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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너무 빨리 판단하지 않는 법 – 『타인의 해석』이 남긴 깊은 질문

말콤 글래드웰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그의 문장은 늘 세계를 바라보는 내 시선의 방향을 조금 틀어놓는다는 것이다.
『타인의 해석』 역시 그랬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내가 그동안 수없이 사람을 판단해 온 방식이
얼마나 많은 가정과 편견 위에 세워져 있었는지에 대한 당혹감 같은 것이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인데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받아들였다는 걸 깨달았다.

글래드웰은 책 전체를 통해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이렇게 자주 타인을 오해하는가?”
하지만 그 질문을 들었을 때
나는 내 과거의 여러 장면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경험을 했다.

말투가 차갑다고 해서 무심하다고 생각했던 사람,
너무 밝고 친절해서 진심이라고 믿었던 사람,
침착해 보여서 신뢰했던 사람,
불편한 표정을 지어서 기분이 나빴던 사람…

지금 돌아보면,
나는 ‘내가 보고 싶은 방식’으로 타인을 해석해 온 적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 방식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책은 여러 사건을 통해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정상성 가정(default to truth)” 개념을 읽을 때,
마치 오래된 퍼즐 조각이 딱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상대가 진실을 말한다고 가정한다.
거짓말로 시작하는 관계는 일상에서 거의 없다는 이유로
사람을 믿는 것이 ‘기본값’이 된다.

나는 그 부분에서 오래 멈춰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사람을 믿고 싶어서 믿는다기보다
“의심하며 사는 삶이 너무 피곤하기 때문”에 믿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을 잘못 해석하는 위험보다
사람을 계속 의심하는 불편함을 피하고 싶어서.

글래드웰이 책에서 말하듯,
우리는 효율을 위해 진실을 기본값으로 설정한 채 살아간다.
하지만 그 기본값이 때로는
엄청난 오해와 파국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 책이 무서운 이유는
그 파국이 ‘특별한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낯설지 않은 방식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예전에 했던 어떤 판단을 떠올렸다.
한때 가까웠던 동료가 있었다.
겉으로는 늘 친절했고,
말투는 부드러웠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두 번 말하기 전에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신뢰했다.
그의 말에 담긴 따뜻함이 곧 그의 진심이라고 믿었고
그의 부드러움이 그의 성품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보여 주는 말과 행동 사이에는
미묘한 어긋남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런데도 나는 그걸 쉽게 인정하지 못했다.
‘설마 그럴 리가’라는 마음이 나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내가 가진 ‘정상성 가정’을
있는 그대로 다시 보고 있었다.
그 사람에 대한 오해보다
내가 신뢰라는 단어에 기대고 있던 방식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이다.

책은 이런 순간들을 하나의 통찰로 이어 붙인다.
타인을 오해하는 일은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타인을 정확히 읽도록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진짜 문제는
오해 자체가 아니라
“오해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라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책장을 넘기던 손을 잠시 멈추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동안 오해를 ‘실수’라고 생각했지만
글래드웰은 그것을 ‘인간의 구조적 한계’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마주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내가 잘못해서 실망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인간이기 때문에 겪는 오해들이 있다는 사실을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그 ‘겸손함’이었다.
타인을 정확히 읽으려는 기술보다
‘나는 쉽게 오해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마음.

이 태도 하나가
관계의 긴장을 풀어 주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갈등을 되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타인을 해석한다는 일이
사실은 상대를 향한 태도보다
나 자신을 향한 태도에 더 가까운 작업이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글래드웰이 말한 ‘투명성의 오류(mismatched cues)’ 개념에서도 오래 머물렀다.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가 그 사람의 진짜 감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
이 간단한 진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산다.
특히 표정이 무뚝뚝한 사람을 ‘차갑다’고 해석하거나,
말투가 약한 사람을 ‘순하다’고 판단하는 방식으로.

내가 예전에 크게 오해했던 사람도 그랬다.
겉으로는 늘 강해 보였고,
말투 역시 단정하고 차갑게 들렸다.
그래서 나는 그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회의에서 의견을 말할 때 그의 무표정이 나를 위축시키곤 했고,
그의 짧은 반응이 나를 숨죽이게 만들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 사람을 조금 더 알게 되었을 때
그의 그 강한 표정 뒤에는
늘 조심스러운 마음이 숨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말수가 적은 이유도
자신의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성향 때문이었다.

그걸 알게 된 후로 나는
사람을 보는 나의 방식이 얼마나 단순했는지,
얼마나 쉽게 단정해왔는지 깨닫고
한동안 스스로에게 좀 부끄러웠다.

이런 순간들이 쌓이면서
나는 글래드웰의 문장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삶의 장면을 다시 보게 만드는 렌즈라는 것을 실감했다.

특히 책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메시지,
“타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투명하지 않다.”
이 문장은
내가 인간관계를 대하는 방식 전체를 조금씩 바꿔 놓았다.

그 전에는 나는 사람이 보이는 그대로라고 믿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감정 표현이 적은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속마음도 차갑거나 멀리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치 표정이 그 사람의 진짜 언어라고 믿었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표정 뒤의 감정,
말투 뒤의 의도,
침묵 뒤의 이유를
쉽게 단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묘하게도,
이런 태도가 나를 덜 지치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표정 하나, 목소리 톤 하나만으로
혼자서 며칠씩 고민하고
생각을 쌓아 올렸던 적이 많았다.
무심한 반응 하나가
내 생각을 완전히 뒤흔드는 날도 있었다.

그런데 그 당연하게 여겼던 해석 방식이
사실은 매우 불안정한 추측 위에 세워져 있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사람을 헤아릴 수 있다고 믿었던 건
실력이라기보다 착각에 가까웠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의외로 나를 더 부드러운 인간으로 만들어주었다.

상대가 왜 그렇게 말했을까,
왜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그 모든 걸 굳이 단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저 그 사람이 가진 맥락을
내가 모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관계에서 느끼던 많은 긴장이 사라졌다.

책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여러 실제 사건과 사례들은
이런 오해가 얼마나 큰 비극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특히 산드라 블랜드 사건을 읽을 때
나는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한 사람이 해석의 오류 속에서
얼마나 쉽게 위험한 상황으로 밀려나는지,
얼마나 작은 오해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만들 수 있는지를
너무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을 읽으며
나는 예전에 누군가에게 너무 날카롭게 판단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그 사람의 말투나 태도만 보고
그의 의도 전체를 단정해버렸었다.
나중에서야 그가 처한 상황을 알고 나니
내가 얼마나 좁은 정보로 사람을 재단했는지
머리를 쥐어박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글래드웰은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든다.
우리는 언제나 ‘맥락 없는 타인’을 해석하려고 한다는 것.
하지만 타인은 언제나
우리가 모르는 배경,
보이지 않는 경험,
드러내지 않는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완벽한 해석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에
비로소 우리는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조심스레 바꿀 수 있다.

나는 이 책에서 배운 가장 큰 변화가
‘사람을 덜 단정하는 습관’이 된 것 같다.
예전 같으면 상대의 한마디로 결론을 내려버렸을 상황에서도
이제는 조금 더 시간을 두어 바라본다.
말 뒤의 맥락을 상상하기보다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상태를 가만히 떠올려 본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내가 처음에 느낀 감정과
실제 그 사람의 의도는
거의 닮아 있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알고 난 뒤
낯선 사람을 대하는 방식뿐 아니라
가까운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조금씩 달라졌다.
가족, 친구, 동료…
그 누구도 ‘투명하게 읽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런 변화는 조용하지만
삶의 굴곡을 부드럽게 만드는 힘이 있다.
타인에 대한 오해가 줄어들수록
나 자신에 대한 압박도 줄어드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사람을 오해하는 순간에는 언제나 두 가지가 함께 있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깨달았다.
하나는 ‘상대에 대한 정보 부족’이고,
다른 하나는 ‘나에 대한 과한 확신’이었다.

나는 타인을 잘 안다고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같이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대화를 나눈 횟수가 많아질수록,
그 사람의 표정과 말투를 몇 번 경험했을수록.

그런데 ‘많이 봤다’는 사실이
‘정확히 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이 단순한 진실을 나는 너무 늦게 배운 셈이다.

글래드웰은 여러 실제 사건을 통해
“낯선 사람뿐 아니라, 잘 아는 사람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우리는 타인을 오해할 때
언제나 상대를 향한 결함만 떠올리지만
사실은 나의 인지 구조 자체가
‘오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이 처음에는 약간 무력하게 느껴졌다.
인간의 해석 능력이 이렇게나 불완전한데
우리는 어떻게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의 결론은 의외로 실용적으로 다가왔다.
해석을 완벽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해석의 한계를 인정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그 말을 마음속에 들여놓으니
예전에 겪었던 몇 가지 상황이
다른 빛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한때 가까웠던 사람과 오해로 멀어진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나에게 지나치게 날카롭고 예민해 보였다.
나는 그가 내 행동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작은 말에도 과하게 반응했고,
메시지의 톤도 무겁게 느껴져서
‘이 관계는 여기까지구나’라는 결론을 서둘러 내려버렸었다.

그런데 몇 년 뒤 우연히 다시 마주했을 때,
그가 조용히 말해준 한 문장이 있었다.

“그때 나는 많이 힘들었어. 딱히 누구 때문도 아니었고, 그냥 내 인생이 너무 혼란스러워서.”

그 한 문장을 듣는 순간
내가 과거에 느꼈던 모든 ‘그 사람에 대한 확신’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내가 그토록 단정했던 그의 감정과 의도가
사실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자기 싸움이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이 책에서 말하는 메시지와 그대로 맞물렸다.

우리는 타인을 오해할 때
언제나 ‘그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사람이 처한 맥락’을 모를 뿐일지도 모른다는 것.

이 책을 읽고 난 뒤부터
나는 사람에게 먼저 맥락을 묻기보다
내 확신을 조금 늦추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상대의 감정 속도가 느릴 수도 있고,
말투가 단순히 피곤함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내가 과하게 의미를 씌운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습관.

이런 태도는
관계를 지키는 데 생각보다 큰 역할을 했다.

예전 같으면
상대의 말 한마디로 삐걱거렸을 상황에서도
조금 더 돌아볼 여지가 생겼다.
상대가 ‘왜 이렇게 반응할까’를 추측하기보다
‘저 사람에게 지금 어떤 일이 있을까’를 조용히 떠올려보는 일.
그 작은 생각의 변화가
오해를 무섭게 키우는 일을 막아주었다.

말콤 글래드웰은 책에서
“우리는 타인을 ‘알아야 한다’고 배우지만,
사실은 타인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 문장에서 오래 벗어나지 못했다.
그 말이 내 삶에 너무 많은 장면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냥 누군가의 표정 뒤에 있는 피로를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오해가 있었고,
때로는 상대가 의도치 않게 건넨 말 하나를
내 감정 상태로 왜곡해 듣던 순간들이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오해받을 때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억울함보다
‘아, 이 사람이 나를 이렇게 봤구나’ 하는 묘한 허탈함이 더 컸다.
내 맥락을 설명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해석만 남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강조하는 메시지는
단순히 “타인을 유심히 보라”가 아니라
“타인을 쉽게 읽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에 가깝다.

나는 이 태도가
인간관계에서 부드러움을 만든다는 걸
이 책을 읽고 한참 뒤에야 실감했다.

사람을 쉽게 읽어버리면
쉽게 실망하게 되고
쉽게 상처받고
쉽게 관계가 무너진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한 문장이 마음속에 자리 잡으면
관계는 오히려 더 오래간다.
상대에게 기회를 주는 데 여유가 생기고
나에게도 숨 쉴 공간이 생긴다.

그리고 그 여유는
생각보다 많은 오해를 막아 준다.

이제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
이 책의 문장 하나를 조용히 마음에 품는다.

“타인은 쉬운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나 역시 쉬운 존재가 아니다.”

이 문장이 관계의 기준을 조금 더 인간적으로 만들어 준다.
서로를 완벽하게 읽으려 애쓰는 대신
서로의 모름을 인정하는 관계.
그 안에서 비로소
진짜 대화가 시작된다는 걸
이 책은 여러 사건들을 통해 정직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천천히 사람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전의 나는 빠르게 판단하는 것을 능력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눈치가 빠르고
사람의 의도를 재빨리 읽고
말의 뉘앙스를 순간적으로 이해하는 일.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 ‘빠름’이 늘 올바른 방향이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빠르게 판단하는 습관 때문에
놓쳐버린 관계들이 있었고
억울하게 오해했던 순간들도 있었으며
내 감정이 과한 추측으로 흐르며
혼자 상처받았던 적도 많았다.

글래드웰은 책에서
“타인을 읽는 데 서두르는 건 위험하다”고 여러 번 강조한다.
그리고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자주 ‘서두른 해석’을 해왔는지 떠올렸다.

서두름은 언제나 불안을 숨기고 있었다.
상대의 속마음을 빨리 알고 싶은 욕심,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싫어하는 마음,
혹은 관계 속에서의 내 불안함을 감추려는 마음.

그 감정들이 뒤섞여
나는 너무 많은 순간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상대를 해석했다.
책을 읽고 나서야
그 해석이 얼마나 편향된 시선이었는지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의 말이 마음에 걸릴 때
예전처럼 즉각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으려고 한다.
잠시 멈춰서 그 말 뒤의 맥락을 상상해 보고,
그날 그 사람이 어떤 하루를 보냈을지 떠올려 보고,
혹시 내 감정이 평소보다 예민하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어보곤 한다.

그렇게 멈추는 시간이
예전보다 조금 더 길어졌다.
그리고 그 시간 덕분에
나의 오해가 크게 번지는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책에서는
“해석을 늦추는 태도”가
서로를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이 처음엔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의 현실적인 힘을 느끼게 되었다.

사람을 서둘러 판단하지 않게 되면
의외로 ‘기다림’이라는 감정이 생긴다.
상대가 스스로 말해줄 때까지
그 사람의 속도를 존중하는 기다림.
그리고 그 기다림은
인간관계를 훨씬 더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
글래드웰은 “투명하게 보이는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설명한다.
우리는 얼굴에서 정답을 찾으려고 하고
표정과 말투가 늘 진실을 반영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세상에는
미소를 지으며 고통을 견디는 사람도 있고,
무표정한 얼굴 뒤로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도 있다.
침묵 속에 불안을 감춘 사람도 있고,
부드러운 말투 속에 결심을 숨기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 문장을 읽다가
예전에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회의에서 거의 웃지 않았고
말투도 단정한 편이었다.
나는 그걸 차갑고 거리감 있는 성향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다 회사에서 우연히 함께 야근하게 된 날
그 사람이 조용히 이런 말을 했다.

“제가 표정이 잘 안 바뀌어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근데 사실 저는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봐
웃는 게 더 어려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몇 년 동안 쌓아온 내 오해가
한순간에 부서졌다.

그리고 그 부서짐 속에서
나는 글래드웰의 말이 얼마나 정확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
타인의 내면을 보는 게 아니라
결국 ‘내가 보고 싶은 방식’으로만 보게 된다는 것.
그게 인간의 구조적 한계이자
동시에 우리가 관계를 망치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

이 지점에서
나는 이 책의 진짜 가치를 깨달았다.

『타인의 해석』은
타인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타인을 쉽게 읽고 있다’는 착각을 깨뜨리는 책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해석의 도구는
생각보다 매우 불완전하고 취약하며
그걸 인정하는 태도 자체가
진정한 인간관계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깨달음은
내 삶의 속도를 바꿔 놓았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더 느긋해졌고
조금 더 부드러워졌고
조금 더 겸손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을 읽으려는 욕심보다
‘모를 수 있다’를 인정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 단순한 태도 하나가
내 삶의 여러 관계를 더 오래, 더 편안하게 이어가도록 도와주었다.

그 변화는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꾸준히 나를 바꾸고 있는 중이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사실 “내가 옳다”는 확신을 줄이는 일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이 책을 읽고 그 생각이 더 선명해졌다.
나는 사람을 해석할 때
내가 갖고 있는 관점이 늘 기준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타인의 세계는
내가 보지 못한 수많은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조각들은 어느 누구도 완벽히 짚어낼 수 없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
이렇게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하곤 한다.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이 단순한 문장은
이상할 정도로 많은 날들을 편안하게 만든다.
상대의 말투가 조금 싸늘해도
그날 그 사람이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내 감정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 책이 내게 남긴 변화는
이런 작은 태도의 변화들이다.
큰 결심도 아니고
극적인 통찰도 아니었지만
삶의 결이 부드러워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예전의 나는
사람의 말이나 표정에 더 빨리 반응했고
상대의 감정을 짐작하려고 과하게 애를 썼다.
그 과정에서 내 마음은 늘 예민했고
오해는 작은 빈틈만 있으면 커지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말이나 표정에
내 감정을 바로 걸어두지 않는다.
해석을 잠시 보류하는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그 여유가
인간관계의 갈라짐을 막아주는 완충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을 오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쉽게 ‘알았다’고 착각하지 않는 마음.
이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내가 갖고 있지 못했던 마음이다.

말콤 글래드웰이 여러 사건과 예시를 통해 보여준 건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건
탁월한 통찰력이 아니라
겸손함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겸손함이
생각보다 삶을 깊고 단단하게 만든다는 걸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책을 다 읽고 한참 뒤에 깨달은 게 있다.
타인을 해석하는 일은
결국 나의 불안, 나의 확신, 나의 해석 습관을
스스로 들여다보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이 책은 누군가를 분석하는 지침서라기보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에 더 가까웠다.

나는 이제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의 말보다
그 말 너머의 가능성을 먼저 생각한다.
내가 놓칠 수 있는 지점들,
내가 알 수 없는 배경들,
내가 모른 채 지나칠 수 있는 상처들.

그 가능성을 인정하는 마음 덕분에
오해가 생길 여지도 줄어들고
관계의 표면에 생기는 작은 파동들도
쉽게 진정된다.

그리고 그 부드러움이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하게 해주는 힘이라는 걸
조금 늦게 깨달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쯤
나는 알게 되었다.
‘타인의 해석’이란
누군가를 정확히 읽어내는 기술이 아니라
서로를 조금 더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태도라는 것을.
그리고 그 태도 속에서
사람 사이의 오해도, 거리도, 상처도
조금씩 다르게 굴러가기 시작한다는 것을.

이 책을 읽은 이후로
내 삶의 속도는 조금 느려졌지만
사람을 대하는 마음은 훨씬 더 따뜻해졌다.
그 따뜻함은 화려하지 않아도
관계를 지켜내는 데 필요한 온도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타인을 쉽게 단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아주 작은 걸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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