 있을 때 오히려 더 깊어지는 순간들이 찾아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친밀함이라는 게
서로를 꽉 붙잡고 있어야 생기는 줄 알았는데,
조금씩은 떨어져 서 있어도
마음이 닿아 있을 수 있다는 걸 배운 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공동체 감각’도 처음엔 잘 이해되지 않았다.
너무 추상적인 개념 같았고,
내 삶과 딱 맞게 들어오는 부분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타인을 경쟁자가 아니라 동료로 바라보는 시선,
비교의 언어보다 연대의 언어가 편안해지는 마음.

이게 바로 공동체 감각이라는 것을 말이다


예전의 나는 사람들과 비교하며
내가 조금 더 뒤쳐져 보이는 순간마다
이상한 압박감이나 상대적 허탈함이 밀려오곤 했다.
누군가가 잘되는 모습을 보면
축하하는 마음 한편에
‘왜 나는 저 사람처럼 아니 저 사람 보다 더 노력을 했는데 왜 나는 제자리를 맴도는 것 처럼 느껴지는 걸까’라는 삶의 피로와 낙심을 많이 느꼈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시간이 흐른 뒤
그 감정의 구조가 조금 바뀌었다.
타인의 성취를 도둑질해서
내 마음에 들여놓는 일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냥 “그 사람의 성취는 그 사람의 삶에서 일어난 일”로 남겨두는 것.
그리고 “내 삶에서는 아직 안 일어난 것 뿐이고 지금 나는 어떤 일을 해볼 수 있을까”에
관심의 방향을 두는 것이었다

그 작은 변화가
관계의 기쁨을 되찾게 해줬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전에는 왜 이렇게 살지 못했을까 싶은 순간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미움 받을 용기』는 나에게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준다기보다
‘나를 대하는 태도’를 바꿔준 책에 가까웠다.

타인의 시선에서 나를 해방시키는 일은
결국 나를 내 인생의 자리로 데려오는 과정이었다.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느라 내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던 것을
조금씩 되찾아가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으려고
아주 열심히 조심해온 사람들에게
이 책이 유독 깊게 닿는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뒤
이미 작지만 꽤 많은 시도의 노력들을 통해 인생의 방향을 수정해 왔다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시선을 옮기는 방식,
말을 꺼내는 방식,
침묵을 선택하는 방식,
그리고 마음을 들여다보는 방식까지.

이 책을 읽기 전과 후의 나는
겉으로는 비슷했지만
조금 다른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서, 나는 이 책에서 너무 평범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던 문장이 어느 순간 내 마음에 더 오래 머물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행복이란 ‘지금 이 순간의 삶’에서 느끼는 것이다.”

처음엔 너무 평범하고 단순해서 깊게 와닿지 않았던 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길에, 지하철 창밖으로 흘러가는 검은 하늘을 보면서
문득 그 글귀가 무심코 다시 떠올랐고
이상하게도, 그날은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들렸다.

행복을 미래의 어떤 사건으로 밀어두고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길었던가.
‘다음 달쯤 더 여유가 생기면’,
‘프로젝트가 끝나면’,
‘올해만 지나면’,
이런 식의 마음가짐으로 현재를 유예하며 살아왔다는 걸 실감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기다렸던 건 행복이 아니라
‘완벽한 상태’였다는 걸 말이다

아무 걱정도 없고,
해야 할 일도 다 끝나 있고,
모든 사람이 나를 이해해주고,
내 선택을 지지해주는 그런 상태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날은 아마도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오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불완전한 삶 안에서 조용히 행복을 발견하는 일이
사실은 훨씬 더 현실적인 방식일 것이다

책이 말하는 것도 결국 이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시선을 기준으로 삼으면
행복은 끝없이 미래로 밀려나고
나의 기준으로 하루를 살기 시작하면
행복은 지금 이 자리로 돌아온다.

이 단순한 전환이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침을 조금 다르게 맞이하기 시작했다.
출근 시간에 쫓기면서도
커피 한 모금 넘기며
“지금 괜찮다”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 순간이 생겼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내가 느끼는 하루의 온도가 달라졌다.

이런 변화를 말로 설명하기는 조금 어렵지만
삶을 살아내는 리듬이
조금 더 느긋해지고
조금 더 단단해지는 감각에 가까웠다.


그러던 어느 날,
꽤 가까운 친구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요즘 너, 뭔가 좀 편안해진 것 같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을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내가 바꾸려 했던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부의 긴장을 풀어내는 일이었는데
그 변화가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사실이 낯선 동시에
감사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아마도 그때쯤부터였던 것 같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제목을 다르게 읽기 시작한 건.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라기보다
내 삶을 내가 선택하는 용기,
그 선택으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의 파도를 피하지 않는 용기,
그런 의미로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시선이 겁날 때가 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하지만 마음은 쪼그라드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런 감정이 올라온다고 해서
나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 아직 이런 마음이 드는구나.”
라고 가만히 바라보며 넘어가는 것.
그 작은 태도의 변화가
마음의 무게를 한층 가볍게 해주었다.

책이 말하는 ‘용기’는 거창한 게 아니다.
내 감정이 완벽하지 않아도
삶의 방향을 내가 잡아보려는 태도에 가깝다.
감정이 따라오지 않는 날에도
작은 한 조각의 의지로
‘그래도 오늘은 이렇게 살아보겠다’ 하는 마음.

그게 용기라면
우리 모두 이미 여러 번 용기를 낸 적이 있는 셈이다.
그저 그 사실을 스스로 잊고 지낼 뿐…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내 삶 속의 작은 용기들을 천천히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부끄러웠던 순간들,
망설였던 선택들,
누군가에게 솔직해지려다가 말을 삼켰던 시간들.

그 안에도
사실 나름대로의 용기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책은 그걸 조금 더 크게,
조금 더 분명하게 빛나 보이게 만든다.
마치 “넌 이미 괜찮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어”라고
살며시 등을 떠밀어주는 느낌처럼 말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이 책이 가지는 힘을 정확히 느꼈다.
사람을 몰아붙이지 않는다.
바뀌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너는 지금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캄캄한 방 안에 작게라도 불빛을 켜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큰 결심을 하게 되는 게 아니라
작은 결심이 생긴다.
그리고 그 작은 결심들로 인해
다음 날의 말투가 조금 달라지고,
누군가의 표정에 덜 흔들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이상하게도 좀 가벼워지기도 한다


아마 이 책을 ‘한 번 읽고 끝’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 다시 꺼내보게 되는 이유가 그렇지 않을까.
삶의 방향이 조금씩 틀어질 때마다
다시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문장이 있기 때문에.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말 중 하나가
“인간의 모든 고민은 대인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아들러의 문장이다.

처음 이 말을 읽었을 때는 조금 과장된 주장처럼 들렸다.
세상에는 돈, 직업, 건강, 미래 같은 복잡한 고민이 널려 있는데
그걸 모두 대인관계로 묶어버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 계속 마음에 남았던 건 내가 겪는 고민 속에
실제로 ‘타인의 시선’이 얼마나 깊게 스며들어 있는지에 대한 자각이었다.

일의 방향을 고민할 때도
타인의 기대가 함께 떠오르고,
결정을 망설일 때도
누군가의 표정과 반응을 먼저 상상하는 나 자신이 있었다.

그걸 깨닫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돌이켜 보면 내 고민의 중심에는
대부분 “내가 어떻게 보일까”라는 작은 불안이 숨어 있었다.

어쩌면 그 불안을 정확히 찌른 문장이
이 책이 오랫동안 회자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나는 한동안 이 생각을 계속 붙들고 있었다.
‘나의 고민이 진짜 나의 문제인가?
아니면 타인의 기대를 대신 짊어진 마음의 무게인가?’

이 질문을 삶에서 작은 기준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가볍게 해결되는 일들이 많아졌다.
문제가 줄어든 게 아니라
불필요하게 짊어지고 있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공백이 처음엔 낯설었다.
‘내가 이렇게 맘 편히 살아도 되나’ 하는 이상한 죄책감 같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공백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채워졌다.

사람과 거리를 적당히 유지한다는 것,
내 감정의 주인이 나라는 것을 기억한다는 것,
타인의 감정까지 지나치게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

이런 것들에 익숙해지고 나니 예전에는 상상하지 못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아주 조용한 순간들 속에서
이 책이 말하는 ‘행복’의 정체를 천천히 이해하게 되었다.

행복이란 게 꼭 대단한 순간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것.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에서 멀어질수록
하루가 조금씩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
그리고 그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낼 때
행복이라는 단어
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

어느 순간, 나는 누군가에게 미움받을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되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 감정이 나를 움직이는 기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예전과는 아주 다르다고 느껴졌다.


삶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
이전에는 늘 머뭇거렸던 이유가 ‘타인의 시선’이었다면,
이제는 그 이유가 조금씩 희미해졌다.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는 그 사람의 자유이고,
내가 어떤 삶을 선택하는가는 내 자유다.’

이 지점에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이 가진 진짜 의미를 이해한 것 같다.

미움받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누군가의 비난이나 오해, 또는 차가운 반응을 감수하더라도
나답게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선택하는 용기.
그 용기 덕분에 삶의 방향을 스스로 잡을 수 있게 되는 과정.

그 결론에 다다르기까지 나는 꽤 많은 시간을 썼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지나오고 나니
내 삶의 톤과 리듬이 전보다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

요즘의 나는
누군가에게 설명해야만 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살아서 이해되는 삶을 좋아하게 되었다.
혼자 있을 때도 마음이 편안하고,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도
스스로를 꾸미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있다.

이런 변화는 거창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변화다.

오래된 습관처럼 달라붙어 있던 ‘타인의 시선’에서
천천히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내 표정도 조금씩 달라진 걸 느낀다.

당당함보다는 잔잔함에 가깝고,
큰 자신감보다는 작은 평온에 가까운 변화.
그런 변화가 하루를 조금 더 단단하게 지탱해주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다시 읽을 때마다
나는 비슷한 자리에서 다른 문장을 발견한다.
그때그때 내가 필요한 방향을
책이 아주 조용하게 알려주는 것 같다.

마치 변함없는 한 문장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맞게 다른 빛을 비추는 작은 등불처럼…

책을 덮고 난 뒤 마음에 남는 건
‘미움받을 용기’라는 제목보다
그 제목이 만들어낸 태도다

누구에게도 잘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나다운 흔적을 남기려는 삶.
누군가에게 맞추는 친절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정직한 하루.
그리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믿음.

이건 한 번의 결심으로 만들어지는 변화가 아니다.
하지만 조금씩 누적되면
삶의 방향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에게 이 책은 그런 변화를 시작하게 해준 책이었다.
그리고 그 여운은
책을 다 읽은 다음에도 한동안 남는다.
오늘을 조금 더 내 삶처럼 살아보겠다는,
그 소박한 결심을 다시 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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