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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제작한 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 리뷰 포스팅 글 대표 썸네일 이미지 입다

내가 나로 살아가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삶의 진짜 얼굴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나는 이미 꽤 지쳐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지만, 마음 안 깊은 곳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나라는 사람이 조금씩 흐려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일을 할 때든, 사람을 만날 때든, 누군가의 기대를 채우는 데 익숙해져 있었고
그 기대가 나를 조금씩 잡아먹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밝게 웃고 있는데도
왜인지 모르게 허기가 남는 날들이 많았다.
말을 많이 했는데도
내 진짜 마음은 단 한 번도 말한 적 없던 날처럼
속이 텅 비어 있었다.
그러다 문득 어떤 날엔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나를 힘들게 만드는 선택만 반복하는 나를 보며
스스로에게 서운한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가 점점 사라지는 느낌을 참아가던 어느 날,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을 다시 보게 되었다.
유난히 피곤했던 날이었는데
책 표지 제목이 지나치게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한동안 그 문장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
너무 당연한 말인데
왜 그렇게 낯설게 느껴졌을까.

돌아보면
나는 오랫동안 ‘나답게’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지나치게 조심했고
지나치게 맞추려고 했고
지나치게 노력했다.
그 노력의 대상이 대부분 ‘타인’이었고
정작 나를 위해 한 노력은 거의 없었다.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아마 그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마치 누군가가 조용히 내 손을 잡아
“이제 네 마음 좀 보자”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책을 펼치는 동안
조용했던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고
움직이는 마음을 따라
내 일상도 함께 흔들렸다.

책의 문장 하나하나가
다른 사람을 위한 삶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잔잔한 파문처럼 퍼졌다.
문장을 읽고 나서 책을 덮고
그 문장을 오래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건 쉬운 변화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내 마음에 자꾸만 ‘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예전엔 늘 ‘상대’가 먼저였는데.

나는 그리 강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강한 척하며 살았던 것 같다.
감정이 상해도 괜찮은 척했고
지쳐도 밝은 척했고
정말 하기 싫은 일에도
내가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점점 마음이 마모되는 걸
눈감고 지나쳐버렸다.

책에서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자신을 잃어가는지
아주 잔잔하게, 그러나 정확하게 이야기한다.
마치 그 문장들이
오래전부터 내 마음 어딘가에 놓여 있었던 진실을
드디어 드러내는 느낌이었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로 살아도 된다’는 허락을
스스로에게 내리는 과정이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는 그 허락을
한 번도 나에게 제대로 해준 적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 듣지 않기 위해
내 감정을 억누르는 게 습관이 되었고
표현을 하지 않는 게 편해져 버렸고
관계 안에서 예의와 배려라는 이름으로
내 마음을 계속 뒤로 미뤄두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무엇이 싫었는지도
정확히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한참을 생각했다.
“나는 언제부터 나를 잃기 시작했을까?”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그건 서서히,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진행된 일이었다.
그리고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균열들이
조금씩 벽을 무너뜨리듯
내 마음도 그렇게 무너져왔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놀랐던 건
‘나답게 산다’는 말이
생각보다 훨씬 더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이었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려면
그동안 미뤄두었던 감정들을 마주해야 하고
그 감정들이 왜 생겼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불편한 기억들도 올라오고
애써 잊어버린 상처들도 다시 흔들린다.
나답게 산다는 건
그 모든 걸 견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 충실하기로 선택하는 일이다.

책을 읽고 나서
내 일상에는 작은 변화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예전엔 무심코 넘기던 감정들에
잠시 멈추는 시간이 생겼다.
내가 불편했는지
내가 힘들었는지
내가 서운했는지
그걸 먼저 묻기 시작했다.
그 질문들은
내가 나에게 너무 오래 동안 하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이 변화는 아주 작은 출발이었지만
그 작은 변화가 내 삶 전체를
조금씩 바꿔놓기 시작했다.
마치 마음속 한 구석에 묶여 있던 매듭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마음속에서 이런 문장을 조용히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이 문장이 처음으로
진짜 ‘나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순간이었다.

아마 이건 시작일 뿐일 것이다.
나답게 산다는 건
한 번 결심한다고 갑자기 되는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그 길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
이상할 만큼 든든하게 느껴졌다.
계단을 오르듯
조금씩, 조금씩
오래 걸리더라도
나는 나답게 살아갈 힘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다 보면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조금씩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그건 누군가가 알려주는 정답을 따른다기보다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내 감정의 방향을
처음으로 또렷하게 보게 되는 경험에 가깝다.

나는 예전부터
사람들이 나에게 바라는 모습이
내 진짜 모습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실망을 주는 게 싫었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내 존재 자체가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늘 나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누군가의 감정과 눈치를
나보다 먼저 챙기는 습관이 생겼다.

그 습관은
처음엔 내가 생각하는 ‘배려’라고 믿었지만
오래 지나고 나니
그건 배려가 아니라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 몸부림 속에서
나는 나를 점점 작게 만들고 있었다.

책의 여러 문장들이
그 사실을 아주 천천히, 그러나 깊게 일깨워줬다.
“당신의 마음을 가장 가볍게 만드는 선택이
대부분 당신답게 사는 선택이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오래된 짐 하나를 내려놓은 사람처럼 마음이 조용해졌다.
그동안 내 마음을 얼마나 무겁게 만드는 방식으로 살아왔는지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게 싫어서
내 감정을 숨기고
내 욕구를 억누르는 삶을 오래 살아왔다.
그런데 숨기면 숨길수록
나만 상처받는 일이 많았다.
정작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았는데
나는 늘 상처를 품고 살아야 했다.
그 모순이 얼마나 벅찼는지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책을 읽으며
내 마음에 가장 많이 남았던 건
‘나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결국 가장 나다운 삶이라는 메시지였다.
정직함은
상대에게 솔직히 말하는 용기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지 않는 단단함도 포함한다.
그 단단함을 나는 너무 오랫동안 갖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사소한 일이었다.
지인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날 나는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당연히 도와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내 입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온 말이
“오늘은 힘들어서 어려울 것 같아”였다.
말을 하고 나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리고 더 놀라웠던 건
그 말을 하고 난 뒤
마음이 주저앉는 대신
가벼워졌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는 일이
이렇게 편안한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처음 알았다.
단지 솔직한 한 문장을 말했을 뿐인데
그 문장이 나를 보호하는 울타리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
나는 작은 변화들을 시도해보기 시작했다.
내가 괜찮지 않은 날엔
괜찮은 척하지 않으려고 했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잠깐이라도 멈칫하고 생각해보려고 했다.
사소한 감정이 올라오면
그 감정을 눌러버리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려고도 했다.

이 시간들은
내 마음을 다시 복구하는 과정 같았다.
오랫동안 단단하게 잠겨 있던 문을
천천히 열어
빛이 들어오게 하는 느낌이었다.

변화는 생각보다 천천히 진행됐고
때로는 되돌아가는 순간도 있었다.
나답게 살겠다고 결심했는데
또다시 누군가에게 맞추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날도 있었고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일정을 과하게 끌어안고 있는 나를 보며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책에서 읽었던 문장들이
조용히 떠오르곤 했다.
“삶은 완벽한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라
조금씩 ‘나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이 문장이
되돌아간 듯한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나답게 산다는 건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흔들리더라도
다시 나에게 돌아올 수 있는 힘을
조금씩 키워가는 과정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흔들리더라도
조금 덜 다그친다.
사람이 내 말에 줄곧 실망할까 봐
조금 덜 조급해한다.
누군가와 거리를 두게 되어도
조금 덜 두려워한다.

예전의 나는
관계가 흔들리면
그게 곧 내 존재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관계가 나에게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흔들리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그 가능성을 받아들이니
내 마음이 훨씬 자유로워졌다.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크게 배운 건
‘나답게 산다는 건 나를 다시 중심에 세우는 일’이라는 사실이었다.
세상 중심도, 관계 중심도 아니고
오직 나의 중심.
그 중심을 찾는 과정이
생각보다 길고 복잡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걷는다는 사실 자체가
참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로 살아도 괜찮구나.”
이 문장이
삶을 통째로 흔들어놓을 만큼 큰 변화였다는 걸
나는 지금도 느낀다.



내가 나답게 살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당장 하루가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내게 기대를 걸었고
나는 여전히 그 기대를 조심스레 살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달라진 건
내가 내 마음을 조금 더 앞자리에 둔다는 점이었다.

예전에는 누군가가
“시간 괜찮아?”라고 물으면
몸 상태나 일정과 상관없이
습관적으로 “응, 괜찮아”라고 말했다.
그 말 뒤에 따라오는 피로와 후회까지
미리 감당하는 게
어느새 내 일상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입에서 저절로
“그날은 좀 어려울 것 같아”라는 말이 나왔다.
아주 작은 문장이었지만
그 말이 내 삶을 조금 바꾸기 시작했다.
그 작은 솔직함 하나가
내 마음을 지키는 시작이었다.

거절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한 뒤
한참 동안 마음이 불편해질 때도 있었다.
속으로는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건 아닐까?’
‘저 사람이 실망하면 어쩌지?’
이런 속삭임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견디는 힘이
조금씩 생겨났다.
내가 나를 지켜줄 수 있다는 확신이
조금씩 커졌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정들을 새삼 알게 되었다.
싫은 건 싫다는 마음,
힘들면 힘들다는 마음,
쉬고 싶다는 마음.
이 당연한 감정들을
나는 몇 년 동안 억눌러 살아온 사람이었다.
남들 눈에 비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내 감정을 묻어버린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진짜 나를 만나려면
남들의 기대를 줄이고
내 마음의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
그 문장을 읽으며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남들의 기대가 너무 커져버린 건
사실 그 기대를 계속 들어준 나 때문이었다.
기대를 줄이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나를 지켜야 한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살피는 습관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스로에게 “오늘 나는 어떤지”를 묻는 작은 시간을 만들었고
하루 중 몇 번은
감정의 파동이 올라오는 걸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했다.
억누르지 않고
그냥 “아, 지금 내가 이렇구나” 하고 인정하는 것.
그 인정만으로도
마음은 조금씩 편안해졌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씩 달라졌다.
누군가가 나에게 과한 부탁을 하면
예전처럼 무조건 들어주지 않고
상대의 입장보다
내 감정부터 먼저 살펴보았다.
이게 나에게 괜찮은 일인지
내가 지금 감당할 수 있는지
내 마음이 어떤지
그 순서를 지키려고 했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쌓이자
나는 더 이상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를 소모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건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내 에너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 차이가 삶 전체의 균형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변화는 늘 양가적이었다.
내가 나를 중심에 두기 시작하자
몇몇 관계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예전처럼 ‘내가 다 해주지 않자’
관계의 온도가 식어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엔 서운했다.
내가 나답게 살려고 하는데
왜 관계가 멀어져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멀어짐이 어쩌면
필연적인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나답게 살기로 하면
나답지 않은 관계는
유지될 이유가 없어진다.
억지로 맞추고
억지로 따르며
억지로 유지해오던 관계들은
내가 나에게 돌아오는 순간
더 이상 붙잡을 필요가 없다.

그걸 받아들이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멀어지는 관계가
내가 잘못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가 원래부터
나와 맞지 않았다는 사실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제야 나는
관계가 깨지는 게 아니라
정리되는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변화는
내 삶에 더 많은 여백을 만들었다.
진짜로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과
더 따뜻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나를 소비하는 관계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더 이상
불필요한 일들에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

덕분에
내가 원하는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 욕구는
늘 ‘나중에’로 밀려났는데
이제는 그 나중을
오늘로 당겨오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나를 소중히 여길수록
나답게 살고 싶은 마음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책에서는
“나답게 산다는 건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을
최근 들어 확실히 느끼고 있다.
삶의 무게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마음을 두는 방향이 달라지니
모든 게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 가벼움이
나를 더 멀리 이끌어줄 것만 같은
이상한 확신도 생겼다.

지금 나는
그 확신을 조용히 믿어보기로 했다.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조금씩 나에게 돌아가고 있으니까.
그 조금씩이라는 속도가
지금의 나에게는
아주 충분하다.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그날의 일정이 가벼워서도 아니었고
특별히 기분 좋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마음 한가운데
잘 설명되지 않는 여유 같은 것이 있었다.

예전의 나는
눈을 뜨자마자
오늘은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고
누구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고
어떤 기대를 채워야 하는지를 먼저 떠올렸다.
마치 하루가
‘타인을 위한 목록’으로 시작되곤 했다.
그래서 하루가 끝날 때면
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았음에도
어쩐지 혼자 남겨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요즘은
아침의 첫 감정이
조금 다르다.
오늘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마음이 어떤지
그걸 먼저 바라보게 된다.
그 작은 차이는
내 삶 전체를 다른 톤으로 흘러가게 만들었다.

내가 나에게 가까워지자
사람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바뀌었다.
예전에는 관계 속에서
항상 ‘미리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상대가 불편해하기 전에
내가 먼저 움직이고
상대가 말하기 전에
먼저 배려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유지했다.

그 방식은 언뜻 따뜻해 보이지만
실은 나를 많이 소모시키는 방식이었다.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진 않았는데
나는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좋은 사람의 역할’을 떠안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답게 산다는 것이
타인의 기대와 상관없이
내 감정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그 역할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색했다.
내가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를 멀어할 것 같았고
내가 모든 걸 챙기지 않으면
관계가 금방 느슨해질 것만 같았다.
내가 그토록 애써서 유지해 온 관계들이
내 노력 하나 빠졌다고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억지로 노력해야 유지되는 관계는
애초에 내 관계가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그저
상대의 빈자리를
내 노력으로 채워넣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걸 인정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하지만 인정하고 나니
이상하게 편안해졌다.
내가 아닌 것들에
기운을 쏟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관계를 바라보는 기준을 바꾸었다.
누가 나를 좋아하는지보다
누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지
그걸 먼저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사람들과의 거리가
조금씩 자연스럽게 조정되었다.

그 과정에서
몇몇 관계는 조용히 멀어졌고
몇몇 관계는 더 깊어졌다.
특히 깊어진 관계들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관계였다.
내가 먼저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편안하게 다가오는 관계들.
그 관계들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마음이 안전하다고 느꼈다.

마음이 안전하다는 감각은
생각보다 큰 힘을 준다.
그 안전함 속에서
나는 더 솔직해질 수 있었고
더 천천히 말을 골라 쓸 수 있었고
더 나답게 머물 수 있었다.

한 번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가
“요즘 너 좀 달라졌다.
근데 좋은 쪽으로.
예전보다 훨씬 네가 네 같아.”
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아주 조용하게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그전까지 나는
변화를 ‘내가 혼자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군가의 눈에도
그 변화가 보인다는 건
그 변화가 삶의 표면까지
닿았다는 의미였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정말 변하고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 흔들리는 날도 많다.
여전히 누군가의 감정에
괜히 책임감을 느낄 때도 있고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고 돌아선 길에서
마음이 조용히 불편해지는 날도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 불편함에 휘둘리지는 않는다.

“흔들려도 괜찮아.
다만 다시 나로 돌아오면 돼.”
이 문장을
마음 안쪽에 새겨두고 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한 문장은
내 하루를 버티게 하는
부드러운 중심이 되어주었다.

나는 이제
누구든 좋아해달라고 애쓰지 않고
누구든 떠날까 봐 두려워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버려질까 봐
내 마음을 덜어내는 대신
나는 이제 나를 위해
내 마음을 더 단단히 붙든다.

이건
작지만 큰 변화였다.
그리고 이 변화는
내 삶에서 가장 깊고 오래 남을 변화가 될 것 같다.

지금 나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나답게 사는 중이다.




나답게 살기로 결심한 뒤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내 하루에 ‘나만의 시간’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거창한 시간은 아니었다.
출근하기 전 잠깐의 고요,
점심시간에 스스로에게 던지는 짧은 질문 하나,
퇴근 후 내 감정을 정리하는 몇 분의 여유 같은 것들.

예전의 나는
이런 시간들을 ‘사치’라고 생각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맞춰야 할 사람도 많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넘쳐나는데
나 혼자 마음 들여다보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냐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이 시간들이야말로
내 삶을 유지하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였다는 걸.

나라는 사람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매일 조금씩 나에게 돌아가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걸 모르고 살았던 시절엔
나는 늘 남에게 기대어 살았고
남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출렁거리는 일이 많았다.

요즘은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그 말이 나를 통과해버리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마치 예전에는 감정이 전부 내게 쏟아져 들어왔다면
지금은 감정의 반 이상이
그 자리에서 흩어져버리는 것처럼.
그 변화는
누가 나를 덜 공격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에 ‘여유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 여유 공간은
억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나를 자책하지 않는 연습,
내 감정을 무시하지 않는 연습,
남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지 않는 연습들이
천천히 쌓이면서 생겨난 공간이었다.

이 공간 덕분에
나는 이제
내 감정을 예전처럼 무겁게 들고 다니지 않는다.
불안이 올라오면
불안하다고 인정하고
외로움이 오면
외롭다고 받아들인다.
그 감정을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무언가를 하려 하지도 않는다.
감정은
어차피 언젠가는 지나가니까.

언젠가 회사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
갑자기 일정이 꼬이는 상황이 있었다.
예전의 나라면
당황하고 불안해하며
그 책임을 내가 전부 떠안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그 짐을 등에 짊어지고
혼자서 애쓰며 버텼을 거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우선 깊게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라고 조용히 말했다.
그 말 하나가
상황을 해결해주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는 충분했다.

예전 같았으면
감정이 방향을 잡지 못해
혼자서 소란스러워졌을 텐데
그날은 마음이 단단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단단함이
나답게 산다는 것이 가진 힘이라는 걸
그 자리에서 깨달았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이렇게 달라졌다.

한 번은
집에서 쉬는 날이었다.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약속도 잡지 않고
그냥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예전의 나는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불편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것 같고
누군가 나를 잊어버릴 것 같은
이유 없는 불안이 올라오곤 했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오히려 나를 살리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커피를 마시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창밖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 한가운데
‘이게 나답게 사는 하루구나’
하는 생각이 부드럽게 흘렀다.

또 다른 변화는
관계의 ‘속도’를 조절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금방 마음을 열어버렸고
상대가 조금만 다정하게 대해도
그 다정함에 나를 온전히 기대버렸다.
그러다 상대가 어느 순간 선을 긋거나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
나는 상실감에 조용히 무너졌다.

지금은
새로운 관계가 생겨도
조급히 기대지 않는다.
마음을 천천히 나누고
상대의 나머지 부분을 관찰할 여유도 생겼다.
친절함과 진심은 다르다는 걸
서른이 넘어서야 알게 된 나로서는
늦게 배운 만큼
더 깊이 받아들이게 된 진실이다.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의 호의에 빨리 반응하지 않고
내 마음이 어떤지 먼저 들여다본다.
‘이 관계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내 마음이 안전한지’
‘내가 무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걸 먼저 체크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 작은 습관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정말 많이 줄어들었다.
상대가 나를 실망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더 이상
내 마음을 몰아붙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좋은 관계는
예전보다 더 부드럽게 유지된다.
필요 이상으로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내가 솔직해져도
흔들리지 않는 관계들.
그 관계들 속에서
나는 ‘나답게 있어도 괜찮다’는 확신을 얻는다.

이 확신은
내 삶을 조금씩 바꾸었다.
예전에 무너지던 순간들에서도
이제는
“그래도 나는 나로 살기로 했지”
이 문장이
조용히 나를 다시 세워주었다.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는 삶에서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는 삶으로
방향이 바뀐 것이다.
그 방향이
내 마음을 더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마
나는 이제부터 더 깊이,
더 천천히,
더 솔직하게
나답게 살게 될 것이다.


요즘 나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예전보다 훨씬 편안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정확히 언제부터 이런 변화가 생긴 건지 모르겠지만
돌아보면
이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니라
아주 오래, 아주 천천히 쌓여온 것 같다.
책에서 배운 작은 문장들이
조용히 내 삶에 스며들면서
생각의 결이 달라졌고
그 결이 삶을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왔다.

예전엔
누군가가 나에게 “너는 어떤 사람이야?”라고 묻는다면
나는 나라는 사람보다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먼저 떠올렸다.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할지,
어떤 모습으로 보여야 할지,
어떤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할지.
나는 늘 그 틀에 나를 맞추며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은
그 질문을 들으면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먼저 묻게 된다.
내가 중요한 게 무엇인지
어떤 관계가 편안한지
어떤 시간에 마음이 살아나는지
그걸 나에게 물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변화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자연스럽고도 깊었다.
인생에서 어떤 변화는
사람들이 알아채는 것보다
내가 먼저 느끼는 변화들이 있다.
나는 지금
그 변화를 직접 느끼고 있는 중이다.

한 번은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퇴근해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길가에 노란빛 가로등이 켜져 있었고
바람이 살짝 차가웠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그날 하루를 천천히 떠올려보았다.
누구의 눈치를 보며 한 말도 없었고
억지로 웃으며 넘긴 순간도 없었다.
평범한 하루였지만
그 하루 안에서
내가 편안하게 존재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큰 안도감을 주었다.

그런 순간이 쌓여
나는 조금씩
내 삶을 믿게 되었다.
예전엔
삶이 나를 끌고 가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삶을 걸어가는 느낌에 더 가깝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멈추고
내가 방향을 바꾼다는 감각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물론
나답게 산다는 건
항상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내가 예전 방식으로 반응해주기를 바랄 때가 있고
나에게 편리했던 모습을
계속 기대하기도 한다.
특히 오래된 관계일수록
그 기대는 더 뿌리가 깊다.

그래서 어떤 날은
관계 안에서 미묘한 긴장감이 생기기도 한다.
예전처럼 무조건 도와주지 않고
예전처럼 쉽게 감정을 숨기지도 않으니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는 순간도 있다.
그 표정이 잠깐 나를 흔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 흔들림은
예전만큼 오래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제 나는 안다.
내가 나답게 살기 위해 세운 경계가
누구에게 상처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선이라는 것을.
그 선을 지키는 과정에서
몇몇 사람은 실망할 수도 있고
몇몇 관계는 느슨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조차
나를 더 나답게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들이다.

나답게 산다는 건
누군가를 밀어내는 일이 아니라
내가 나의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그 차이를 이해하게 되자
마음이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알게 된 게 있다.
내가 나답게 살기 시작하자
삶이 예전보다 훨씬 더 단순해졌다는 것이다.
복잡하게 고민하던 일들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사람 때문에 겪던 감정의 소란도
조금씩 잦아든다.
내 삶에서 중요한 것들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그 단순함이
결코 비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 단순함 속에서
나는 더 많은 것들을 본다.
내 마음의 온도,
내 하루의 속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
내가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는 아주 잘 보인다.

가끔은
이렇게 마음이 편안해도 되는 걸까
의심이 들 때도 있다.
너무 조용하고
너무 여유롭고
너무 나에게 집중된 것 같아서
낯설다는 이유로
조금 불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책에서 읽은 한 문장이 떠오른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를 내려놓고
내가 숨 쉴 수 있는 속도로 사는 것이다.”

나는 이제
그 속도를 한 번도 잃고 싶지 않다.
내가 숨 쉴 수 있는 속도.
나를 잃지 않는 속도.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속도.

그 속도로 살기 시작한 뒤로
삶이 조금씩
내 편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이게 바로
나답게 산다는 것이 가진 힘이라는 걸.




나답게 살겠다고 마음먹은 뒤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기대’에 대한 내 태도였다.
예전에는 남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기준에 맞추려고
애를 쓰는 게 당연했는데
지금은 그 기대들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원하는 것과
내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
항상 같을 필요는 없다는 걸
나는 이제 비로소 이해했다.
처음엔 그 사실이 조금 서운했고
조금 낯설었다.
왜냐하면 나는 오랫동안
남이 기대하는 ‘좋은 사람’으로 살기 위해
내 기준과 감정을 뒤로 미루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기대에 전부 맞춰 살다 보면
결국 살아남지 못하는 건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걸.

내가 나답게 살기로 결심한 건
누구에게 반항하려는 것도
누군가를 실망시키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더 이상
내 삶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심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가장 먼저 달라진 건
일상 속의 감정들이었다.
예전에는 감정이 생기면
그 감정이 위험하다는 듯
억지로 눌러서 숨기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감정이 올라오면
그냥 “아, 지금 내가 이렇게 느끼는구나”라고
담담하게 바라본다.

이 단순한 과정이
너무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으니
감정이 내 어깨를 붙잡고 흔들지 않게 되었다.
감정을 숨기지 않으니
숨기기 위해 만들어야 했던
억지의 에너지가 사라졌다.

감정을 그냥 감정으로 두는 것은
정말 큰 힘이었다.
그 힘 때문에
나는 비로소
내 마음과 화해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잠들기 전 조용히 누워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오랫동안
나에게 엄격하게 굴었을까?”

그 질문을 떠올리는 순간
가슴 한쪽이 뻐근해졌다.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한 적이 없는데
나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살았다.
실수하면 안 되고
약해지면 안 되고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고
모든 걸 잘해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살았다.

그렇게 살면서
나는 스스로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파진다.

하지만 요즘은
그 엄격함이 조금씩 풀리고 있다.
나에게 말하는 문장들이 달라졌다.
실수해도 괜찮다고
오늘 조금 느려도 괜찮다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것 같은 날에도
나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그런 문장들이
마음속에서 조용히 떠오른다.

그 문장들은
누가 알려준 문장이 아니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려고
조금씩 배우면서
스스로에게 건넨 문장들이었다.

그 문장들이 쌓이자
내 마음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마음을 바탕으로
내 삶도 아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삶을 예전보다 조금 느리게,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한다.
바쁘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도
스스로에게 귀 기울일 여유를 만들고
내가 소중히 여겨야 할 것들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 여유가 생기자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어쩐지 더 선명해졌다.
커피를 마시던 순간의 온도,
누군가가 건넨 진심 어린 한 문장의 울림,
해 질 무렵 창밖으로 스며드는 조용한 노을 같은 것들.
예전에는 지나치듯 스쳐 갔던 것들인데
지금은 그 순간들이
내 하루를 편안하게 채워준다.

이 모든 변화는
책 덕분이기도 하지만
결국 내가 내 삶을 바꾸기 위해
조용하고 끈질기게 노력한 결과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나는 조금씩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마음이 어떤 순간에 살아나는지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이제는 두렵지 않다.
누가 나에게 어떤 기대를 하든
그 기대에 맞추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이 생기자
나는 비로소
나답게 살기 시작했다.


가끔은
예전의 나를 떠올려 보게 된다.
지금의 내가 보기에는
그때의 내가 참 안쓰럽고,
또 한편으로는 참 대단하다.
그렇게까지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결국 버티며 살아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나는 늘
누군가에게 맞추는 삶을 살았지만
돌아보면
그 맞춤이 내 삶을 어디까지 흐트러뜨렸는지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살아왔다.
남에게 잘해주면 할수록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관계가 깊어질수록
나는 점점 더 혼자가 되어 갔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절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 시절의 내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나답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간절해진 것이기도 하니까.

그 시절의 나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었고
관계를 잃는 게 두려웠고
나를 내세우는 법을 몰랐던 것뿐이다.
그것이 부족함이 아니라
그저 그때의 나에게는
그 방식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나니
내가 나를 더 부드럽게 바라볼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훨씬 더 성장했지만
그 성장의 바탕이
예전의 나였다는 걸
이제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 평가가
내 가치의 기준이 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누군가에게 버려질까 봐
내 감정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리하게 사랑하지 않고
무리하게 이해하지 않으면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답게 산다는 건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선택하는 일이다.

그 선택은
사소한 일들 속에서 시작된다.
예전에는
누군가가 언성을 조금만 높여도
내 잘못이 아닌데도
덜컥 불안이 올라왔다.
그 불안 때문에
상대의 감정을 먼저 달래야 한다는
이상한 압박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누가 크게 말하든
어떤 표정을 짓든
그 감정이 내 책임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내 책임이 아니라는 걸
내 마음이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변화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였다.
나는 예전보다
훨씬 더 침착하게,
훨씬 더 차분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차분함은
누군가 나에게 준 것이 아니라
내가 오랜 시간 걸쳐
스스로에게 준 선물이었다.

한 번은
지하철에서 사람이 많은 시간,
누가 내 어깨를 세게 치고 지나갔다.
예전 같으면
“내가 잘못 움직였나?”라고 먼저 생각했을 텐데
그날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저 사람에게 여유가 없었나 보다”
이렇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그 작은 순간 하나가
나를 너무 놀라게 했다.
내 마음이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져 있다는 걸
그 사소한 찰나에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씩 확신하게 되었다.
아, 나는 정말 변했구나.
그 변화는 거창하지 않지만
삶의 가장 깊은 부분에서
조용히 일어나고 있구나.

그리고 나는
그 변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요즘의 나는
더 솔직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그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억지로 용기를 내는 게 아니라
그냥 그 마음이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내게 조금 서운한 말을 했을 때도
예전에는 혼자서 가만히 상처받고
말 한마디 못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부드럽게 말할 수 있다.
“너의 말이 조금 상처가 됐어.”
과격하지도 않고
과하게 감정적이지도 않은 방식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건
상대에게 용기를 낸 것이 아니라
나에게 용기를 낸 것이다.

그 용기가 생기자
관계도 조금씩 달라졌다.
솔직함은
관계를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건강하게 지켜주는 힘이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답게 산다는 건
이런 순간들이 쌓여
삶 전체를 바꾸어놓는 일이다.

그 변화를 느끼는 순간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순간 하나하나가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어주고 있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내 마음의 방향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으로
조용히 성장하는 중이다.



요즘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시간을 사랑하는지,
어떤 감정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조금씩 더 명확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그런 것들을 묻는 질문 자체가
사치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의 나는
그 질문이 내 삶을 지켜주는 가장 중요한 기초라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스스로에게 처음으로
“나는 나로 살겠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 말 뒤에는
말하지 못한 두려움이 많았다.
나답게 살면
사람들이 나를 떠날까 봐,
관계가 흔들릴까 봐,
누군가의 기대에서 벗어나면
나도 금방 잊혀질까 봐.

그 두려움은
오래된 그림자 같은 것이었다.
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는데
나는 스스로를 그런 마음 안에 가두며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나답게 살았을 때 떠나는 사람이라면
그 관계는 나에게 머물 이유가 있었을까?”

그 질문 하나가
내 안에서 오래 누르고 있던 매듭을
조금씩 풀어냈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나를 잃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자
사람에게 기대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졌다.
예전에는
조금만 따뜻함을 받아도
그 온도에 과하게 기대버렸는데
지금은
누군가의 따뜻함과
내 마음의 중심을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다.

이 변화는
몇 년 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누군가 큰 소리로 웃으며 나에게 다가오면
기분이 쉽게 들떴고
누군가 조금 무심하게 대하면
하루 종일 마음이 가라앉고는 했다.
나는 타인의 감정 변화에
내 감정을 맡기고 살았고
그걸 내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그건 성격이 아니라
경계 없음이었다.
경계가 없으니
누구든 내 삶을 건드릴 수 있었고
그 결과
나는 늘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다.
누군가 다가와도
침착하게 마음의 중심을 유지하고
누군가 멀어져도
내 삶이 무너지지 않는다.
그저 삶의 흐름일 뿐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최근에는
누군가를 잃는 것보다
나를 잃는 것이 훨씬 더 두렵다는 걸
정확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 마음이 생기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내 삶을 내 손으로 붙잡기 시작했다.

나답게 산다는 건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싶은지를
조용히 선택하는 일이다.

그 선택은
매일의 작은 순간들에 담겨 있다.

피곤한 날에는
약속을 미루고
혼자만의 쉬는 시간을 허락하는 일.

누군가의 말이
내 마음에 상처가 되면
그 감정을 숨기지 말고
스스로에게 “아프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일.

잘 보이기 위해
무리해서 친절을 베풀지 않는 일.

누군가의 인정이 없어도
내 삶이 가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믿어주는 일.

이런 사소한 선택들이
조용하게 쌓이면서
나는 어느새
내가 원하던 인생의 방향을
조금씩 따라가고 있었다.

지금 나는
내 삶이 급격하게 바뀌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삶의 결이 달라졌다고 말하고 싶다.
예전에는
삶이 나를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삶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무리하지도 않으면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만큼
내가 나답게 살고 싶은 만큼.

그 정도면
충분하다.
아니, 충분히 아름답다.

가끔
오랜 친구들이 말했다.
“너 요즘 표정이 편안해.”
그 말을 들으면
나는 조용히 웃는다.
그 편안함은
누군가 내게 준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준 것이기 때문이다.

나답게 산다는 건
결국 이런 삶이었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고
누구의 기대도 필요 없으며
누구의 시선도 필요 없는 삶.
내 마음이 내 삶의 중심이 되는 삶.

나는 이제
그 중심을 잃고 싶지 않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불을 켜지 않은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시의 불빛이 멀리 반짝였고
어딘가에서 바람이 건물 틈새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 아무 이유 없이
마음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이 고요함은
예전에는 쉽게 느낄 수 없던 감정이었다.
늘 누군가의 말에 흔들리고
어떤 일이 생기면 곧바로 불안과 걱정이 먼저 찾아왔고
감정의 파도에 허우적거리며
하루를 버티던 날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 그날은
정말 아무 일 없이도
마음이 편안했다.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함.
누구에게도 잘 보일 필요 없고
누구의 마음도 대신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낯설고 아름다운 편안함.

그때 알았다.
아, 나는 이제
예전의 나라면 절대 닿을 수 없던 어떤 자리에
조용히 도착해 있구나.

나답게 산다는 건
누군가에게 강하게 말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과 싸우는 것도 아니고,
삶을 거창하게 바꾸려는 의지도 아니었다.
그저 나를 잃지 않는 일,
내 마음이 가장 편안한 자리에
스스로를 앉혀두는 일이었다.

나는 이제
그 자리가 어디인지 안다.
그 자리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뛰어가는 길 끝이 아니라
사람들의 말 사이를 헤매며
정답을 찾는 어두운 복도도 아니고
누군가의 기준 아래에서
내 삶을 줄여 살아가는 자리가 아니다.

그 자리는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자리다.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자리.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누군가 떠나도 괜찮고
누군가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는 자리.

그 자리를 찾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하지만 지금은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이해할 수 있다.
나답게 산다는 건
그만큼 어렵고
그만큼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완벽하지 않고
때때로 흔들리기도 한다.
누군가의 말에 잠깐 마음이 흔들리고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더 멀리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법을
이미 배웠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얻은
가장 큰 변화였다.
책 한 권이
삶 전체를 바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은
내가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할 질문을
내 앞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나는 결국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그 질문을 내게 건넸다.
너는 누구인가.
너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너는 왜 너 자신을 뒤로 미루고 사는가.
그리고 너는 이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

나는 그 질문에서 도망가지 않았다.
그 질문들 앞에서
처음으로 솔직해졌고
처음으로 나를 위해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 마음 하나가
내 삶을 조금씩
그리고 아주 깊게 바꾸어놓았다.

지금 나는
누군가에게 선택받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지도 않는다.
나는 나의 삶을
내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 삶이 때로는 느리고
때로는 어수선할지라도
분명히 내가 선택한 삶이기에
조용한 확신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 확신을 잃고 싶지 않다.
이 확신은
누군가가 준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준 것이니까.

어쩌면
나답게 산다는 건
결국 이런 삶인지도 모른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더 중요한 삶.
남들의 기준보다
내 마음의 방향이 더 명확한 삶.
누군가에게 맞추는 삶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맞추는 삶.

나는 이제
그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이 말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지금,
나는 비로소
내가 정말 나답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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