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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끄기의 기술 – 불필요한 것들을 내려놓고 진짜 나를 선택하는 법

사람들에게 삶이 왜 이렇게 힘든지 설명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하지만 마크 맨슨은 그 질문을 정면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답을 우리가 상상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으로 꺼내놓는다.

“삶이 힘든 이유는 수많은 것들을 너무 많이 신경 쓰기 때문이다.”
책은 이 심플하면서도 단단한 문장 하나로 시작했고
나는 그 문장의 글귀를 한동안 눈에서 떼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신경을 끄는 법’을 거의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작은 일에도 흔들리고
사람들의 말에 과하게 반응하고
사소한 오해에도 밤잠을 설치는 날들이 흔했다.
겉으론 담담한 척했지만
속으론 늘 초조했고
남들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상황과 감정을 지나치게 관리하려 애썼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 마음의 여백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할 일은 끝이 없었고
사람들은 원하는 게 많았고
나는 모든 것에 반응하느라
정작 내 자신을 점차 잃어가고 있었다

책을 읽어보면
마크 맨슨이 말하는 본질은 지극히 단순하다
모든 것을 신경 쓰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지킬 수 없다는 메시지이다

그 말은 너무 명료했는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지키고 싶었던 건
사실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어쩌다 삶 전체를
‘관리해야 하는 대상’으로 만들어버린 것인지 한참을 생각하며 돌아보게 만들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에
쓸데없이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는지
하나씩 떠올리게 되었다.
사람들의 시선,
평가,
작은 실수에 대한 과한 자책,
과거의 사건들이 남긴 잔상,
그리고 ‘괜찮은 인간’,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는 집착.

이런 것들은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삶을 조금씩 잠식한다.

맨슨은 이 점을 정확히 찔렀다.

“우리가 고통받는 이유는
마땅히 신경 써야 할 곳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이다

이 문장을 읽던 순간,
나는 참 오랫동안
사소한 것들에게 휘둘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은 도망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
다른 것들로부터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라고 말한다.
이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삶에 적용하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지는 메시지였다.

나는 그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어떤 말들은 그냥 지나가게 되었고
어떤 일들은 ‘굳이 내가 다 해결해야 하나?’라는 질문으로
경계가 생겼다.
어떤 감정들은
내가 붙잡고 끌어안던 힘 때문에
오히려 커졌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차리기도 했다.

책은 계속해서
우리의 주의력과 감정이 얼마나 귀한 자원인지 일깨운다.
이 자원이 흩어지면
삶의 에너지는 사라지고
정작 중요한 선택을 할 힘이 줄어든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좋은 삶이란
덜 신경 쓰는 삶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에만 신경 쓰는 삶이다.” 라고..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내 안에서 어떤 균열이 일어났다.
나는 지금껏
덜 신경 쓰는 삶을 원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사실 나는
더 중요한 것만 선명해지는 삶을 원하고 있었다.
그게 이 책의 메시지가 나에게 닿은 방식이었다.

좋은 삶을 위해 필요한 건
‘무심함’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기준을 세우는 일.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
노력할 가치가 있는 것과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을 구분하는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필요치 않은 것들로부터
용기 있게 멀어지는 일.

이 모든 과정은
단순히 ‘신경 끄기’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조각해나가는 행위와 같았다.

책의 시작부터 나는
내 삶에서 사라져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조용히 떠올리고 있었다.
그 이름들을 나열하는 순간
어쩐지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가벼워진 마음 속에는
새로운 여백 하나가 생겼다.
그 여백이
내가 앞으로 살아갈 삶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 작은 변화에서
책의 첫 장이 끝났다.


책의 두번째 장에 들어서자마자
맨슨은 갑자기 ‘문제’라는 단어를 정면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가 말하는 문제는
우리 대부분이 피하고 싶어 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평판, 관계, 실패, 불안, 미래, 자존감 같은
당장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매일 삶을 흔들어대는 추상적인 문제들…

우리는 이런 문제들 앞에서
자꾸만 도망치려 한다.
문제를 보는 순간
몸이 먼저 움츠러들고
생각이 복잡해지고
감정은 격해진다.
그래서 대개는
문제를 ‘없는 것처럼’ 취급하며
일단 묻어두고 본다.

하지만 맨슨은
그 방식이야말로
삶을 망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이 생각이
참 오래 머릿속을 맴돌았다.
문제를 선택한다는 것은
문제가 사라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문제를
의식적으로 고르고
나머지는 내려놓는다는 의미였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문제가 없는 삶을 꿈꾼다.
그러나 맨슨은
문제가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이
지나치게 냉소적이라고 처음엔 느꼈다.
하지만 천천히 생각해보니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행복한 사람도 문제가 있고
성공한 사람도 문제가 있고
심지어 내가 가장 부러워하던 사람들 역시
그들만의 각자의 고유한 문제를 갖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선택’하고
그 문제를 받아들인다는 점이었다.

이 감각이 내 안에서 자리를 잡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문제는 가능한 피하고
만약 생기면 즉시 해결해야 한다고 배웠다.
해결하지 않으면
나태하고
책임감 없고
성장이 멈춘 사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사람은 살아간다.
문제가 남아 있어도
관계는 이어지고
하루는 지나가고
다음 날은 또 찾아온다.

그래서 맨슨은
문제를 ‘없애는 것’보다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더 중요하게 다루었다.

내가 인상 깊었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더 나은 문제를 선택하라.
그러면 삶이 나아진다.”

이 문장을 읽고
나는 내 삶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내가 붙들고 살아온 문제들은
대부분 나를 소모시키는 문제들이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사소한 타인의 평가,
내가 생각하는 ‘괜찮은 사람’의 기준.

저것들은 모두
붙들 가치가 없는 문제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묘하게도
그 문제들에 집착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익숙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익숙한 문제에 집착한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일수록
오히려 더 오래 끌어안는다.
그 문제가 반복되기 때문에
자신의 일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말이다.

맨슨은 이런 패턴을
“삶을 통째로 낭비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그는 말한다.
더 나은 문제는
나를 성장시키는 문제여야 하고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문제여야 한다고.

그 말을 읽던 순간
나는 처음으로
‘좋은 문제’와 ‘나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좋은 문제는
해결 과정에서 내가 단단해지고
관계가 정리되고
삶의 방향이 선명해진다.
반대로 나쁜 문제는
나를 잠식하고
에너지를 빼앗고
정작 의미 있는 일들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나는 이 구분을 받아들이는 데
생각보다 큰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겪어온 문제들 중
정말 나를 성장시킨 문제는
극히 일부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문제는
나를 흔들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붙잡고 있던 문제들의 목록을
하나씩 떠올리기 시작했다.
어떤 문제는 너무 오래 붙들고 있었고
어떤 문제는 사실 아무 의미도 없는 문제였다.
어떤 문제는 ‘문제’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할 정도였다.

마크 맨슨은
자기계발서의 전통적 구조를 뒤틀며
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떤 문제를 선택할 것인가?”

이 질문은 날카롭지만
동시에 사람을 솔직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문제를 선택한다는 건
곧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작은 일에 흔들리는 문제는
더 이상 선택하고 싶지않았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문제도
이제는 내려놓고 싶었다
사소한 감정의 굴곡에 지나치게 반응하는 문제 역시
더는 내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신
좀 더 단단해지는 문제,
관계를 명확하게 만드는 문제,
내 목표와 가치에 직접 연결되는 문제들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고 나니
삶이 조금 정리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문제가 없어져서가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는 눈이 바뀌어서였다.

책을 계속해서 읽어나가 보다 보니
어느순간 나는 이 책이 왜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는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 책은
희망을 말하는 책이 아니다.
긍정을 설파하는 책도 아니다.
오히려
삶의 불편한 진실을
직접 눈으로 직시하라고 말하는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쉽게 누군가를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깨달음이라는 이름의
묘한 힘을 남긴다.

삶이 잘 어긋나는 이유를
조용하지만 정확히 건드리기 때문이다.


책의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
맨슨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단어를 하나 꺼내놓는다.
단 하나의 단어.
하지만 이 단어가
우리가 흔들리는 대부분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책임

이 단어를 보는 순간
나는 약간 숨을 들이켰다.
책임이라는 단어는
어릴 때부터 비슷하게 배워온 게 있다.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된다.”
“책임은 곧 성숙함의 증거다.”
“책임을 져야 사랑받을 수 있다.”
책임은 늘 의무와 연결되어 있었고
그 안에서 선택의 여지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맨슨이 말하는 책임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그는 책임을
삶을 통제하기 위한 가장 본질적인 힘이라고 설명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책임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자유로워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자유로움은
책임이 ‘짐’이 아니라
‘주도권’이라는 데서 나왔다.

맨슨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잘못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책임지는 일은 당신의 몫이다.”

처음에는
이 말이 조금 불편하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우리는 종종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
당연히 그 책임도 없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부당한 일도,
억울한 일도,
내가 원치 않았던 감정도
어느 날 갑자기 삶에 밀려들어오고
그 순간부터
그것은 내 감정이 되고
내 선택이 되고
내가 풀어내야 할 현실이 된다.

그 부당함의 원인이 내가 아니더라도
그 감정을 들고 살아가는 건 결국 나였다.

여기에서 맨슨은
우리가 흔히 놓치는 지점을 정확히 찌른다.

“책임은 잘못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부터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감정 하나가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관계에서 상처받았던 일,
실패했던 순간,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한동안 무너졌던 기억들.

그 모든 순간들은
내 잘못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감정들을 붙들고 살았던 건
명백히 나였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니
묘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누군가의 잘못을 대신 떠안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감정을 내가 선택한다’는 의미였다.

이 문장을 다시 떠올렸을 때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감정을
타인에게 맡긴 채 살아왔는지를 깨달았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내 하루의 분위기를 결정했고
타인의 감정이
내 정체성을 흔들었고
상황에 따라
기분이 쉽게 뒤집혔다.

나는 내 삶의 책임을
너무 쉽게 넘겨주고 있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자
책임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부담이나 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되찾아야 할 어떤 권리처럼 느껴졌다

책은 계속해서
우리가 책임을 떠넘기며 살아갈 때
삶이 어떻게 흐릿해지는지를 이야기한다.
삶의 방향이 흐릿한 이유는
목표가 없어서가 아니라
책임이 흩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책임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타인에게 책임을 두면
그 사람이 나의 행복을 결정한다.
상황에 책임을 두면
환경이 조금만 변해도 무너진다.
과거에 책임을 두면
미래는 늘 닫혀 있게 된다.

자신에게 책임을 둘 때만
비로소 선택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선택이 가능해져야
변화가 움직인다.

맡기기만 했던 책임을
다시 내 앞에 가져오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나 역시 그 과정에서
약간의 저항을 느꼈고
어떤 감정은 끝끝내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책임을 들고 나니까
감정이 조금 정리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책임을 내가 들고 있으니
상황의 해석도
내 방식대로 바뀌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고
그 사실이 묘한 자존감을 만들어냈다.

맨슨은 이것을
‘현실적인 긍정’이라고 부른다.
책임을 지는 순간
그 어떤 긍정보다 단단한 변화가 온다는 의미였다.

책임을 짊어지는 것에서
도망치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이 살아야 할 인생에서조차
길을 잃는다.
책임이 갈 곳을 잃어버리면
삶의 중심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책임이란
생각보다 훨씬 개인적이고
생각보다 더 감정적이며
생각보다 훨씬 더 나를 자유롭게 만드는 감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책임은
삶을 무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이 말을 이해하고 나니
책의 후반부에서 다루는
자유와 가치, 정체성에 대한 메시지가
더 깊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책의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
맨슨은 드디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을 드러낸다.
바로 가치다.

그는 아주 단호하게 말한다.
“문제와 책임은 결국 ‘가치’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를 기준으로
무엇에 신경 쓰고
무엇을 신경 쓰지 않을지를 결정한다.
따라서 내 삶이 어지럽고
감정이 늘 흔들리고
불안이 쉽게 찾아온다면
그 원인은 대부분
잘못 선택한 가치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책을 쥔 손을 잠시 내려놓게 되었다
가치가 잘못되었다는 말은
어딘가 뼈를 치는 느낌이 있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기준 안에 살고
그 기준 안에서
나름의 판단과 선택을 한다.
그 기준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맨슨은 말한다.

“문제의 80%는 잘못된 가치에서 태어난다.”

이 문장은 마치
내 삶의 어떤 감춰진 단면을
한 번에 끌어올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언제나
‘내가 왜 이렇게 흔들릴까?’
‘왜 이렇게 쉽게 상처받을까?’
‘왜 자꾸 남의 말에 감정이 요동칠까?’
이런 질문들을 많이 했었다.

그리고 그 질문들 대부분은
감정 조절 능력이나
성격 때문이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게 아니라
내가 세운 ‘가치 구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가치 구조가
불안정하고
모순되고
지나치게 외부 지향적일 때
사람은 쉽게 무너진다.
감정이 불안정해지고
자존감이 요동치고
작은 상황에도 과하게 반응한다.

가치는
삶의 바닥을 지탱하는 토대였던 것이다.
바닥이 약하면
모든 것이 흔들린다.
감정도,
자존감도,
관계도,
선택도.

나는 한동안
내가 붙잡고 있던 가치들이
과연 어떤 성질을 가진 것이었는지
천천히 돌이켜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꽤 오랜 기간
“좋아 보이는 것”을 가치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칭찬을 받고 싶어 하고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고
남들에게 실망을 주기 싫어
억지로 웃거나
배려하는 척할 때도 많았다.

겉으로 보기엔
성숙한 태도처럼 보였지만
돌아보면
그 안엔 불안이 너무 많았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를 계속 조절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인정 욕구는
내가 붙들고 있던 가장 위험한 가치였다.
맨슨은 이런 가치를
“허약한 가치”라고 부른다.
외부 환경에 따라
쉽게 무너지는 가치.
남의 말 한마디로 흔들리는 가치.
노력해도 끝없이 불만족스러운 가치.

이런 가치를 붙들고 살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삶 전체를
‘타인의 시선’이라는 기준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그 해석 방식은
감정을 계속 흔들어놓는다.

그래서 맨슨은
이 책 전반에 걸쳐
“강력하고 건강한 가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건강한 가치란
외부 요인으로 흔들리지 않는
내부 중심적 가치들이다.
예를 들면
정직,
책임,
자기 성장,
관계의 진정성,
배움,
겸손 같은 것들.

나는 이 부분을 읽다가
어쩐지 다리가 살짝 저릿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누군가
오래된 문을 쾅 하고 열어젖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 문 안에는
내가 피하려 했던 많은 것들이 있었다.

왜 나는 사소한 말에도 쉽게 흔들렸을까?
왜 실패가 두려웠을까?
왜 작은 거절도 크게 느껴졌을까?
왜 관계에서 과도하게 맞추고 살아왔을까?

그 모든 질문의 답이
가치에 있었다.

잘못된 가치 위에서
올바른 감정이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잘못된 가치 구조에서는
행복도, 안정도, 자존감도 자라기 어렵다.

책을 읽고 나니
나는 마치 삶의 지도를 다시 배운 기분이었다.
어쩌면 그동안의 혼란은
감정 때문이 아니라
그 감정이 자라온 ‘토양’ 때문이었던 셈이다.

가치가 바뀌면
해석이 바뀌고
해석이 바뀌면
감정이 바뀌고
감정이 바뀌면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그 변화가
지금 내 안에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아주 조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맨슨은 다음 장에서
가치보다 더 깊은 주제,
‘정체성’(identity)과
‘진실의 불편함’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 부분이기도 하다.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순간,
내 안에서 또 하나의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나는 왜 그런 가치를 선택해왔을까?
왜 내가 옳다고 믿고,
왜 그렇게 사는 것이 ‘나답다’고 느꼈을까?

그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고
또한 불편했다.

정체성.
우리가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믿는지.
그 믿음 위에서
대부분의 감정, 선택, 기준, 가치가 자라난다.

맨슨은 이 정체성을
“오래된 이야기(old story)”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쥐고 태어나고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며 자라며
어느 순간
그 이야기가
우리 존재의 뼈대를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흡수한 말들,
경험들,
존중받았던 순간들,
상처받았던 순간들,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에게 반복해온 문장들로 이루어진다.

어떤 사람은
“나는 항상 노력하는 사람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
“나는 누군가에게 폐 끼치면 안 된다.”
“나는 완벽해야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나는 부족하다.”
“나는 무언가를 잘 해낼 만큼 가치가 없다.”
“나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이 문장들이
정체성의 핵심을 이루고
그 정체성이
가치와 감정을 결정한다.

정체성이 한 번 자리 잡으면
사람은 자신이 만든 그 이야기를 증명하기 위해
삶을 해석하기 시작한다.
이게 가장 무서운 지점이다.

예를 들어
스스로를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은
누군가의 사소한 말도
비난처럼 들리고
자신에게 일어난 작은 실패도
자기 존재 전체의 문제로 느껴진다.

반대로
자신을 ‘항상 인정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사람은
칭찬이 조금만 줄어도 불안해지고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책임으로 떠안으며
관계에 과도하게 에너지를 쏟는다.

문제는
정체성이 사실과 다를 때 나타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사실과 다른 정체성을 붙들고 산다.

그 정체성은
오래된 경험이나 상처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만든 표현일 수도 있고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들었던 말의 잔재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은 그 오래된 이야기를
놓지 못한다.
왜냐하면
정체성은 고통스럽더라도
익숙하기 때문이다.
익숙한 고통은
낯선 행복보다 더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맨슨은 이 지점을 아주 냉정하지만 정확하게 설명한다.
사람이 변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현재가 편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정체성이 편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그동안 나를 막아온 것이
외부가 아니라
내가 붙들고 있던 오래된 이야기였다는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더 나은 삶을 원하는 동시에
더 나은 삶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더 나은 삶은
지금의 정체성을 바꾸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체성을 바꾸는 일은
고통스럽다.
익숙한 나를 떠나는 일이고
새로운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은
고통을 피하려고 정체성을 유지한다.
문제는
그 정체성이 우리를 병들게 하고 있을 때조차
우리는 그것을 붙든다는 것이다.

그 정체성 안에는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두려움은
“여기 머물러라”라고 속삭인다.
더 깊은 감정은
“변하면 사랑받지 못할 거야”라고 말한다.
그 목소리가 너무 오래 반복되면
사람은 그것을 진실처럼 믿게 된다.

맨슨은 이 오래된 이야기를
하나씩 넘어뜨리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정체성은 사실이 아니라 선택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갑자기 머릿속이 멈추는 느낌이 들었다.
정체성이 선택이라는 말은
책임을 다시 나에게 돌려놓는 말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나는 나의 성격이
경험이
환경이
나를 만들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 해석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지는
온전히 내 선택이었다.

그 선택의 힘을
나는 거의 잊고 살았다.
아니, 어쩌면
한 번도 제대로 써본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정체성이 선택이라는 말은
동시에
변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변화를
막을 수 있는 사람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도
결국 나뿐이라는 뜻이었다.

책은 그 다음으로
‘진실의 불편함’을 이야기한다.
정체성을 바꾸는 과정에서
우리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진실은 늘 불편하다.
그리고 그 불편함을 견뎌야만
사람은 새로운 나로 이동할 수 있다.
정체성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그 벽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

나는 그 불편한 진실을
피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그 불편함 속에야말로
내가 진짜로 바꾸고 싶었던 감정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았다.

정체성이라는 오래된 이야기를 벗겨내는 일은
어떤 면에서는
감정의 잔해를 걷어내는 일이었다.
상처가 남긴 문장을 지우는 일이었고
누군가가 던졌던 말로 만든 나를 해체하는 일이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그 고통이
이상할 정도로 희망적이었다.
고통 속에는
새로운 나로 갈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아직 다 벗겨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전처럼
그 이야기들이 나를 지배하게 두고 싶지는 않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가 선택한 새로운 문장들로
나를 다시 쓰고 싶었다.

이 책이 나에게 던진 가장 큰 메시지는
바로 이 변화였다.
정체성은 내가 바꿀 수 있고
그 변화는 삶 전체를 바꾼다는 사실.


가치를 다루고
정체성을 들여다본 뒤
책은 조금 더 깊은 층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그 층에서
맨슨은 우리가 평생 피하려고 해왔던 단어 하나를 꺼내든다.

고통.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핵심 문장 중 하나는 이것이다.
“좋은 삶은 좋은 감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고통에서 온다.”

이 말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잠시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왜냐하면
어쩐지 오래전부터
마음속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문장을
누군가 대신 꺼내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좋은 감정,
편안함,
기쁨,
안정 같은 것만을
행복의 조건이라고 믿어왔다.
힘든 감정은 나쁜 것이고
고통은 마땅히 피해야 하는 것이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삶을 조금 살아보면 알게 된다.
고통이 없는 성장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성장은
언제나 고통을 동반하고
고통 없이 얻는 발전은
대부분 오래 가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가 경험해야 할 고통을
의미 없이 소비하고 있다는 데에 있었다.

맨슨의 말처럼
“고통은 어차피 삶에 있다.
중요한 건 어떤 고통을 선택하느냐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그동안 피하려 했던 고통들이
사실은 ‘피하면 안 되는 고통’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정직한 대화에서 오는 불편함,
미뤄온 일을 시작할 때 느껴지는 두려움,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고독한 시간 같은 것들..

이런 고통은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고통이 너무 낯설고
때로는 감정적으로 버거워
피하려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반대로
진짜 피해야 할 고통은
이상하게도 내가 자주 붙들고 있었던 것들이었다.
타인의 시선에서 오는 불안,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려다 생기는 소모감,
자꾸만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감정,
이루지 못한 목표를 향한 끝없는 자책.

이 고통들은
나를 강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소모시키고
지치게 하고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고통의 종류를 구분하지 못하니
삶 전체가 흔들렸다.
나는 소중한 것들에 쓸 에너지를
불필요한 고통에 쓰고 있었던 것이다.

맨슨은 여기서
고통을 선택하는 기준이 결국 가치라고 설명한다.
가치가 건강하면
고통도 건강해진다.
하지만 가치가 불안정하면
고통도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

나는 이 부분에서
책 전체가 하나의 큰 구조로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치 → 정체성 → 고통 → 선택.
이것이 이 책의 큰 흐름이었고
그 흐름을 이해하고 나자
내 삶의 많은 장면들이 다시 해석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상처 받았던 순간들은
고통의 크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가치 때문이었다.
내가 붙들던 가치는
타인의 평가였고
그 가치가 흔들리는 순간
고통의 크기도 따라 커졌다.

하지만
정작 의미 있는 고통,
예를 들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면서 겪는 실패
혹은
관계를 솔직하게 만들기 위한 대화에서 오는 긴장감 같은 것들은
피하며 살아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선택은
내 삶을 더 어렵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의미 있는 고통을 회피하고
의미 없는 고통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맨슨은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진짜 중요한 것을 남기려면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놓아야 한다.”

이 말은 단순해 보이지만 삶에 적용하는 순간 충격에 가까운 변화를 일으킨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떠올리기 시작했다.
단 몇 가지만이 남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몇 가지가 선명해지는 순간
나머지 거의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타인의 기대,
꾸며진 기준,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
관계 속에서 억지로 만들어낸 역할들.

이런 것들은
내가 앞으로 살아갈 삶의 핵심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들이 선명해지면
삶은 훨씬 단순해진다.
단순해진 삶에서는
감정이 덜 흔들린다.

이 사실을 이해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니
그 단순함을 떠올리는 순간이
너무도 당연해 보였다.

가치는 삶의 근육 같아서
다시 단단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바로 세워지면
삶 전체가 균형을 찾는다.
고통을 선택하는 방식도
그제야 건강해진다.

이 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결국 이것이었다.

“삶은 고통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고통이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다.”

나는 그 문장을
책의 한 구석에 밑줄처럼 오래 남겨두었다.


책은 이쯤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조용히 꺼내놓는다.
우리가 평생 좇아온 단어이지만
정작 누구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한 단어.

맨슨은 자유를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상태”라고 정의하지 않는다.
대신 “불필요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그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에서는
욕망을 목표의 연료처럼 이야기하고
더 많이 갈망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방향을 아예 뒤집는다.

욕망이 너무 많은 사람은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말한다.
욕망이 많다는 건
신경 쓰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신경 쓰는 것이 많으면
삶은 계속해서 복잡해진다.
복잡한 삶은
어쩌면 자유와 정반대의 모습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복잡한 것을 감당할 때
항상 마음이 묶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챕터를 읽으면서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지금까지 내가 좇아온 자유는
대부분 외적 조건이었다.
시간이 많아지는 것,
돈이 늘어나는 것,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는 것.

그런데 시간이 늘어나도
마음이 불안하면
그 시간은 쉬는 시간이 아니었다.
돈이 많아져도
욕망이 커지면
돈은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하고 싶은 일을 하더라도
기대와 비교가 많으면
그 일은 자유가 아닌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됐다.
자유는
무언가를 얻는 순간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덜어내는 순간
비로소 생겨난다는 사실을.

욕망을 줄이면
신경 쓰는 것도 줄어들고
신경 쓰는 것이 줄어들면
삶은 단순해지고
단순해진 삶은
예상보다 훨씬 더 자유롭다.

맨슨이 말하는 자유란
“중요한 것에게만 마음을 쓰는 삶”이었다.
그 말이 나에게
아주 깊게 박혔다.

나는 그동안
자유를 손에 쥐기 위해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붙들었다.
성취, 인정, 관계, 목표.
그런데 책은
그 반대 방향으로 가라고 말한다.
덜어내고
버리고
주변을 정리해야
비로소 중요한 것이 보인다고.

목표를 줄일수록
삶은 오히려 선명해졌다.
욕망이 줄어들수록
행동이 가벼워졌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을 놓으니까
관계도 편안해졌다.

욕망을 줄이는 일은
세상이 하는 이야기와 반대되는 일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길에서
진짜 자유가 생겼다.

욕망의 허상에 대해
책은 아주 과감하게 말한다.
우리의 욕망은 대개
‘필요해서’가 아니라
‘습관처럼’ 생겨난 것이라고.
누군가는 더 좋은 사람이 되고싶어 욕망을 만든다.
누군가는 인정받기 위해 욕망을 만든다.
누군가는 비교 때문에 욕망을 만든다.
하지만 그런 욕망은
결국 나를 지치게 한다.

욕망은
끝이 없다.
그래서 욕망을 늘리는 삶은
끝없이 달려가는 삶이 된다.
여기에는 휴식도 없고
멈춤도 없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도 없다.

나는 책을 덮고 나서야
이 사실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의 절반은
정말 ‘원하는 것’이 아니라
원해야 한다고 믿어온 것들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는
원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너무 많이 원해왔기 때문이었다.

욕망을 하나씩 덜어내니
내 삶에서 진짜 원하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목록은
의외로 아주 단순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솔직하게 지내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는 것,
감정적으로 조금 더 단단해지는 것,
불필요한 걱정을 줄이는 것.

그 몇 가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욕망의 허상이었다.

이 챕터의 마지막에
맨슨이 남긴 문장 하나가
지금도 오래 남는다.

“당신의 욕망이 당신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라.”

욕망은
우리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소유해버릴 때가 많다.
그 마음을 돌아보고
욕망과 조금씩 거리를 두니
삶의 속도가 서서히 느려졌다.
그 느림에서
자유의 기미가 보였다.

그리고 책은 마지막으로
아주 조용히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주제로 이동한다.

용서.

특히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일.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참 오래 머물렀다.
많은 사람들은
타인을 용서하지 못해서 고통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해서 더 고통받는다.
내가 저질렀던 실수들,
내가 놓친 기회들,
내가 하지 못했던 노력들,
혹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던 순간들.

우리는 그 장면들을
기억의 깊은 곳에 저장해두고
그 장면들에 스스로를 묶어두며 살아간다.
그 감정의 덩어리는
시간이 지나도 자연스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해석이 바뀌어야만
비로소 사라진다.

맨슨의 메시지는
그 해석을 바꾸는 데 있었다.

“당신은 잘못을 저질렀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잘못이 당신의 정체성일 필요는 없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그 말은
정체성을 고정시키지 말라는 말이었고
과거의 나를
지금의 나와 동일시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사람은 변한다.
아주 느리고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분명히 변한다.
그 변화를 인정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 안의 ‘비난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가장 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챕터를 읽으며
스스로를 용서하는 일이
단순한 위안이 아니라
정체성을 다시 쓰기 위한
가장 중요한 단계라는 것을 이해했다.
과거의 나를 용서하지 못하면
새로운 나로 이동할 수 없다.
변화는
용서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용서는
누군가가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스스로를 용서하는 첫 단계는
이해였다.
그때의 나는
그때 할 수 있는 만큼만 했다는
가장 인간적인 이해.
그 이해가 자리 잡으면
비난이 조금 줄어들고
비난이 줄어들면
감정이 정리된다.

감정이 정리되면
비로소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자기 용서는
결국 새로운 선택을 위한
내면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었다.


책은 이제
‘행복’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건드린다.
우리가 평생 추구하고
수많은 책에서 다루고
어쩌면 인생의 목표처럼 간직해온 단어.

하지만 맨슨은
그 흔한 단어를
전혀 흔하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낸다.
그는 행복을
“쾌락의 총합”이나
“긍정적인 감정의 지속” 같은
단순한 수식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은 불편함을 견딜 수 있는 능력에서 온다.”

처음에는 이 말이
어디선가 들어본 문장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너무 역설적이라
잠시 멈추어 다시 읽어야 했다.

행복은 편안한 상태가 아니라
불편함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다.
이 말은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온 행복의 정의와
정확히 반대편에 서 있었다.

우리는 늘
불편함을 피하는 삶을 꿈꿨다.
돈 걱정 없는 삶,
평탄한 관계,
불안 없는 마음,
완벽한 일터,
항상 인정받는 위치.

하지만 맨슨은
그 모든 ‘편안함의 꿈’이
사실은 행복을 멀어지게 한다고 말한다.

편안함만 추구하는 삶은
한순간 달콤하지만
그 끝에는 공허함이 자리한다.
왜냐하면
성장이 없기 때문이다.

성장이 없는 삶은
흐르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정체된 삶이다.

나는 이 지점을 읽으며
내가 진짜로 원했던 것이
정말 ‘편안함 자체’였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았다.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편안함 속에서 쉬고 싶었던 적은 많지만
편안함만 있는 삶을 꿈꾼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결국
의미 있는 순간들을 원했다.
그 의미 있는 순간들은
대부분 불편함을 통과하며 만들어졌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던 두려움,
관계에서 솔직해지기 위한 용기,
스스로의 약함을 인정하는 수치심과의 대면과 수용,
어려운 선택을 내려야 하는 갈등.

그 순간들은
모두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이 지나간 후
삶은 조금씩 깊어졌다.

그런데 나는
그 불편함을 줄이는 것이
행복이라고 착각하며 살아온 적이 많았다.

잘못된 방향이었다.
불편함 없는 삶이 아니라
불편함을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했다.

맨슨은
행복을 이런 구조로 설명한다.

“삶의 의미를 높여주는 고통을 선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행복해진다.”

행복과 고통은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몸의 다른 면이었다.
이 사실이
묘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맨슨은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면서
결국 불행해지는 이유도
이 지점에서 설명한다.

사람들은
좋은 순간만 원한다.
하지만 좋은 순간만 원하면
좋은 순간조차 금세 사라진다.
왜냐하면
좋음은 언제나 대비를 통해 느껴지기 때문이다.

행복을 느끼려면
불편함을 경험해야 한다.
성장을 느끼려면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
편안함을 느끼려면
불편함을 지나야 한다.

이게 맨슨이 말하는
‘행복의 역설’이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이 역설이
지금 내 삶을 설명해주는 구조처럼 느껴졌다.
왜 어떤 날에는
충분히 이뤘음에도
이상하게 공허했는지.
왜 편안한 날이 이어지면
또 다른 불안이 생겼는지.
왜 아무 문제 없는 하루에도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무엇인가 놓친 것 같았는지.

그 이유는 단순했다.
행복을 원했지만
행복을 구성하는 감정의 구조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행복은
부드러운 쿠션 위에서 자는 게 아니라
언젠가 닿고 싶은 방향을 향해,
비록 느리더라도
계속 걷는 과정에 있었다.

그 과정에는
불편함이 늘 따라온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나는 책을 읽으며 그 단단함이 주는 안정이
편안함의 안정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된다는 사실을 느꼈다.

편안함은
사라지는 속도가 빠르다.
불편함을 지나오며 얻은 안정은
오래 남는다.

그래서
고통의 의미를 바로 세우는 순간
행복의 질도 바뀐다.

그리고 책은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어떤 고통이 당신의 삶을 더 좋게 만드는가?”

이 질문은
가치, 정체성, 선택, 고통이라는
지금까지의 모든 챕터를 하나로 묶어준다.

나는 이 질문을
몇 번을 다시 읽었다.
왜냐하면
그 오래된 질문 안에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바꿀 힌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질문을 통해
내 삶에서 붙들어야 할 것과
놓아야 할 것이
어렴풋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삶은 그렇게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갑자기 바뀌는 게 아니라
어떤 문장이
어떤 감정의 벽을 조금씩 흔들고
그 흔들림이 쌓여
방향이 천천히 이동하는 것

이 책은
그 각도를 조금 바꿔주는 책이다.
방향이 5도만 바뀌어도
몇 달, 몇 년 뒤의 삶은
전혀 다른 곳으로 닿는다.

그 변화가
지금 내 안에서
아주 조용히 일어나고 있었다.


책은 이제
조금 더 깊은 층으로 내려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삶의 의미’가
왜 그렇게 자주 무너지는지,
왜 행복을 붙잡아도
이상하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지,
그 구조를 아주 차갑고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 챕터에서 맨슨은
“무의미함”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하지만 그 무의미함은
우리를 절망시키기 위한 말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가볍게 해주는 출발점으로 설명된다.

그가 던진 문장은 이렇다.
“인생은 본질적으로 무의미하다.
그러나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이 문장을 처음 읽을 때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무의미함에서 자유가 나온다는 말은
어딘가 허무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하게 현실적이었다.
기대가 많은 삶은
자주 무너진다.
의미를 너무 크게 붙잡으려 하면
우리는 그 의미의 무게에 눌린다.

그러니까 삶은 차라리 가볍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모든 것이 반드시 ‘의미’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이 책은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종종
의미를 찾으려다
삶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왜 실패했는지,
왜 상처받았는지,
왜 일이 잘 안 되는지,
왜 나는 이 모습인지,
왜 다른 사람은 아닌지.

이 질문들은
처음엔 진지해 보이지만
어떤 순간에는
삶을 짓누르는 짐이 된다.

맨슨은 여기서
아주 중요한 관찰을 던진다.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더쉽게 무너진다.”

의미란
미묘하고 애매한 감정의 구조 위에 서 있는 것이기에
그 자체가 불안정하다.

반대로
삶이 본질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을 인정하면
우리는 역설적으로
스스로 의미를 만들 수 있는 자유를 갖게 된다.

이 말은
약간의 충격과 함께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나는 한동안
‘삶의 의미’를 너무 무겁게 붙들고 살았던 것 같다.
잘 살아야 한다는 압박,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부담.

그 모든 것은
‘의미’라는 단어로 포장된
두려움과 불안이었다.

그 의미의 무게가
내 삶을 조금씩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떠올렸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그 질문은 늘 무거웠고
대답은 늘 흐릿했다.
하지만 맨슨은
그 질문에 ‘무거운 답’을 기대하는 태도 자체가
삶을 더 힘들게 한다고 말한다.

삶은
대단한 정답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선택의 누적으로 완성된다고.
그 선택들이 쌓여
자연스럽게 의미가 만들어진다고.

그러니까
삶을 무의미함으로부터 지켜내는 것은
거창한 목적이 아니라
지금 내가 선택하는 행동들이었다.

이 말은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따뜻했다.

나는 살면서
너무 많은 의미를
한 번에 해결하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의 삶은
순간순간의 작은 선택들이
서서히 방향을 바꾸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이
하루에 한 번씩,
아주 조금씩,
하지만 분명히 이어지는 식으로.

그래서
삶에 의미가 없다는 말은
비관이 아니라
자유의 선언이었다.

무의미함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었고
그 의미는
다른 어떤 가치보다 단단했다.

그리고 책은 이어서
이 역설을 설명한다.

“삶은 본질적으로 무의미하기 때문에
우리가 부여하는 것들에 의미가 생긴다.”

이 문장은
조용히 마음을 건드렸다.

그동안 나는
의미를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의미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불완전함 속에서,
부족함 속에서,
작은 실수 속에서조차
의미는 만들어질 수 있었다.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인정하면
모든 감정과 선택은
조금 더 가볍게 흘러간다.

사람과의 관계,
일,
성취,
이별,
실패,
어떤 결정들까지도
그 무게가 조금은 줄어든다.

해석의 각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내가 너무 오래 붙들고 있던 감정들을
한꺼번에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

타인의 평가,
놓친 기회들,
돌아오지 않을 과거,
수정할 수 없는 결정들.

그것들이
내 삶에서 엄청난 의미를 차지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사실은
그 의미의 대부분이
내가 만든 해석 때문이었다.

해석을 바꾸면
의미도 바뀐다.
의미가 바뀌면
감정도 달라진다.
감정이 달라지면
삶이 조금씩 가벼워진다.

이것이 맨슨이 말하는 ‘무의미함의 자유’였다.

그리고 그 자유는
삶을 포기하는 자유가 아니라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자유였다.

그 자유를 받아들이면
삶은
조금 덜 완벽해도
조금 덜 빛나도
충분히 괜찮아진다.

우리의 삶은
항상 완벽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완전함 속에
우리가 진짜 원하는 의미들이
숨어 있다.


맨슨은 이 책의 마지막 지점에서
우리가 평소에 입 밖으로 꺼내길 주저하는 단어를 꺼낸다.
‘죽음.’

하지만 그는 죽음을
두려움의 상징으로 꺼내지 않는다.
오히려 삶을 가장 깊이 있게 바라보는 방법으로
죽음을 가져온다.
조금 이상하게 들리지만
이 책의 메시지를 따라가 보면
죽음은 절망의 단어가 아니라
삶을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렌즈 같은 존재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우리가 유한한 존재임을 상기시키는 유일한 사실이며, 유한함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선택이 가능해진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잠시 책을 덮고 방 안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유한하다는 사실은
늘 알고 있었지만
되도록이면 외면하고 싶었다.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산다.
죽음을 멀리 두려고 하고
가능한 한 인생의 ‘후반’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그 생각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편함을 피하는 순간
삶의 많은 것들이 흐릿해진다.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관계를 지켜야 하는지,
어떤 감정은 내려놓아야 하는지,
그런 판단들이
죽음이라는 기준 없이 이루어지면
종종 우왕좌왕하게 된다.
그리고 방향성이 흐트러진다.

내가 살면서 가장 후회했던 순간들도
대부분 ‘시간이 무한할 것처럼’ 살았던 때였다.
지금 하지 않아도
언젠가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일들,
솔직하게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내 곁에 계속 있을 거라고 믿었던 순간들.
그때의 나는
시간이 충분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유한한 존재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선택의 기준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해진다.

맨슨은
죽음을 통해 삶을 정리하는 법을 말하면서
아주 오래 남는 문장을 남긴다.

“우리가 가진 시간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무엇에 신경 쓸지 선택하는 일이 더욱 소중해진다.”

이 문장은
이 책 전체의 메시지를
가장 명확하게 요약하는 문장이었다.
결국
신경을 어디에 쓸 것인가의 문제였다.

죽음을 의식하는 삶은
신경을 중요하지 않은 곳에 낭비하지 않는 삶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지금 내 삶에서 지나치게 신경 쓰고 있던 것들을
머릿속에서 하나씩 떼어냈다.
괜히 걱정하던 미래,
사실상 필요하지 않은 비교들,
부질없는 인정 욕구,
이미 끝난 관계에 대한 후회들.

그런 것들은 죽음이라는 기준 앞에서
놀랍도록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오히려 죽음은
‘지금 여기에 있는 삶’을
훨씬 더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역할을 했다.

불편한 생각이지만
우리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은 지금 이 순간을 깊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어떤 사람은
그가 쌓은 성취보다
그의 태도 때문에 기억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어떤 사람은
대단한 성공보다
그가 주변에 남긴 따뜻함 때문에 오래 남는다.

맨슨도 같은 말을 한다.
“죽음은 우리가 무엇을 남겨야 할지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국 우리가 누구였는가로 돌아간다.”

사람은 결국
‘무엇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었는가’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질문을 직면하면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들이
조금 더 명확해진다.

나는 그제야
내가 반드시 지키고 싶은 가치들이 보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성실한 태도,
작은 약속도 흘려보내지 않는 책임감,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진정성,
그리고
나 자신을 지나치게 몰아붙이지 않는 부드러움.

이것들은
죽음을 기준으로 보아도
여전히 중요한 것들이었다.
어쩌면
죽음을 직면하는 시선이 없으면
절대로 분명해질 수 없는 가치들이었다.

책은 죽음을 말하면서
삶의 방향성을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기준 하나를 제시한다.

“유한성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사랑의 대상이 명확해진다는 말이다.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
내가 사랑해야 할 행동들,
내가 사랑해야 할 일들,
그리고
내가 사랑해야 할 ‘나 자신’까지.

죽음을 인정하면
사랑은 훨씬 더 구체적이 된다.
막연한 사랑이 아니라
선택하는 사랑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삶에서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오랫동안 붙잡기 위해 애쓰는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잘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도.

기억에 남는 문장이 또 있다.
“죽음을 인정하는 순간, 삶의 모든 순간은 선물처럼 느껴진다.”

너무 낭만적인 문장 같지만
읽을수록
굉장히 현실적인 말이었다.

삶의 모든 순간이 선물이라는 말은
모든 순간이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라
별것 아닌 순간들조차
내가 다시는 받을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그 깨달음이 주는 감각이었다.

그래서 죽음을 직면한 사람들은
사소한 것들을 더 소중히 느낀다.
햇빛,
평범한 하루,
따뜻한 말,
짧은 산책,
잠깐의 침묵.
그 모든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는 소중한 것이 된다.

맨슨은
죽음이 삶을 완성시킨다고 말한다.
죽음은 삶의 끝이지만
삶을 깊게 만드는 시작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 모순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풀어낸다.


책은 마지막 장에서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앞선 모든 이야기,
고통과 가치,
의미와 무의미함,
자유와 욕망,
죽음과 삶.
그 모든 철학적 구조가
결국 이 한 질문으로 수렴된다.

삶은 결국
선택의 연속이고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은 아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 선택은
누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가 해야 하는 선택이었다.

맨슨은
삶을 다시 선택하는 방법을 말하면서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로 들어간다.

우리가 흔히
“중요한 것들에 집중하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것들을 알아보는 것부터
쉽지 않다는 점을
그는 정확히 짚어낸다.

사람들은
중요한 것보다
급한 것을 먼저 해결하느라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다.
삶은 바쁘게 흘러가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계속 뒤로 밀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밀린 것들은
너무 멀리 가버린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치고 싶었다.
정말 그랬으니까.

늘 중요한 것들을 떠올렸지만
막상 매일의 선택에서는
급한 일에 쏠렸고
결국 중요한 것들을
미루며 살았던 적이 많았다.

그렇게 미루는 삶은
언젠가 큰 후회를 남긴다.

그래서 맨슨은
“중요한 것을 선택하는 용기”를
삶의 핵심 과제로 남긴다.

그 용기는
생각보다 조용하다.
화려하지 않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삶을 바꾸는 힘은
늘 그런 조용한 용기에서 시작된다.

책은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당신이 무엇을 사랑하느냐보다,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포기라는 단어는
보통 부정적으로 들리지만
이 책에서는
삶을 다시 선택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술로 등장한다.

포기는 패배가 아니라
선택의 시작이었다.

무수히 많은 선택지 중에서
정말 중요한 것 몇 개를 남기기 위해서는
포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포기하지 않으면
중요한 것들은
늘 잡음 속에 묻힌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내 삶에서 무엇을 포기할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불필요한 걱정,
사소한 인정 욕구,
지나친 비교,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선택들,
무의미한 기준들.

이런 것들을 포기해야
비로소 ‘내 삶’이 시작될 것 같았다.

특히
남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마음을 포기할 때
사람은 크게 변한다.
그 기준을 내려놓으면
나에게 더 가까워지고
나에게 가까워지면
삶은 놀랍도록 편안해진다.

내가 내 삶의 기준을 정하는 순간
새로운 방향이 열리기 때문이다.

맨슨은
“삶에서 무엇을 사랑할지 선택하라”고 말하면서
그 사랑이
한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지속적인 행동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은
감각이 아니라
태도였다.

사람이든
일이든
가치든
태도가 지속될 때
비로소 사랑은 ‘진짜’가 된다.

이 책에서는
사랑을 ‘책임감 있는 선택’이라고 표현한다.
책임감 없는 사랑은
쉽게 흔들리고
쉽게 사라진다.

나는 이 말에
유독 크게 흔들렸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던 많은 감정들이
사실은 책임 없는 감정일 때가 많았다.
그 감정은
자주 뜨거웠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책은
마지막 메시지로
“삶은 결국 자신을 초월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 비로소 충만해진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책 전체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남겼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삶은
어느 지점에서
허무함을 만든다.
반대로
누군가를 위해,
어떤 가치를 위해,
미래의 나를 위해
조금이라도 헌신하는 삶은
길게 지속되는 의미를 만든다.

바로 그것이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 힘이었다.

우린 결국
자신을 넘어설 때
비로소 편안해진다.

맨슨이 책을 마무리하며 남긴 메시지는
그동안의 자기계발서와는
전혀 다른 방향에 서 있었다.

세상이 말하는
긍정과 성공을 좇는 방식이 아니라
불편함과 고통을 이해하고
무의미함 속에서 의미를 만들고
죽음을 통해 선택하고
책임을 통해 사랑하는 방식.

그 방식은
조용하지만
강력했다.

나는 책을 덮고 나서
내 삶의 방향이
조용히,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분명히 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큰 변화는 아니었다.
그저
한두 개의 선택이 달라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선택들이
몇 달 뒤, 몇 년 뒤의 나를
완전히 다른 곳으로 데려갈 것이라는
확신 같은 것이 마음에 생겼다.

《신경 끄기의 기술》은 삶을 더 단순하게 만들고
더 깊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또 읽는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삶을 바꾸는 건
거대한 결단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무엇에 신경 쓸지 선택하는 일부터 시작 된다

이 책은
그런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기술을
우리에게 조용히 건네주고 있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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