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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t 그릿(Angela Duckworth) – 포기하지 않는 힘이 내 삶을 다시 움직였다

사람의 성취를 결정하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
평생 답을 찾고 싶어 했던 시절이 있었다.
남들보다 빨리 배우는 사람들,
작은 기회만 있어도 멀리 나아가는 사람들,
문제 하나만 만나도 미끄러져 내려가는 사람들.
그 차이를 만드는 게 무엇인지 쉽게 설명할 수 없었다.
타고난 재능일까,
혹은 환경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무언가일까.

앤절라 더크워스의 《그릿》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 답을 ‘재능’이라는 단어 주변에서만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똑똑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 사람이 성공하는 줄 알았고
눈에 띄게 잘하는 아이들이 결국엔 멀리 간다고 생각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재능이 있어야 직장에서 인정받고,
자신만의 영역을 만드는 줄 알았다.
재능을 운명처럼 바라봤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오래된 믿음을 완전히 흔들어버렸다.

책의 메시지는 놀랍도록 단순하면서도
한 번에 이해되지 않는 묘한 깊이가 있다.
더크워스는 말한다.

“성공을 결정하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끝까지 밀고 가는 힘이다.”

이 문장은
익숙한 듯하지만
진짜 의미를 체감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릿(Grit)은
사람이 어떤 일을 끝까지 밀고 가는 ‘심리적 근육’에 가깝다.
무엇을 더 잘하느냐보다
지루함·실패·반복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느냐가
결국 차이를 만든다는 뜻.

책을 읽기 전에는 이런 말들이
추상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누구나 꾸준함이 중요하다는 건 알지 않나.
그런데 막상
‘그 꾸준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꾸준함을 타고나는 사람도 거의 없다는 점이다.
더크워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릿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말이 나를 오래 붙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스스로에게 실망했던 이유는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지속하지 못하는 나’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계획을 세웠다가 며칠 하다 무너지는 일들,
작심삼일이 반복될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게으르고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나에게 전혀 다른 시선으로 말을 걸었다.
“당신은 약한 것이 아니라, 그릿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는 것이다.”

이 문장은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지 않는데
묘하게 마음을 크게 흔든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재능을 키우는 법은 배우지만
의지를 키우는 법은 배우지 않는다.
누구도 지루함을 견디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고
실패를 해석하는 법도 알려주지 않는다.
목표를 세우는 법은 알려주지만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공허함,
의욕이 떨어지는 순간,
비교로 흔들리는 마음 같은 것들은
스스로 버텨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능력이 없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유지하는 기술을 배우지 못해서
중간에 멈춘다.
더크워스의 연구는
바로 그 지점을 정확하게 비춘다.

그릿은 성격이 아니라
하나의 기술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내가 했던 많은 후회들이
다른 형태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충분히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반복을 견디는 법을 몰라서
포기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포기의 이유를 잘못 해석해왔던 셈이다.

더크워스는
그릿을 구성하는 요소를
아주 명확하게 정리한다.
열정(Passion)과
끈기(Perseverance).
이 두 가지가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유지되는 상태를
그녀는 그릿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건
열정이 ‘감정적 뜨거움’이 아니라는 점이다.
열정은 꾸준함이다.
일시적인 동기나
순간의 흥분은 열정이 아니다.
진짜 열정은
수개월, 수년 동안
삶의 방향을 잃지 않는 힘이다.

이 말을 읽고
나는 묘하게 힘이 빠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내가 지금까지 ‘열정’이라고 부르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순간적인 흥분이었던 것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자마자 불타오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식어버리는 감정들은
열정이 아니라 충동이었다.

책은
‘진짜 열정’을 찾는 것보다
‘거짓 열정을 걸러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인생에서 우리가 흔히 실패하는 이유는
열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흥분을 열정으로 착각하고
너무 빨리 지쳐버리기 때문이다.

그릿은
이 착각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끈기는
열정의 파트너다.
하루이틀의 끈기가 아니라
지루한 반복마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힘.
여기서 더크워스가 강조하는 문장은
아마 이 책 전체의 핵심 문장일 것이다.

“노력은 재능보다 두 배 더 중요하다.”

그녀는 재능(Talent)과 노력(Effort)의 관계를
아주 단순한 공식으로 표현한다.

재능 × 노력 = 기술(Skill)
기술 × 노력 = 성취(Achievement)

노력은 두 번 들어간다.
재능보다 두 배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 공식은
내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나는 그동안 재능을 기반으로 성과가 만들어진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 공식은
재능은 단지 ‘가능성’이고
노력이 결국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재능 있는 사람이
노력하지 않으면 성과를 낼 수 없다.
재능이 부족해도
충분한 시간 동안 축적된 노력은
처음에 부족했던 능력을 넘어설 수 있다.

지금까지 보아온 많은 사람들의 삶도
이 공식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고등학생 때 반에서 늘 1~2등 하던 친구들은
대부분 ‘노력하는 습관’을 가진 아이들이었지
유난히 타고난 천재는 아니었다.
직장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는 사람들도
재능이 특출난 사람보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사람들,
자기 일에 시간을 꾸준히 쌓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재능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노력할 기회를 스스로 줄여왔던 순간들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재능이 없다고 믿으면
실패해도 타격을 덜 받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 그건
시작하지 않는 결정을 합리화한 것에 불과했다.

이 책은
그 위장을 벗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뛰어난 성과는 재능의 결과가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인 끈기의 결과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뭔가 가슴 뒤쪽에서
‘툭’ 하고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포기가 습관이 된 삶에 익숙해 있던 사람에게
이 문장은 꽤 크게 울린다.
과거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 같기도 했다.

책에서 더 인상적인 부분은
그릿이 언제 생기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더크워스는 말한다.
그릿은 “의미감”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하고
그다음엔 실력의 즐거움을 느끼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어떤 목적을 발견한다.
목적이 생기면
그때부터 ‘포기하기 어려운 동력’이 만들어진다.
바로 이것이 그릿이다.

단순히 잘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 잘함이 어떤 의미를 갖기 시작하는 순간
사람은 오래 버틴다.

나는
이 말이 너무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라고 느껴졌다.
사람은 결국
의미를 먹고 자란다.
의미를 느끼지 못하면
노력은 오래가지 않는다.
성취는 목적을 잃고
속도가 줄어든다.
그럼 결국
또다시 포기를 반복하게 된다.

그릿을 키우려면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이 말은 독자로서
마치 조용한 숙제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나는
성취를 위해 노력했다기보다
타인의 시선을 위해
애쓰는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니 오래가지 못했다.
의미가 아니라
외부 기준에 기대어 있었으니까.

책은 말한다.
그릿의 핵심은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를 잊지 않는 마음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오랫동안 멈춰서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 질문을
오랫동안 피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언제 들어도 뭔가 묵직하다.
겉으로는 단순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막상 속을 들여다보면
지나온 시간, 선택, 후회, 기대가 다 섞여 있어서
쉽게 대답할 수가 없다.
더크워스도 이 질문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녀는 학창 시절부터
자신이 왜 그토록 성과에 매달렸는지,
왜 항상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았는지를
책 곳곳에서 계속 탐구한다.

그 탐구를 따라가다 보면
자기 자신을 향한 불만족이
어떻게 그릿의 출발점이 되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은
어떤 지점에서든 ‘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감각이 있어야
오래 버틴다.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다.
가능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그릿은
가능성에 대한 믿음 없이는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크워스는
그릿을 단순한 의지력이나 정신력 같은 단어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릿을 “희망의 구조”라고 말한다.

희망이라고 해서
막연한 긍정 같은 게 아니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
아주 현실적인 희망.

그 희망이 있어야
사람은 지루함도 견디고
실패도 다시 해석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기쁨을 느끼며 살 수 있다.

그러니까
그릿의 바탕은
결국 ‘성장형 사고방식’이다.

카롤 드웩이 말한
“성장은 가능하다”는 믿음.
더크워스는 이 개념과
그릿을 완벽하게 연결한다.

성장은 가능하다는 믿음 → 노력에 의미가 생김 → 지속됨 → 성취 → 자기 효능감 증가 → 다시 지속됨

이 구조 안에서
그릿은 점점 커진다.
사람은 한 번 성공을 경험하면
‘노력이 쓸모 있다’는 확신이 생기고
그 확신이
다음 노력을 밀어주는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소소한 성취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사람은 노력해도 성장하지 않는 이유가
실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이 구조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성취 경험이 없으면
노력은 괴로움처럼 느껴진다.

그 괴로움은 오래 갈 수 없다.

여기서 더크워스의 중요한 메시지가 나온다.
“그릿은 재능이 아니라 경험의 누적으로 형성된다.”

그릿이 많은 사람들은
엄청난 의지력을 타고난 게 아니라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는 경험,
의미가 결과로 이어지는 경험을
여러 번 반복한 사람들이다.

그 경험의 반복이
그릿을 만든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그릿이 없는 게 아니라
그릿을 키울 토양을 만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무조건 열심히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의미와 성취를 연결하는 방법을
아예 배우지 못한 상태였으니
당연히 지속할 이유를 만들지 못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성공한 사람들의 꾸준함’을
마치 그 사람의 타고난 기질처럼 여겼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그 꾸준함은 기질이 아니라
패턴이었다.
그들은 반복 속에서 성취를 느꼈고
그 성취가 또 다음 반복을 부른 것이다.

반대로
나는 반복 속에서 성취를 느끼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반복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고
지속이 끊기는 일이 많았다.

의미 없는 반복은
정말 견디기 어렵다.
그게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다.
우리 대부분은
의미를 연결하는 법을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심리서를 넘어
일종의 ‘삶의 기술서’에 가깝다.
끈기라는 기술을
어떻게 학습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
아주 현실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책에서
특히 ‘열정이 흔들리는 시기’에 대한 설명이
유독 마음에 많이 남았다.
사람은 어떤 일을 할 때
반드시 ‘심리적 저점’을 경험한다.
그 저점은
재능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온다.

문제는
그 저점이 왔을 때
우리가 어떤 해석을 하느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해석한다.
“난 이 일을 좋아하지 않나보다.”
“역시 난 안 되나 보다.”
“이 일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더크워스는
이 해석이 그릿을 약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한다.
심리적 저점은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과정의 일부다.

저점은
성장의 부작용 같은 것이다.
근육이 성장할 때 통증이 있듯
마음이 성장할 때도
지루함, 회의감, 자책이 찾아온다.

문제는 그때의 감정을
‘의미 없는 신호’로 오해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그 감정들이 찾아오는 순간이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더크워스는 말한다.
“진짜 그릿은 지루한 순간에도 계속 걸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 문장은
어쩌면 너무 현실적이어서
나는 잠시 책을 덮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지루함을 견디는 능력.
화려하지 않지만
삶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

이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뛰어나도 멀리 갈 수 없다.
반대로
이 능력이 있는 사람은
특출난 재능이 없어도
오래 버티면서 성장한다.

이게 바로
그릿의 힘이다.
지루함을 견디는 마음의 근육.

그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더크워스는
그릿이 강한 사람들은
‘열정의 파동’을 큰 틀에서 다룬다고 말한다.
열정은 절대 일정하지 않다.
어떤 날은 불타오르고
어떤 날은 식는다.
그런데
그릿이 약한 사람은
열정이 식었을 때 멈춘다.
그릿이 강한 사람은
열정이 식어도 계속 걷는다.

차이는 단 하나.
‘식어도 버티는 기술’을 가진 사람과
‘식으면 끝이라 믿는 사람’의 차이.

나는
이 설명에서
마치 오래전의 나를 본 것 같았다.

처음엔 열정이 넘쳐서 모든 걸 할 것 같다가
조금만 어려우면
그 열정의 감소를
내 진정성이 부족한 것으로 해석했었다.
그게 아니었는데도.

더크워스는
열정의 증감은
마치 계절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말한다.

매일 뜨거울 수는 없다.
중요한 건
열정이 식어도 버틸 수 있는 ‘의미의 뼈대’를 갖고 있는가이다.

열정은 감정이고
의미는 구조다.
감정은 흔들릴 수 있지만
구조는 견딘다.

나는 이 말을 읽고
마음 한구석에서
아주 오래 묵혀둔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하는 일을 어떤 구조 위에 올려놓고 있을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해본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어쩌면 거의 없었다.

그러니
지속도 약했고
집중도 짧았고
성취는 늘 반짝거리는 순간에 그쳤다.

책은 말한다.
의미를 가지려면
작은 목표들과 큰 목표들이
하나의 축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그 축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목적이다.

목적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다만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지속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더크워스는 이 부분을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으로 다룬다.
그만큼
목적은 그릿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일이
누군가에게 가치 있다고 느끼는 순간
훨씬 오래 버틴다.
그 대상이
타인이든
사회든
가까운 가족이든
혹은 미래의 자신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 일이
나를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 순간
지속의 힘이 폭발적으로 커진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설명을 읽으며
내가 지금까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표’로 살아온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떠올렸다.
그 목표들은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였지만
금방 지쳐버렸다.
왜냐하면
그 목표는
‘나의 목적’이 아니라
‘타인의 기대’였으니까.

목표가 타인의 기대에서 나오면
지속성은 약해진다.
목표가 내 의미에서 나오면
지속은 강해진다.

《그릿》은
이 단순한 진실을
아주 깊고 풍부하게 설명해준다.


책을 읽다 보면
더크워스가 말하는 ‘목적’이라는 단어가
단순한 심리학 개념이 아니라
삶 전체를 끌고 가는 하나의 축이라는 걸
조금씩 느끼게 된다.

처음엔 목표(goal)와 목적(purpose)을
같은 말처럼 들었는데
그녀가 설명하는 두 단어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목표는 구체적이다.
몇 kg 감량하겠다,
몇 점 이상 받겠다,
어떤 직무에 들어가겠다 같은
단기적이고 실체가 있다.

하지만 목적은
설명할 수 있지만
정확히 ‘숫자로’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이다.
사람이 왜 이 일을 하는지,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을 감싸고 있는 크고 넓은 틀.

목표가 현재를 안내한다면
목적은 시간을 연결한다.
현재와 미래를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한 끈으로 묶어주는 역할.

더크워스는
그릿의 핵심은 사실 ‘미래를 붙드는 힘’이라고 말한다.
혼자 들으면 조금 낯설지만
책 전체를 따라가 보면
정말 이 말이 정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가 보이는 사람은
지금의 지루함을 견디고
지금의 실패를 다시 해석할 수 있다.

반대로
미래가 끊어진 사람은
지금의 고통을
그저 고통으로만 느낀다.
그 고통을 견디는 이유가 없기 때문.

나는 이 지점에서
조용히 마음이 꺾였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내 삶을 되돌아보면
몇 년 동안 반복되는 무기력감의 근원도
지금의 고통을 견딜 목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갑자기 너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의지가 약하다’,
‘집중력이 없다’,
‘게으르다’
이런 식으로 나를 비난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목적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의지만으로 버티려고 했던 것이다.

목적 없이 버티는 건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릿이 강한 사람들은
의지가 강해서가 아니라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의지가 지탱되는 사람들이다.

이 구조를 깨닫는 순간
‘나도 그릿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릿은
의지를 닦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지탱할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다.

그 무언가가 바로
목적이다.

더크워스는
목적을 세 가지 층위로 나눈다.

첫 번째는 ‘작은 목표’
하루 단위로 움직이는 행동들이다.
운동하기, 책 읽기, 공부하기, 연습하기, 기록하기.
작고 사소하지만
실질적인 움직임이 만들어지는 곳.

두 번째는 ‘중간 목표’
몇 달 또는 몇 년 단위로 이루고 싶은 것들.
시험을 합격한다든지,
프로젝트를 완성한다든지,
직무 역량을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든지.
작은 목표들이 모이면 이 지점에 닿는다.

세 번째는 ‘궁극적 목적’
내가 살아가는 이유의 정체성에 가깝다.
“사람들의 배움을 돕고 싶다”
“나는 더 나은 나로 변화하고 싶다”
“어떤 영역에서 의미 있는 가치를 남기고 싶다” 같은 것들.

이 궁극적 목적이 있어야
중간 목표와 작은 목표들이
끼워 맞춰지는 것이다.

나는 이 구조를 보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왜냐하면
내 목표들은 많았지만
목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목적이 없는 목표는
금방 흐트러진다.
목표가 달성되면 공허해지고
달성되지 않으면 자책한다.
그 자책이 반복되면
삶 전체가 무기력해진다.

반면
목적이 있는 목표는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아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목표는
목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더크워스가 여러 인물의 사례를 통해
이 구조를 반복해서 증명한다.
군인, 교사, 운동선수, 예술가, 기업가, 학생까지
어떤 분야에서든
오랫동안 높은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목적의 언어로 사고하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직업이 바뀌거나
환경이 달라지는 상황에서도
목적은 유지된다.
이것이
그릿이 단순한 끈기가 아니라
삶의 방향성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내 삶의 여러 조각들이
흩어진 채로 존재해왔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목표는 매번 바뀌었지만
그 목표들이 모여서 하나의 삶을 만드는
‘목적의 축’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조금 힘들면 포기하고
조금 흔들리면 방향을 바꿨으며
조금 지루하면 다른 걸 찾았다.

이게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목적 구조가 없어서 생기는 문제였다니
이 사실이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그릿을 키우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크워스는 말한다.
그릿은 의미로부터 온다.
의미는 목적에서 온다.
목적은 이해에서 온다 —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

이 문장은
책 안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명확하고도 깊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스스로에게
“왜 이 일을 하는지”
이 질문을 거의 던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조금 부끄럽게 깨달았다.

왜 하냐고?
해야 해서 했다.
남들이 하니까 했다.
해놓으면 좋을 것 같아서 했다.
언젠가 도움이 되겠지 싶어서 했다.

하지만 이런 동기들은
지루함을 견디기에는 너무 약하다.

왜냐하면
타인의 기준이나
막연한 기대는
지속성을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지속성을 만드는 건
내 삶의 의미와 연결된 목적뿐이다.

여기까지 깨닫는 데
책을 절반 이상 읽어야 했지만
그 깨달음은
그동안의 많은 의문을 풀어주는 열쇠처럼 보였다.

왜 의지가 쉽게 무너졌는지,
왜 계획은 늘 3일을 넘기기 어려웠는지,
왜 자주 번아웃이 왔는지,
왜 한 번 시작해도 오래 이어가기 어려웠는지.

그 질문들의 공통된 정답이
‘목적부재’였다는 사실이
나를 오래 붙들었다.

이제
더크워스는
그릿을 키우기 위한 구체적 전략으로 넘어간다.

그 전략은
기대 이상으로 실용적이며
누구나 적용할 수 있는 방식들이다.

그중에서도
내 삶을 가장 크게 바꾼 개념은
바로 ‘집중 축적 연습(Deliberate Practice)’ 이다.


더크워스가 말하는 “집중 축적 연습(Deliberate Practice)”은
《그릿》을 넘어서,
성장과 성취를 설명하는 거의 모든 심리학·교육학 이론의 중심에 있는 개념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냥 오래 한다고 실력이 느는 건 아니다”라는 뜻이다.
이 문장은
뭔가 너무 당연한 것 같지만
막상 내 삶을 돌아보면
당연하지 않았다.

나는 꽤 오랫동안
‘시간을 많이 쓰는 사람’과
‘실력이 느는 사람’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둘이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

시간은 누적되지만, 실력은 선택적으로 쌓인다.
이게 더크워스가 말하는 핵심이다.

예를 들어
일을 10년 동안 한 사람이
진짜 전문가일까?
우리는 흔히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10년 동안
같은 수준의 일을 반복하는 사람에게서
전문성이 자동으로 만들어지진 않는다.
오히려 3년 동안
고도로 집중된 연습을 한 사람이
10년 동안 막연히 버틴 사람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기도 한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집중 축적 연습이다.

더크워스는 이 개념을
네 가지 요소로 정리한다.

1. 명확한 목표
2. 즉각적인 피드백
3. 고통을 수반하는 집중된 반복
4. 성장지점에 정확히 닿아 있는 난도 조절

이 네 가지는
그릿과 실력을 연결하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묘하게 부끄러웠다.
왜냐하면
내가 했던 대부분의 노력들은
이 네 가지 요소 중
어떤 것 하나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력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냥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 반복은
성장을 위한 반복이 아니라
유지하기 위한 반복일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영어 공부를 한다고 할 때
단순히 시간을 오래 들이는 것이
집중 축적 연습은 아니다.

문제를 맞히기 쉬운 것들만 계속 골라 풀고
익숙한 단어들만 외우고
어려운 문장과는 마주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약점을 분석하지 않는다면
그건 연습이 아니라
안전지대에 머무는 것이다.

성장은
안전지대가 아니라
성장지대에서 일어난다.

더크워스는
이 구분을 누구보다 명확하게 설명한다.

성장지대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경계선이다.
약간 어렵고
약간 불편하며
약간 시간을 더 필요로 하고
약간 실패 확률이 높은 지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지점을 피한다.
왜냐하면
성장은 늘 불편함과 함께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불편함의 지점’이 바로
실력이 흔들리면서 올라가는 순간이다.

나는 이 지점을
읽는 동안 여러 번 떠올렸다.

회피했던 시도들,
금방 포기했던 공부들,
익숙한 방식만 반복했던 일들.
그 모든 순간들은
사실 성장의 지점에서
잠깐 멈출 기회가 있었던 순간들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성장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성장이 일어날 자리를 피해 다녔던 것이다.

집중 축적 연습은
이 자리를 직면하라는 말이다.

그 자리는
성공의 기분과는 거리가 멀다.
성취감보다는 혼란스럽고
정답을 찾기 어렵고
스스로 부족함이 드러나는 자리다.

하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실력은 재정의된다.
조금씩 재구성된다.
다시 쌓이기 시작한다.

더크워스는
집중 축적 연습을 지속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이렇게 말한다.

“이들은 자신이 잘하는 것보다, 잘하지 못하는 것에 시간을 더 많이 쓴다.”

이 말이 머리를 꽝 하고 때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하는 걸 반복한다.
왜냐하면 그게 기분 좋으니까.
자존감을 지키기 쉽고
성과가 눈에 보이고
‘나 그래도 괜찮아’라는 안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지점에서는
성장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잘하는 영역은
이미 익숙해진 영역이다.

성장은
익숙함 바깥에서 일어난다.

나는 이 말을 읽고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정 하나가 스쳤다.
어릴 때 새로운 것을 배울 때
항상 느껴지던 그 답답함,
‘왜 이렇게 안 되지?’ 하는 그 불편함,
그리고
조금 되는 순간에 느끼던 기묘한 성취.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이 불편함을 피하는 법만
점점 더 빨리 배운다.
불편함을 줄이는 방향으로 선택하고
능력 있어 보이는 영역만 붙들고
익숙한 방식 안에서만 움직인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반대다.
아이는
불편함이 와도 멈추지 않는다.
그저 계속 해본다.
아주 서툴고
오래 걸리고
실수를 반복해도
계속한다.

성장이 빠른 이유는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불편함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지대에 오래 머물기 때문이다.

더크워스의 집중 축적 연습 이론은
결국 이런 메시지로 정리된다.

불편함을 견디는 사람이 성장한다.
불편함에서 도망치는 사람은 유지된다.
그리고 유지되는 사람은 결국 뒤처진다.

나는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너무 오래 피했던 숙제와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유지의 반복’을 성장이라고 오해했었다.
단지 오래 한 것과 잘하게 된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

그러니까
그릿 있는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라
이 불편함과 조용히 동행하는 사람들이다.

성장은
힘든 게 아니라
어쩌면 ‘조금 익숙하지 않은 감정에 오래 머무는 일’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더크워스는
집중 축적 연습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실제 사례들을
책 전체에 걸쳐 보여주는데,
그 사례들은
거창하지 않다.
대부분
아주 사소한 반복들이다.
하지만
그 사소함을 놓지 않는 태도가
결국 거대한 성장을 만들어낸다.

어떤 바이올리니스트는
하루 5시간을 연습하지만
그 5시간 중 4시간은
자신이 못하는 구간만 반복한다고 한다.
하필 그 어려운 부분만 파고드는 이유는
‘성장지점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마라톤 선수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거리, 같은 스피드를 뛴다.
하지만
자신이 약한 지점—
페이스가 흔들리는 가운데 구간,
호흡이 무너지는 미세한 순간—
그 지점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

이 지점이 성장의 지점이다.
그리고 이 지점은
아무도 보지 않는다.
오직 자신만 알고
자신만 견딜 수 있다.

여기서
나는 ‘그릿 있는 사람들의 외로운 반복’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성장은 결국 외로운 작업이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누구도 정확히 측정해줄 수 없다.
누구도 그 순간을 대신 겪어줄 수 없다.

집중 축적 연습은
그래서 더 외롭고
더 지루하고
때로는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외로운 시간이
겉으로 드러나는 성취의 대부분을 만들어낸다.

책은 이 부분을
그 어떤 자기계발서보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말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눈에 띄는 순간보다
눈에 띄지 않는 순간을 더 오래 겪어낸 사람들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누군가의 성취는
대부분 한 줄 요약으로 미화되지만
그 이면에는
아무도 읽지 않는 페이지가
수백 장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페이지들을 견디는 힘이
바로 그릿이다.

더크워스는
집중 축적 연습이
자신의 목적과 연결되는 순간
그릿이 폭발적으로 커진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불편함이 의미와 연결되면
고통이 ‘중요한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고통은 줄어들지 않지만
고통의 해석이 달라진다.

고통이
방해물이 아니라
성장의 신호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릿이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그릿은
의지를 불태우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자리를 잡을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조가
목적과 집중 축적 연습이 결합된 지점이다.

이 지점을 조금만 이해하면
성장에 대한 생각 전체가 바뀌기 시작한다.
성장이라는 단어는
예전엔 거창하고 멀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조금씩 불편함에 머무는 행동’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건
충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릿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으면
마치 개인의 성향이나 타고난 기질처럼 느껴진다.
끈기 있는 사람은 원래 그랬을 것이고
쉽게 포기하는 사람은 원래 그런 성향을 가진 것처럼
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더크워스는
그릿이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환경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처음엔 조금 의외였지만
곧 깊이 고개가 끄덕여졌다.

성향과 환경을 완벽히 분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람이란 결국
서 있는 자리·만나는 사람·경험하는 문화·기대치의 조합으로
조금씩 다듬어지니까.
이건 성장 과정에서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크워스가 말하는 환경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가정, 공동체, 그리고 개인이 속한 문화.

이 세 가지가
묘하게 어울리면서
그릿을 길러내거나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나는 이 구조를 읽으며
나 스스로의 성장 배경을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가정에서 그릿이 길러지는 방식은
의외로 성격보다 ‘기대’에 더 가까웠다.
부모가 아이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너는 해낼 수 있어”인지
“조금 어려우면 하지 않아도 돼”인지
혹은 “실수해도 괜찮아, 다시 해보면 돼”인지
또는 “실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인지
이런 문장들이
아이의 내적 기준을 만든다.

더크워스는 이를
‘고기대·고지지(high expectations, high support)’라고 표현한다.

기대는 높지만
그 기대를 혼자 견디도록 두지 않고
옆에서 지지해주는 구조.

이 구조는
그릿을 가장 건강하게 키워낸다.

반대로
기대만 높고
지지는 없는 환경은
아이를 불안하게 만든다.
늘 평가받는 기분이고
실패를 겪을 때마다
자기 존재가 흔들리는 것처럼 느낀다.


기대도 지지도 없는 환경은
아예 방향성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노력할 이유가 없고,
노력이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믿음 자체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설명을 읽으며
나는 잠시 서늘해졌다.
왜냐하면
나의 어린 시절이 이 두 극단 사이를
계속 오갔기 때문이다.

기대는 높았지만
실패에 대한 지지는 거의 없었다.
실수하면 바로 ‘능력 부족’으로 해석되었고
조금 뒤처지면
‘왜 이것도 못하냐’는 말이 돌아왔다.
그러다 보니
노력이라는 단어가
자기 확신보다는
불안과 연결되었다.

무언가를 오래 붙잡는다는 건
실패할 가능성을 오래 품는다는 뜻인데
실패가 위험이었던 환경에서는
오래 붙잡는 것이
그 자체로 부담이었다.

그릿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
내겐 그리 많지 않았던 셈이다.

더크워스는
이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도
뒤늦게 그릿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그릿이 성인이 된 이후의 환경에서도
충분히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두 번째 환경이
바로 ‘공동체’이다.

공동체는
직장일 수도 있고,
팀일 수도 있고,
친구 집단,
취미 동아리,
혹은 온라인에서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는지가
사람의 태도와 지속성을 크게 바꿔놓는다.

이 말은 어딘가 당연하면서도
실제로 경험해보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

책에서 등장하는 여러 사례 중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군인들에 대한 연구였다.
누군가는
군인들의 끈기와 인내가
단지 ‘군대라는 조직의 강도’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더크워스의 조사 결과는
전혀 달랐다.

군대가 끈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끈기를 존중하는 문화’가
그 분위기를 견고하게 만든 것이다.

초기에 훈련을 포기했던 군인들과
끝까지 버틴 군인들의 차이는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옆에 무엇을 보고 자랐는가’였다.

내 옆 사람이 포기하지 않으면
나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내 옆 사람이 불평만 하면
나도 금방 지친다.
공동체는
무의식적으로 기준을 만든다.
그리고 그 기준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이런 이야기들이 이어지면서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릿 있는 사람은 결국,
그릿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자신을 둔다.”

자기 혼자만의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변을 ‘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만든다.
이건 책이 주는 가장 실용적인 전략 중 하나였다.

만약 내 그릿이 약하다고 느껴진다면
의지력을 탓하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들 사이에 있는지를 먼저 보는 것이
훨씬 정확한 진단이라는 사실.

나도 이 부분에서
고개가 조금 숙여졌다.
왜냐하면
무기력했던 시기엔
늘 비슷한 태도의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불평이 많은 사람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대충하고 적당히 하는 것이
전략이자 안전한 방식인 양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과 오래 있다 보면
욕심을 부리는 게 오히려 이상해지기도 한다.
무엇인가에 도전한다는 행동 자체가
불필요한 욕심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릿이라는 건
절대로 혼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환경이 절반이다.

더크워스는
그릿을 만드는 공동체의 특징을
이렇게 정의한다.

– 노력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
– 실패를 숨기지 않고 공유하는 문화
– 자기 발전을 장려하는 언어 사용
– 탓하지 않는 태도
– 목표를 이야기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공동체

이 다섯 가지를 읽고
나는 내 주변을 천천히 떠올렸다.
과연
나는 이런 환경 안에 있었던 적이 있었나?

그리고
이런 공동체를 만들거나 들어가는 것이
내 그릿을 다시 세우는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도달했다.

자연스럽게
세 번째 환경으로 이어진다.
바로 ‘문화’.

문화는
개인이 만들기 어렵지만
개인이 거기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책의 여러 사례에서
성취가 높은 집단은
대부분 강한 문화적 공통점을 가진다.

분위기가 서서히 밀고 나아가고
거기 속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기준에 적응하려 한다.

문화가 강한 공동체의 특징은
대부분 외부에서 보기에도 선명하다.
문장 하나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우리는 결과보다 배움을 중시한다.”
“우리는 실패를 통해 나아간다.”
“우리는 서로의 성장을 돕는다.”
“우리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이런 문장은
단순히 멋있어 보이는 문구가 아니다.
거기 속한 사람들이
실제로 그 기준을 살아내고 있다는 뜻이다.

책은
미국의 많은 학교·훈련소·기업들을 조사했는데
그릿을 길러내는 환경의 공통점은
정확히 이 ‘문화적 언어’에 있었다.

이걸 읽고 나도
어쩌면 개인이 바꿔야 할 것은
자기 의지보다
자기가 속한 문화의 방향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과와 즉각적 보상만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오래 버티는 것이 미덕이 아니다.
오히려
빠르게 결과 내는 것만 강조되면
끈기와 인내는 비효율이 된다.
그러니
그릿이 자라기 어렵다.

반대로
오래 가는 힘을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지금의 실패가
미래의 성장과 연결되므로
의미가 생긴다.
그럼 사람은
실패를 견딜 이유를 찾게 된다.

그릿은
이런 문화적 문법을 따른다.
단절된 환경에서 자라지 않는다.
환경의 결을 타고 자란다.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문득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는 그릿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이 질문은
의지가 약한가를 묻는 것보다
훨씬 더 본질적인 질문이었다.

그릿은 개인이 만드는 게 아니라
개인이 ‘서 있는 자리’에서 자라는 힘이라는 사실.
이 깨달음은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실질적이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조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크워스는
이 환경들이 서로 연결될 때
그릿은 폭발적으로 강해진다고 말한다.

가정에서 의미가 움트고
공동체에서 지속성이 더해지고
문화에서 방향이 결정된다면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조금 늦더라도
다시 돌아온다.

이 모든 과정이
그릿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부터 그릿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나 또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릿을 ‘타고나는 기질’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게다가 삶을 오래 살아오면서 쌓인 습관들,
몇 번의 실패에 의해 눌린 자신감,
중간에 포기했던 기억들이
그릿이 없는 사람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만드는데
묘하게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릿이 후천적으로 충분히 키울 수 있는 힘이며
생각보다 더 작고 구체적인 행동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지겹도록 반복해서 설명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릿은 의지력이 아니라 방향성과 반복이 만든다.

그러니 의지가 약하다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절망 속에 밀어 넣을 필요가 없다.
의지는 본래 사람마다 오르내리고 흔들리며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다.

하지만
방향(목적)과 반복(집중 연습)은
조금만 손을 대면
누구든 관리할 수 있다.

오늘은
더크워스가 말하는 실질적인 전략 중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들만
내 삶의 경험과 함께 자연스럽게 풀어보고 싶다.
(이 글 전체가 분석적 리뷰이기보다
살아 있는 이야기처럼 흐르게 하고 싶어서.)

먼저 다뤄야 할 개념은
‘흥미’이다.

책에서 가장 놀랐던 점은
그릿을 가진 사람의 시작점이
의외로 ‘흥미’라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흥미는 사소하고 가벼우며
성공을 위해서는
흥미보다는 절대적인 헌신과 근성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더크워스는 이렇게 말한다.

“흥미 없는 근성은 오래 가지 않는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 대부분은
흥미가 약한 목표를
의지로만 밀어붙이려 한다.
그 결과는 대부분 비슷하다.
지속성 부족, 빠른 번아웃, 깊이 없는 성취감.

책에서 등장하는 성취자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또는 성장 과정에서
자신이 자연스럽게 흥미를 느낀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 흥미는 처음부터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좋아하는 것,
조금 더 시간을 쓰게 되는 것,
남들보다 집중하게 되는 것 정도.

여기서 중요한 건
흥미는 찾는 것이라기보다
키우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더크워스는 이렇게 말한다.
“흥미는 조용히 자란다.”
이 말이 왜 이렇게 가슴에 스며드는지.
돌아보면
내가 잘하려고 했던 것들 중
정말 오래 이어진 것들은
대부분 흥미가 있었던 것들이다.

그리고 흥미는 대부분
처음엔 매우 작고 사소하다.
하지만 그 사소함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진다.
그 과정이
더크워스가 말하는 그릿의 첫 단계이다.

두 번째는
‘연습’이다.
여기서 말하는 연습은
앞 회차에서 다룬 집중 축적 연습을 말하는데
굳이 따로 언급하는 이유는
이 연습이 단순한 반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습은
매일 같은 행동을 한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연습은
자신의 부족함을 정확히 인지하고
그 부족한 부분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과정이다.
즉,
‘불편함 속에 머무는 시간’이 바로 연습이다.

더크워스는
이 연습 자체를 좋아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습이 지루하고,
때로는 고통스럽고,
실력이 느는 순간보다
실력이 드러나는 순간이 더 많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릿 있는 사람들은
‘실력이 느는 그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
지루함의 숲을 헤매는 과정을 기꺼이 견딘다.

나는 이 부분에서
책이 말하는 성취란
재능의 결과가 아니라
“지루함을 견딜 이유가 있는 사람들의 결과”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세 번째는
‘목적’이다.
이건 앞에서 많이 다뤘던 주제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다른 맥락으로 중요하다.

흥미는 시작을 만들고
연습은 실력을 만들지만
목적은
그 모든 과정을
하나의 길로 묶어주는 힘이다.

흥미 없는 목적은 길을 잃고
목적 없는 흥미는 깊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목적 없는 연습은
단순한 힘의 소모로 끝난다.

나는 이 순서를 보고
내 삶의 많은 순간들이
왜 쉽게 끊어졌는지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무언가를 배우다가 중간에 그만둔 이유,
새로운 시도를 하다가
금방 포기했던 이유들.
그 모든 것들은
흥미·연습·목적 중
무언가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흥미만 있었다.
또 어떤 때는
목표만 있었다.
그러나 세 가지가 동시에 만나
하나의 흐름을 만든 적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래서 더크워스의 구조를 보고
마치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릿은
이 세 가지를 연결해서
‘오래 가는 사람’을 만들고
그 구조 안에서
사람은 서서히 단단해진다.

마지막 요소는
‘희망’이다.

여기서 말하는 희망은
막연한 낙관주의가 아니다.
‘내가 행동하면 상황이 바뀔 것이라는 믿음’이다.

더크워스는 이 희망을
‘학습된 낙관주의(learned optimism)’라고 설명한다.
그 유명한 마틴 셀리그먼의 이론과 이어지는데
핵심은 이것이다.

문제를 보았을 때
그 문제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절망한다.
하지만
문제가 지금은 이렇지만
내가 움직이면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끝까지 간다.

이 희망이
흥미·연습·목적을 지탱하는 마지막 축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머릿속이 묘하게 따뜻해졌다.

왜냐하면
그동안 나는
포기하는 순간마다
문제가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늘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해봐야 뭐가 달라지겠어?”
이 문장이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금 어려우면 멈췄고
조금 길어지면 지쳤고
조금 흔들리면 방향을 바꿨다.

그릿 있는 사람들은
이 문장을 다르게 바꾼다.

“조금씩 바뀔 수 있어.
나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 믿음 하나가
사람의 지속성과 성취 전체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더크워스는
그릿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릿은
흥미·연습·목적·희망의 결합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그릿이라는 단어가
처음엔 조금 딱딱하고 거리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조금 따뜻하고 설득력 있는 단어처럼 느껴졌다.

흥미는 시작을 밝히고
연습은 능력을 키우고
목적은 길을 연결하고
희망은 끝까지 가게 만든다.

그리고 이 네 가지는
능력이 아니라
태도와 선택의 영역이다.
이 말은
지금 어떤 상태의 사람이든
그릿을 조금씩 키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흥미·연습·목적·희망이라는 네 축이
그릿을 구성하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라고
더크워스는 말한다.

그리고 이 네 축은
각각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 기대고 연결되며
하나의 긴 흐름을 만든다.
그 흐름이 이어지는 동안
사람은 조금씩 단단해진다.

책의 마지막 장들은
이 네 가지가 실제 인간의 삶에서
어떤 변화의 패턴을 만드는지 보여준다.
그걸 읽으며
나는 계속
‘그릿이란 결국,
한 인간의 성장 서사 전체를 설명하는 말이겠구나’
싶었다.

성취나 성공이라는 단어가
요즘 너무 가볍게 소비되지만
그릿을 들여다보면
성취란 더 이상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오래 된 시간,
기다림,
고쳐 쓰기,
불편함,
낮은 자존감의 회복,
조금씩 더 깊어지는 이해,
그리고 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 태도의 조합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이 책에서
한 가지 문장을 유난히 오래 붙들었다.

“오래 가는 사람은 결국 이긴다.”

이 문장은
자극적이지도 않고
과장도 없다.
하지만
삶에 대해 가장 정확한 말 중 하나다.

우리는 너무 많은 순간을
빠르게 움직이려 한다.
조급함이 능력처럼 여겨지고
한 방에 성공하는 것이
마치 전략처럼 소비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릿은
조급함의 반대편에 있다.
조금 느리고
조금 번거롭고
조금 고독하고
조금 불편한 방식이다.

그러나 이 불편함 속에서
조금씩 자라는 힘이 있다.
그 힘은
단순한 재능보다 오래가고
운보다 더 안정적이며
환경의 변화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릿은
끝내 사람을 자기 자리로 데려다 준다.
우회하더라도
늦더라도
마침내 가야 할 곳으로 도달하게 만든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더크워스는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오래 갈 것인가?”

사실 책 전체가
이 질문을 향해 있었다.

흥미는 이 질문의 씨앗이고
연습은 줄기가 되고
목적은 뿌리가 되며
희망은 다시 성장하게 하는 햇빛이다.

결국
그릿이란
내가 오래 붙들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다.

나는 이 질문을 받아들이면서
나 스스로의 삶에서
오래 가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어릴 때는
그냥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고
새로움이 재미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오래 가는 것”보다
“빨리 되는 것”에 집착했던 시기가 있다.
그런 시기에
많은 것들이 깨지기도 하고
스스로를 미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왜 흔들렸는지,
어떤 지점에서 방향을 놓쳤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다시 찾아야 하는지를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릿을 키운다는 건
과거의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실패를 다시 한 번
의미로 묶어내는 과정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어릴 때는 자신을 믿고
어른이 되면서 자신을 의심하는데
그 사이의 균열을 메우는 것이
바로 그릿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릿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쉽게 놓지 않는 사람이다.
그 믿음은
재능에서 오지 않는다.
경험에서 온다.
그리고 반복에서 오고
정직하게 자신을 다루는 태도에서 온다.

책의 여러 사례들을 따라가면서
나는 그릿이란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을
계속 느꼈다.

실패하고
다시 일어나고
다시 부딪히고
다시 넘어지고
다시 손을 뻗고
조금씩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어떤 삶을 원하는지
점점 더 선명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

더크워스는
그릿이 인생의 모든 문을 열어주는
만능 열쇠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 열쇠는
문 하나를 열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문을 열 수 있는 힘까지
조금씩 보태준다고 말한다.

그게
그릿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지점이다.

그릿을 키우면
성공이라는 단어에 휘둘리지 않고
삶을 대하는 방식 전체가 변한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조금 돌아가도 괜찮다.
중간에 흔들려도 괜찮다.

왜냐하면
오래 가는 사람은
결국 도착하니까.

나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하나의 결론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그릿은 인생을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인생을 대하는 태도이다.

그리고
이 태도는
어떤 사람에게나
다시 시작될 수 있다.

그릿은
나이가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환경이 전부 결정하는 것도 아니며
특별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릿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흥미에서 시작되고
내가 하루에 10분이라도 연습하는 시간 속에서 길러지고
내 삶의 목적을 조금씩 다시 편집하는 과정에서 자라며
내가 행동하면 상황이 바뀐다는
아주 작은 희망에서 완성된다.

책을 덮고 나면
이 네 가지가
단순히 이론이 아니라
삶의 원리로 남는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어떤 사람이고 싶었는지
어떤 길에서 멈췄는지
언제 흔들렸는지
그 흔들림이 왜 나왔는지
이 모든 것들이
처음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했다.

그릿은 결국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된다.

그리고 그 답은
생각보다 더 조용한 목소리로 온다.

조급하지 않은 목소리,
비교하지 않는 목소리,
오래 가자고 말하는 목소리,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는 목소리.

나는 지금도
그 목소리를 가끔 떠올린다.

그래.
오래 가자.
천천히 가더라도.
일단 오늘 한 걸음만.
하루 10분이라도.

그게
그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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