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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전부터 ‘믿음’이라는 단어가 실제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궁금해했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했지만
삶의 한가운데에서는 여전히 지쳐 있었고, 분주했고, 때로는 공허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사랑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숨 쉬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때 처음 읽은 책이 존 마크 코머의 『The Ruthless Elimination of Hurry』였다.
그 책은 내 삶의 속도를 멈추게 했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묵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몇 해 뒤, 나는 그의 새로운 책 『Practicing the Way』를 마주했다.
이 책은 단지 ‘느림’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를 단순히 믿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를 따라 사는 사람”으로 초대했다.
그 말은 내 마음 깊은 곳을 찔렀다.
나는 신앙을 알고 있었지만, 그 신앙을 **연습(practice)**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 책은 바로 그 ‘연습’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묻는다.
“우리는 예수를 믿지만, 예수처럼 살아가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믿음이란, 머리로 동의하는 진리가 아니라
삶으로 닮아가는 방향이라는 사실을
나는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책의 첫 장은 마치 조용한 대화처럼 시작된다.
저자는 ‘제자도(discipleship)’를 교리나 신학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삶의 습관과 리듬을 바꾸는 일”로 이야기한다.
그의 문장은 신학자의 설교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혀본 한 사람의 고백처럼 다가왔다.

그는 말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단지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방식을 내 일상 안에 옮겨 놓는 것이다.”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나의 일상 속에 ‘예수의 방식’이 얼마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았다.
기도 시간, 예배 시간, 그리고 남은 대부분의 시간.
그 시간들은 분리되어 있었고,
내 신앙은 시간표 위의 한 줄로만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이런 삶을 ‘이원화된 신앙’이라 부른다.
하나님과 함께 있지만, 동시에 멀리 있는 삶.

『Practicing the Way』는 그 간극을 좁히는 여정을 제시한다.
그것은 추상적인 결심이나 감정적인 헌신이 아니라,
“작은 습관”으로부터 시작하는 구체적인 훈련이다.
기도, 고요, 말씀, 공동체, 쉼, 금식, 그리고 사랑.
그는 이 일곱 가지를 ‘예수를 닮아가는 리듬’으로 제안한다.

책을 읽는 내내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우리에게 “더 노력하라”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는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노력의 반대는 은혜가 아니라 무기력이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오래된 오해 하나를 풀었다.
신앙은 은혜와 노력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안에서의 노력이라는 사실.

이것이 바로 ‘Practice’의 본질이었다.
노력하되, 하나님께 의지하고
훈련하되, 억지로 하지 않으며
규율을 세우되,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는 것.
이 균형이야말로
예수를 따르는 삶의 중심이었다.

책의 중반부에서 저자는
“형성(Formation)”이라는 단어를 깊이 다룬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어떤 것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
그것이 세상이든, 미디어든, 혹은 예수이든.”
그 문장을 읽고 나는 한동안 책을 덮었다.
나는 정말로 예수에 의해 형성되고 있었을까?
아니면 세상의 속도, 성취의 논리,
타인의 인정이라는 거울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을까?

이 책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우리에게 ‘믿음’을 재정의하게 하지 않는다.
대신 ‘형성의 방향’을 묻는다.
그 질문이 나를 멈춰 세웠다.
나는 신앙의 언어로 말했지만
삶의 방향은 여전히 세상의 구조를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Practicing the Way』는 이 방향을 바꾸는 실질적인 길을 제시한다.
그는 말한다.
“영적 성장은 결심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복되는 실천을 통해 서서히 스며든다.”
그 문장은 마치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처럼,
시간의 힘으로 새겨지는 영적 변화의 진리를 담고 있었다.

나는 그 구절을 읽으며,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삶이 얼마나 ‘즉각적인 결과’에 익숙해져 있었는지 깨달았다.
기도의 응답도, 관계의 회복도, 변화의 증거도
모두 빨리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신앙은 언제나 느리게 자란다.
씨앗이 땅속에서 먼저 썩어야 열매를 맺듯이,
영혼의 변화도 보이지 않는 깊은 자리에서 먼저 시작된다.

이 책은 그 ‘보이지 않는 자리’의 가치를 회복시킨다.
기도의 자리, 고요의 자리, 실패의 자리, 반복의 자리.
그 자리들이 바로 제자의 자리라는 것을 알려준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이제야 신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은 몸으로 이해하게 된 기분이었다.

이 글의 남은 부분에서는
그의 메시지를 따라가며
‘예수를 따르는 삶의 훈련’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깊이 다뤄보려 한다.


나는 『Practicing the Way』를 읽으며 가장 먼저 놀랐던 점이 있다.
그것은 이 책이 ‘지식’보다 ‘삶’을 더 중요하게 다룬다는 사실이었다.
많은 신앙서적들이 신학적 개념과 교리를 깊이 있게 다루지만,
이 책은 그런 설명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삶은 어떤 방향으로 형성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더 집요하게 묻는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이 너무도 정직해서 피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삶을 형성하는 실제적 리듬은
종종 하나님과는 무관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간극이 내 영혼을 지치게 했고,
신앙과 일상의 간격이 커질수록
나는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을 안고 살았다.

저자는 말한다.
“제자도는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배우는 것이다.”
이 짧은 한 문장이
내 마음을 깊이 흔들었다.
나는 예수를 ‘믿고’ 있었지만
예수를 ‘배우며 사는’ 삶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배우는 삶은 반복과 연습이 필요하다.
배움은 실패를 동반하고,
실패는 다시 일어나 걷는 결단을 요구한다.
그러나 나는 신앙을 배움이 아니라
‘완성된 상태’로 오해하고 있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이미 성숙한 신앙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압박,
실수나 연약함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부담,
그 모든 것이 나를 점점 더 형식적인 신앙으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Practicing the Way』는
그 모든 부담을 부드럽게 풀어낸다.
그는 우리에게 완성된 신앙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 그대로
예수의 방식을 ‘연습’하는 자리로 초대한다.

“제자는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다.”
이 문장을 읽고 나는 한동안 마음이 편안해졌다.
신앙이 완벽해야 비로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을 믿고
천천히 따라가는 그 과정 자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새기게 되었다.

책의 중요한 핵심 중 하나는
삶의 ‘패턴(pattern)’이다.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결국 반복하는 것들로 형성된다.”
이 말은 단순한 자기계발적 메시지가 아니다.
영적 세계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하는 법칙이다.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패턴이 필요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을 가까이하는 반복적 습관이 필요하다.
잠깐의 열정으로는
신앙의 리듬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 신앙이 ‘우연’에 맡겨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이 움직일 때만 기도하고,
시간이 날 때만 말씀을 읽고,
여유가 있을 때만 예배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신앙의 결이 늘 불안정했다.

저자는 이런 신앙을
“무의식적 형성(unintentional formation)”이라고 부른다.
즉, 의도성을 잃어버린 채
세상의 속도와 문화, 감정의 흐름에만 휩쓸려 살아가는 삶이다.
나는 정확히 그 안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예수는 우리에게 의도적으로 살라고 부르신다.”

그 의도성은
거창하거나 대단한 결단이 아니라
작고 단순한 실천에서 시작된다.
하루 5분의 고요,
짧은 말씀 묵상,
숨 고르듯 드리는 짧은 기도,
하루 중 한순간 멈추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

이 작은 실천들이 쌓여
영혼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신앙이 단번에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스며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더 깊이 수용하게 되었다.

저자는 제자도의 실천을
세 가지 기준으로 정리한다.
“예수와 함께, 예수를 닮아, 예수처럼.”
이 문장은 매우 간결하지만
신앙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낸다.

예수와 함께한다는 것은
하루의 시간 속에서 예수의 임재를 의식하는 삶이고,
예수를 닮는다는 것은
삶의 선택과 태도 속에서
예수의 성품을 따라가는 삶이며,
예수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주어진 자리에서 사랑의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감정이 아니라 훈련으로만 가능한 삶이다.
나는 그 부분을 읽으며
마치 오래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사람처럼
마음이 천천히 따뜻해졌다.
신앙이란 결국
예수를 배우는 과정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인간적이고, 너무나 은혜로웠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공동체’의 중요성도 놓치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우리의 영적 성장은 혼자 만들어낼 수 없다.
사람은 사람 속에서 자란다.”

나는 그 구절에서 오래 멈춰 서 있었다.
그동안의 신앙이 혼자서 꾸려 가는 조용한 여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공동체라는 토양 속에서 더 잘 자란다는 사실이
새로운 관점을 주었다.

책은 단순한 개인 영성서적이 아니라
“함께 예수를 따라 사는 길”을 제안한다.
이것이 『Practicing the Way』가 가진 힘 중 하나였다.

그는 공동체를 ‘속도가 아닌 방향’을 함께 맞추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말한다.
즉, 완벽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예수를 닮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북돋는 공간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내 신앙의 결이 왜 자주 흔들렸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혼자 버티며
신앙을 유지해왔다.
함께 연습할 사람들이 필요했는데
나는 그 필요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책은 그 고백을 부드럽게 끌어냈다.
“함께 걷는 제자도야말로
가장 오래 지속되는 제자도다.”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면서
신앙이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이 의도하신 ‘연결의 여정’이라는 것을 새롭게 배웠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대목 중 하나는
저자가 ‘습관’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습관을 단순히 반복되는 행동이 아니라
“우리를 만들어 가는 숨겨진 기도”라고 표현한다.
그 말은 처음 읽을 때는 비유처럼 느껴졌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습관이 영혼을 가장 깊은 자리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우리는 습관을 통해 삶을 살고
습관을 통해 생각하고
습관을 통해 하나님을 대한다.
결국 우리의 일상은
하루하루 쌓여 만들어진 습관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습관이 당신의 미래를 만든다.
그리고 당신의 영적 습관이 당신의 영혼을 만든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 영적 습관들이
그동안 얼마나 불규칙하고,
감정적이고,
의도 없이 움직이고 있었는지를
너무도 뚜렷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은
감정이 움직일 때만 찾았고,
말씀을 읽는 일은
마음이 여유로울 때만 가능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러다 보니
내 신앙은 안정적인 결을 갖지 못했다.

저자는 이런 삶을
“바람에 흔들리는 상태”로 표현한다.
그리고 거기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작은 습관의 힘”이다.

그는 말한다.
“평범한 하루의 단순한 순종이
영혼을 깊게 만든다.”

그 구절을 읽으며
나는 무언가 큰 결단을 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거대한 순간만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작고, 가장 사소하고, 가장 조용한 순간에
우리의 변화를 조용히 빚어 가신다.

그 조용함이
이 책 전체에 은은하게 흐르고 있었다.

나는 책장을 넘길수록
예수를 따르는 삶이란
어떤 특별한 하루가 아니라
‘평범한 하루에서 아주 작은 선택 하나’를
예수의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라는 사실을
더 깊이 느끼게 되었다.

예를 들어,
출근길에 휴대폰 대신 마음을 잠시 고요하게 하는 것,
식사 전에 짧게 감사의 마음을 드리는 것,
하루의 중간에 30초만 멈춰 깊게 숨을 고르는 것,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작은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

이런 선택들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작은 선택들이 쌓여
예수의 인격이 우리 안에 스며든다.”

나는 그 말이 너무도 진실하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신앙의 성장은
감정적 고조나 특별한 사건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패턴의 변화’를 통해 비로소 깊어지기 때문이다.

책은 이 ‘패턴’을 ‘Rule of Life(삶의 규칙)’이라고 부르며
제자도의 구체적 틀로 제시한다.
여기서 말하는 규칙은
억압이나 율법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영혼이 살아 숨 쉬기 위해 필요한
‘질서 있는 자유’였다.

저자는 Rule of Life를
이렇게 정의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삶의 구조를 예수의 방식으로 재배치하는 것.”

이 문장은
신앙생활을 해왔던 수많은 독자들에게
아마도 가장 실질적인 질문을 던질 것이다.
“나는 내 삶의 구조를 예수 안에서 재배치하고 있는가?”

나는 이 질문 앞에 오래 머물렀다.
내 삶의 구조는
대부분 ‘해야 할 일들’로 채워져 있었고,
그 구조 속에서 신앙은 늘 남은 시간의 한 조각이었다.

하지만 예수를 따르는 삶은
우선순위를 뒤바꾸는 것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임재를 중심에 두고
삶의 나머지를 주변에 배치하는 것.
이것이 Rule of Life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은
한 번의 결단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규칙을 정하고,
실천하고,
포기했다가 다시 돌아오고,
천천히 리듬을 만들어 가는 것.
그 과정 자체가 제자도의 삶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신앙이란 ‘한 번에 바뀌는 삶’이 아니라
“길게 동행하며 천천히 변해가는 삶”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 깊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천천함은
결코 뒤처짐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걸을 수 있는
진짜 속도였다.

저자는 이 속도를 “영혼의 속도”라고 부른다.
이 속도는
세상의 속도와 다르고,
성과를 추구하는 속도와 다르며,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는 속도와도 다르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빚어 가시는
가장 부드럽고 가장 안전한 속도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 삶의 속도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고
내가 무엇을 향해 걷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마음 한구석에서 오래 머물렀던 또 하나의 주제는
‘사람은 누구나 형성되고 있다’는 저자의 선언이었다.
이 말은 단순한 심리학적 관찰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을 찌르는 통찰이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이야기를 들으며, 무엇을 반복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영혼과 인격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변화한다.

나는 이전에 ‘형성’이라는 단어를
주로 자기계발 책이나 인문학적 맥락에서만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 책은 형성을 ‘영적 전투’의 관점에서 다룬다.
저자는 말한다.
“당신이 하나님에 의해 형성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세상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

이 문장은 나를 깊게 흔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동안
‘내가 스스로’를 만들고 있다고 오해해온 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은
나는 늘 어떤 힘에 의해
내가 보지 못하는 자리에서 조금씩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뉴스, SNS, 광고, 주변의 기대, 성과주의, 비교, 불안.
이 모든 것들이
내 마음과 생각을 계속해서 빚어 가고 있었다.

그 형성이 지속될수록
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지고 있었고
영혼은 조금씩 굳어가고 있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실제 행동은 세상의 흐름을 따르고 있었고
그 간격은 점점 더 깊어졌다.

하지만 저자는
이 간극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형성의 방향을 바꾸는 작은 실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실천은 거창한 헌신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리듬들을 재배치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하루의 첫 2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
주중에 한 번은 고요하게 산책하는 것,
식사 시간에 짧게 감사하는 것,
힘든 대화를 해야 할 때 잠시 숨을 고르고 말하는 것,
하루의 끝에 마음을 정돈하며 하루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

나는 이 작은 실천들을 읽으며
신앙이 얼마나 구체적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신앙은 추상적이지 않다.
신앙은 시간, 공간, 몸, 습관 속에서 자란다.

저자는 이 작은 실천들을 “훈련(practices)”이라고 부른다.
그 훈련이 쌓이면
영혼은 예수의 인격을 품기 시작한다.
저자는 이것을
“예수를 닮아가는 방향성”이라고 설명한다.

그 방향은 완벽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예수께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마음이다.

책에서 또 하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는
‘정체성(identity)’이다.
저자는 말한다.
“형성은 정체성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누구라고 믿느냐에 따라
우리가 반복하는 훈련의 결이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성공해야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끝없이 자신을 몰아붙인다.
어떤 사람은
‘실수하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믿으며
실패를 두려워하고
자신을 숨긴다.
또 어떤 사람은
‘혼자 버텨야만 한다’고 믿으며
도움을 구하지 못하고
점점 지쳐 간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내 안에 오래 남아 있던 내적 서사가 떠올랐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잘해야 사랑받는다’는 마음을 가지고 자랐고
그 마음은 성인이 되어서도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들었다.
신앙조차
잘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변질될 때가 있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저자는 말한다.
“정체성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훈련은 그 정체성을 삶 속에서 증명하는 과정이다.”

이 말은
내가 그동안 정체성과 훈련을 뒤집어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다.
나는 성숙한 훈련을 해야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고
그 사랑받는 존재라는 정체성이
훈련을 통해 조금씩 내 안에 자리 잡는 것이다.
훈련은 사랑을 얻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사랑받는 존재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나는 이 부분에서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신앙의 실천이 어려웠던 이유는
내가 완벽해지기 위해 실천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순서를 완전히 뒤바꿔 놓는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이
훈련을 통해 그 사랑을 일상 속에서 구현해 간다.”

이 진리는
마음을 오랫동안 부드럽게 감싸며
나를 새롭게 재정렬했다.

나는 그제야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거운 짐이 아니라
이미 받은 사랑을 천천히 삶으로 옮기는 길이라는 사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책의 중반부에서 저자가 설명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예수의 방식(way)’ 그 자체였다.
그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살았던 방식을 그대로 따라 배우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그 방식은 현대인이 생각하는 ‘삶의 기술’과는 전혀 다르다.
예수는 효율을 따르지 않았고
속도를 기준으로 살아가지도 않으셨다.
사람을 대하실 때도
일을 처리할 때도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지켜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나는 이 지점에서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은
예수의 방식과는 거의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나는 해야 할 일을 먼저 생각했고
시간의 압박을 먼저 의식했고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도
종종 효율을 기준으로 판단하곤 했다.

그런데 예수는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 시간이 부족해 보일 때도
늘 멈추셨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천천히 머물렀고
상처 입은 사람에게는 다가가셨고
마음이 무거운 자들에게는
말 한마디 없이 함께 있어 주셨다.

그의 방식은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방식과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저자는 말한다.
“예수를 따르는 삶은 예수의 방식을 살아내는 삶이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예수의 방식을 ‘존중하는’ 사람이었지
예수의 방식을 ‘따라 사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예수의 방식은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는 사람,
일을 성취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품어내는 사람,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쉬는 사람을 만든다.

그 과정은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다.
저자는 이것을 ‘천천히 자라는 영성’이라고 표현한다.
그 말이 얼마나 진실한지
책을 읽을수록 더 실감하게 되었다.

예수의 방식은
기도와 고요,
쉼과 순종,
사랑과 용서,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 위에 서 있다.

그 방식은 현대인의 삶과 너무 다른 흐름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색하고
심지어 비효율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예수의 방식은 영혼을 살리고, 관계를 살리고, 공동체를 살린다.”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묵상했다.
내 삶에서 무엇이 죽어가고 있었는지,
그리고 무엇이 다시 살아야 하는지를.

바쁘다고, 할 일이 많다고,
나의 일과 책임이라는 단어를 앞세워
나는 마음의 여백을 잃어버렸고
사람들에게 온전히 머무르는 능력도 잃어버렸으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힘도 잃어버렸다.

예수의 방식은
그 잃어버린 것들을
하나하나 회복시킨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책에서 가장 강력하게 다가오는 메시지 중 하나는
“훈련 없는 믿음은 성장할 수 없다”는 저자의 고백이었다.
그는 이 말을 비판적이거나 부담스럽게 던지지 않는다.
오히려 ‘훈련’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한다.

“훈련은 사랑을 더 잘 누리기 위한 준비다.”

이 말은
그동안 ‘영적 훈련’이라는 말을
의무나 고행으로 오해했던 나의 시선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영적 훈련은 자신을 괴롭게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느끼기 위한,
나의 마음을 열어두기 위한,
영혼을 깨우기 위한 작은 반복이었다.

그 훈련의 예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실천들을 제시한다.
고요 속에서 하나님께 잠시 머물기,
말씀 앞에서 하루의 생각을 정리하기,
공동체와 삶을 나누기,
주중에 고립되지 않기,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
쉬는 날을 거룩하게 지키기.

나는 이 실천들을 읽으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깊어지는 것임을 느꼈다.

강함은 나를 지치게 하지만
깊음은 나를 살린다.
속도는 내 감정을 흔들지만
깊이는 나의 영혼을 지탱한다.

『Practicing the Way』가 주는 가장 큰 위로는
이 모든 훈련이
우리의 노력보다 하나님이 이미 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제자도는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춤추는 과정이다.”

그 말이 마음을 오래 잡아 끌었다.
나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은혜만 강조했고
때로는 노력만 강조했는데
이 책은 두 가지가 조화롭게 맞물리는 공간을 보여준다.

은혜 없이 노력하면 지치고
노력 없이 은혜만 바라보면 머물게 된다.
제자도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어 천천히 걸어가며
삶 속에서 작은 실천을 반복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나의 응답의 만남’이었다.

책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는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이야기들을 꺼내놓는다.
그는 제자도의 훈련이 단지 마음속의 결심이나 감정의 고조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대부분은 우리가 평소 거의 주목하지 않는
아주 작은 일상의 틈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잠에서 깨어나는 그 첫 순간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을 잠깐이라도 일으키는 것,
아침에 휴대폰을 켜기 전에
고요 속에서 숨을 깊게 들이쉬는 것,
일과 중간에 문득 떠오르는 걱정거리 대신
하나님께 맡기는 한 마디를 속으로 흘려보내는 것.

이런 행동들은 너무 작아서
누군가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영혼의 방향은 아주 작은 각도로도 달라진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의 영혼이 한 번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작은 선택들이 누적되면서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흐트러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배를 소홀히 한 날,
기도를 미룬 날,
말씀을 멀리한 날,
하나님을 생각하기보다
걱정과 비교에 마음이 더 흔들렸던 날들.

그 날들 속에서 나는 큰 잘못을 하지 않았지만
영혼의 방향은 조금씩 다른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는 우리를 정죄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작은 방향 수정’을 통해
영혼이 얼마든지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이 내 마음에 위로처럼 내려앉았다.

저자가 제시하는 ‘작은 방향 수정’의 핵심은
삶의 리듬을 조금씩 재배치하는 것이다.
리듬은 반복을 의미하고
반복은 영혼에 패턴을 새긴다.
따라서 작은 리듬 하나를 다시 세우면
영혼의 패턴 전체가 조금씩 달라진다.

예를 들어
하루 중 가장 분주한 시간에
2분만 잠시 멈추는 리듬을 만들고
그 순간을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으로 사용하면
그 2분의 작은 결이
하루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기 시작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왜 하나님이 우리를 작은 순간들로 부르시는지 이해하게 됐다.
우리는 크고 거대한 일에는 쉽게 지치지만
작은 일들은 오래 지속할 수 있다.
영성은 지속에서 자라고
지속은 작은 단위에서만 가능하다.

저자는 그 지속의 핵심을 이렇게 표현한다.
“작은 순종이 큰 변화를 만든다.”

이 말이 단순한 신앙적 구호가 아니라
삶의 실제 원리라는 것을
나는 점점 더 깊이 받아들였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공동체와 제자도’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등장한다.
저자는 개인 신앙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한다.
그는 말한다.
“혼자서는 오래 버틸 수 없다.
함께할 때 비로소 완전한 형성이 가능하다.”

나는 이 말을 읽으며
내 신앙의 여정을 돌아보았다.
나는 종종 혼자서 버티려고 했다.
누구에게도 약함을 보이고 싶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기도 부탁을 하는 것도
어딘가 불편했다.
그래서 혼자 침묵했고
혼자 고민했고
혼자 무너졌다.

그런데 이 책은
공동체를 선택하는 것이
용기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시키는 통로였다.

저자는 공동체를
‘함께 걷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
그 정의 안에는
경쟁도, 비교도, 평가도 없다.
대신
서로를 지지하는 손과
함께 울어주는 어깨와
함께 웃는 얼굴과
함께 기도하는 입술이 있다.

그는 말한다.
“공동체는 하나님이 인간의 외로움을 치유하기 위해 만드신 공간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오랜 시간 마음 한편에 쌓여 있던 외로움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신앙의 길에서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공동체는
그 외로움을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Practicing the Way』는 그 공동체를
‘함께 예수를 닮아가는 사람들의 작은 모임’이라고 소개한다.
이 말이 얼마나 따뜻하게 들리는지
나는 책을 읽는 동안 수없이 생각했다.

예수를 닮아가는 일이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
누군가와 함께
서로의 걸음을 맞추며
세상과 다른 방향을 향해 걷는 일이라는 것.
그 길은 더 이상 버거운 여정이 아니라
희망의 여정이 된다.

그리고 저자는 강조한다.
“제자의 길은 결코 혼자 걸을 수 없다.”

나는 이 말이
신앙의 본질을 잘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예수조차
공동체 안에서 사역하셨고
제자들과 함께 걸으셨고
혼자가 아니라
삼위 하나님이라는 완전한 관계 속에서
존재하셨다.

따라서 우리 역시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존재이며
그 관계 안에서
예수를 더 닮아갈 수 있다.

저자는 공동체를 이야기한 후,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제자도의 현장이 될 수 있는지 더 깊이 다룬다.
책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는
“제자도는 일상 속에서 완성된다”는 말이다.

예배당에서 드리는 헌신은 중요하지만,
그 헌신이 삶으로 흘러가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분리된 신앙을 갖게 된다.
저자는 바로 그 부분을 가장 아프게 찌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일상 속 신앙’이라는 표현이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우리는 예배 시간에는 하나님께 집중하지만
일상에서는 너무 쉽게 그 집중을 놓쳐버린다.
그 사이에서 영혼이 흔들리고
정체성이 흐릿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일상 자체가 하나님이 만나기를 원하시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출근길,
가정에서의 관계,
직장에서의 피로감,
사소한 선택들,
잠들기 전의 고단한 마음까지.

그 모든 순간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자리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하루는 하나님이 함께 계신 공간이다.”

이 문장은
내 일상을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나는 하나님을 교회에서만 만나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하루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였다.

그 깨달음은
나의 일상적 행동들이 의미를 다시 가지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출근길 지하철에서의 짧은 고요,
커피를 내리는 1분의 시간,
갑작스레 올라오는 짜증을 억누르는 선택,
사람의 말에 즉각 반응하지 않고 잠시 멈추는 순간들.

저자는 이런 순간들을
“거룩한 여백”이라고 부른다.
그 여백은
신앙의 깊이가 스며들 수 있는 틈이다.

나는 책을 읽을수록
그 여백이 얼마나 내 삶에서 사라져 있었는지 깨달았다.
바쁜 일정,
끝없는 알림,
스크린 속 정보들,
계속 이어지는 업무 요청들.
이 모든 것들이
내 삶의 여백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여백이 사라지는 만큼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고
영혼은 쉴 곳을 잃어버렸다.

저자는 이 문제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속도를 늦추는 연습’을 단순히 멈추는 행위로 보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하나님의 임재를 다시 느끼기 위한 준비”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은 너무도 정확했다.

속도가 빠르면
우리는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하나님은 늘 가까이 계시지만
우리의 마음이 너무 분주하면
그 가까움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이 말이 얼마나 사실인지
몇 번이고 내 삶을 떠올리며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정신없이 흘러가고
집에 돌아와도 마음이 여전히 불안했다.
그런 날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어도
마음이 분주해져 집중이 되지 않았다.

반대로
아침에 잠깐이라도 마음을 고요히 한 날은
하루가 훨씬 부드럽게 흘러갔다.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이 있어도
내가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았고
한 발짝 물러서며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영혼의 속도는
세상의 속도와 완전히 다르다.
영혼의 속도에 맞춰 살기 위해서는
멈추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멈춤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열어 주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멈춤’과 더불어
‘쉼(Sabbath)’에 대해서도 깊이 설명한다.
저자는 안식을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시간”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는
지금까지 내가 이해해 온 안식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나는 쉬는 날에도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많았다.
휴식을 취해도
불안은 여전했고
머릿속에는 해야 할 일들이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저자는 말한다.
“안식은 몸의 피로를 푸는 시간보다
영혼의 방향을 다시 하나님께 향하게 하는 시간이다.”

이 말이 얼마나 깊은지
나는 읽고 난 뒤에도 한참을 묵상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휴식’을 했지만
‘안식’을 누리지 못했던 것이다.

휴식은 피로를 잠깐 덜어낼 수 있지만
안식은 영혼 깊은 곳을 회복시킨다.
저자는 그 차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휴식은 당신을 잠시 쉬게 하지만
안식은 당신을 다시 살아나게 한다.”

이 문장은
오랫동안 지쳐 있던 내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어떤 날에는
충분히 쉬고도 지치고
어떤 날에는
온전히 쉬지 못해 더 피곤했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나는 몸을 쉬게 했을지 몰라도
영혼을 안식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racticing the Way』는
그 안식의 길을 다시 초대한다.
빠르게 소모되던 삶에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삶으로 돌아오는 길.
그 길은 멀지 않다.
아주 작은, 그러나 의도적인 선택만 있으면 된다.


책에서 저자가 가장 길고 정성스럽게 다루는 주제 중 하나는
‘사랑’이다.
그는 사랑을 단순한 감정보다 훨씬 더 깊고 실제적인 것으로 설명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자기 희생과 인내, 배려와 용납, 그리고 선택에서 시작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사랑을 말하기 전에
먼저 ‘왜 우리는 사랑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어쩌면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 대부분은
사랑을 원하면서도
사랑이 잘 되지 않는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아주 솔직하게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느린 행동이다.”

나는 이 말을 읽고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사랑은 느리다.
상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
속도를 늦춰야 하고,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
기다려야 하고,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시간을 들여야 한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결함과 연약함을
즉각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유는
느린 삶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너무 빠르다.

일정은 빽빽하고
할 일은 끝이 없고
관계는 갈수록 피곤하고
감정은 쉽게 소모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사랑하려고 애쓰지만
사랑이 마음에서 흘러나오기보다
억지로 만들어낸 행위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저자는 이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사랑은 급한 사람에게서 자라지 않는다.”

이 문장은
광고처럼 짧지만
영혼을 깊게 찌른다.

나는 이 말을 읽는 순간
내 삶에서 사랑이 왜 자주 막혔는지를 이해했다.
나는 너무 급했고
너무 불안했고
늘 빠르게 움직였다.
그 속에서
다른 사람을 온전히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내 마음은
사랑할 힘을 잃어버린 채
지친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지친 마음을 정죄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이 회복될 수 있는 길을
아주 조심스레 보여준다.

그 길은 여전히
아주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상대의 말을 끊지 않고 들어주는 것,
상대의 감정을 급히 판단하지 않는 것,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하는 것,
불편한 순간에도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잠시만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
사람이 실수했을 때
비판보다 이해를 먼저 선택하는 것.

이런 행동들은
모두 사랑의 작은 연습들이다.

저자는 이 연습들이
영혼의 패턴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작은 행동이 반복될수록
사랑이 삶의 기본자세가 된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실감났다.
사랑이란
감정이 아니라
패턴이고
습관이라는 사실을
문득 이해하게 되었다.

성경에서도
사랑은 언제나 행동으로 묘사된다.
예수의 사랑은
말보다 행동으로 드러났고
그 행동은 언제나
‘머무름’과 ‘함께함’의 형태를 취했다.

예수의 사랑은
급하지 않았다.
한 사람에게 머무르기 위해
걸음을 멈추셨고,
아픈 사람의 곁에 서기 위해
시간을 내셨고,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움직이셨다.

그의 삶에서
사랑은 언제나 시간을 사용했다.

저자는 말한다.
“사랑은 시간을 내는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마음 한구석이 따끔해졌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얼마나 내고 있었을까.
내가 정말로 소중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여유로운 얼굴로 다가갔을까.
어쩌면
나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사랑이 필요로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원을
제대로 건네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사랑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내는 길을
정교하게 안내한다.
그것은 큰 변화가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를 아주 조금 바꾸는 일이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
조그만 공간을 남겨두는 것.
그 공간에서
사랑이 자라난다.

책 후반부에서는
‘예수처럼 살아가는 삶’이
결국 사랑의 실천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저자는 말한다.
“예수를 닮는다는 것은
사랑의 행동이 삶의 중심에 놓이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이
이 책 전체의 요약처럼 느껴졌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삶보다
예수를 닮아가는 삶.
그 닮아감은
사랑이라는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고귀한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 책 후반부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내면의 변화’이다.
그는 변화라는 단어를 매우 신중하게 다룬다.
세상은 빠르고 즉각적인 변화를 요구하지만
영적 변화는 언제나 느리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천천히 시작된다.

저자는 그 느린 속도를
은혜의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오래 잊고 있던 진리를 떠올렸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순간에 바꾸실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간을 사용하신다.
우리를 서두르게 하지 않으시고
단계적으로 다듬어 가시며
그 과정 전체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하도록 이끄신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내면의 재구성”이라고 부른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근육이 먼저 형성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떠올릴 때
억지로 용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조금씩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는 것.

또는
불안을 이기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불안의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식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또는
화를 참기 위해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화가 올라오는 순간
잠시 숨을 고르고
하나님께 마음을 내어 드리며
반응의 결이 바뀌기 시작하는 것.

이런 변화들은
작아서 잘 보이지 않지만
저자는 말한다.
“내면의 변화는 언제나 조용하게 시작된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그동안 변화에 대해 갖고 있던 오해를 조금씩 내려놓았다.
나는 늘 ‘보이는 변화’를 원했고
눈앞에서 단번에 달라지는 모습을 기대했다.
그러나 영적 변화는
언제나 씨앗처럼 시작된다.
땅속 깊은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과정을 거치고
때가 되면
조용히 싹을 틔운다.

이 책은
그 보이지 않는 과정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그 과정이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적극적으로 일하시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특히
‘감정의 변화’를 중요한 주제로 다룬다.
그는 우리의 감정이
영적 성장의 적이 아니라
때로는 성장의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감정은 숨기거나 억누르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져갈 수 있는 솔직한 부분이다.
우리는 슬픔이나 두려움, 분노, 좌절을
자꾸만 하나님 바깥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을 두려워하지 않으신다.”

이 말이 주는 위로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의 감정이 너무 복잡하고
너무 정리되지 않아
하나님께 솔직히 드리지 못할 때가 많았다.
기도를 할 때도
정돈된 마음,
깨끗한 태도,
차분한 자세를 갖춘 후에야
하나님께 나아가려 했는데
그러다 보니
기도가 점점 더 멀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그 감정을 솔직히 내어 놓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조금씩 다시 부드러워지고
다시 살아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감정은 하나님을 향한 문이 될 수 있다.”

이 말은
감정이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통해 하나님께 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나는 이 말을 읽으며
내 마음의 벽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신앙은
많은 감정을 억누르는 일처럼 느껴졌는데
사실은 하나님이
그 모든 감정을 품고 계신다는 사실을
이 책이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책 후반부에서 저자는
예수를 따르는 삶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으로
‘순종’을 다룬다.
그는 순종을 어렵거나 무겁게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가장 진실한 응답”이라고 말한다.

순종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뺏어가실 것 같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포기하라고 하실 것 같고
나의 편안함이나 계획을
바꾸라고 요구하실 것 같아
순종이 두려워진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하나님은 당신에게서 빼앗으려고 부르시는 분이 아니다.
당신을 자유롭게 하려고 부르시는 분이다.”

이 말은
순종의 의미를 완전히 뒤흔들었다.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억압이 아니라
자유의 시작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이 진실이
오랫동안 왜곡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내 삶이 작아질 것 같고
선택의 폭이 좁아질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Practicing the Way』는
순종을 통해 오히려
삶이 더 넓어지고
영혼이 더 깊어지고
관계가 더 부드러워진다고 말한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에서
우리는 버리는 것이 아니라
회복되는 것이다.

순종은
내 뜻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신뢰하는 선택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길을 걷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이야기한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단지 신앙의 정체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예수 쪽으로 계속 돌리는 일이다.
그 방향은 한 번의 결심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수없이 흔들리고,
수없이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거치며
조금씩 더 선명해진다.

저자는 이 과정을
“길을 함께 걷는 여정”으로 표현한다.
그 길 위에는
실패도 있고,
불안도 있고,
멈춤도 있고,
실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이 길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
길 자체에 포함된 통과 지점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나의 믿음 여정에서 느꼈던 수많은 회의를 떠올렸다.
왜 나는 늘 흔들리는가,
왜 나는 이토록 자주 넘어지는가,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가.
하지만 이 책은
흔들림과 넘어짐조차
길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길이 가진 리듬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저자는 말한다.
“제자도의 핵심은 넘어지지 않는 데 있지 않고
넘어질 때마다 예수를 향해 다시 일어나는 데 있다.”

이 말은
내 마음 깊은 곳의 가장 무거운 부분을
조용히 품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영적 성장은 흔들리지 않는 강함과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강함조차
많은 약함과 실패를 통과한 뒤
천천히 형성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영혼의 성장은
항상 작은 걸음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걸음이 쌓여
길이 된다.

책의 마지막 장에 가까워질수록
저자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을
조금 더 부드럽고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 삶은
압박이 아니라
초대였다.

훈련에 대한 초대,
사랑에 대한 초대,
관계에 대한 초대,
쉼에 대한 초대,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의 방식으로 살아보라는 초대.

그 초대 앞에서
나는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무엇을 따라 살고 있는가.
내 일상의 리듬은
정말 하나님을 향해 있는가.
아니면
불안, 비교, 성취, 인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기준을 향해
조용히 기울어져 있는가.

이 질문들은
불편했지만
필요했다.
나는 질문이 불편할 때가
변화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저자는 우리가 다시 방향을 돌릴 수 있는
매우 작은 문들을 제시한다.
그 문들은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아침의 고요,
짧은 기도,
멈춤의 선택,
말씀 한 구절,
사랑의 행동,
감정의 솔직한 고백,
공동체와의 대화처럼
일상적이고 작은 것들이다.

그 문들을 통과할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예수의 방식에 가까워진다.
그 방식이
우리의 표정과 말투,
관계와 행동,
시간과 에너지의 사용,
꿈과 목표의 방향까지
천천히 스며든다.

저자는 이것을
“예수를 닮아가는 몸의 기억”이라고 불렀다.
너무도 아름다운 표현이었다.

몸이
예수를 기억하는 삶.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내 행동과 말투 속에서
예수의 향기가 조금씩 배어 나오는 삶.
그런 삶은
한 번의 결심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훈련의 결합이었다.

그 끝에서
저자는 예수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을 다시 말한다.
예수는 사랑하셨고
사랑하기 위해
멈추셨고
다가가셨고
머무르셨다.

우리가 예수를 따라 사는 삶은
결국
사랑으로 귀결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그 사랑을 흘려보내는 삶.
그 사랑이
나의 일상 속 작은 행동들을 바꾸고
관계를 회복시키고
마음을 부드럽게 만든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나는 단순히 ‘좋은 영성서적을 읽었다’는 느낌이 아니라
내 삶의 속도가
조금씩 조용히 재배치되는 것 같은
아주 은은한 변화를 느꼈다.

기적처럼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의 방향이
조용히,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하게
예수 쪽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아마 이것이
저자가 원했던 변화일 것이다.

눈에 띄지 않는 변하지만
삶의 중심을 천천히 바꿔가는 변화.
그 변화가
결국 우리를
예수의 방식, 예수의 사랑, 예수의 삶으로
이끌어 간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이 한 문장을 마음 깊이 되뇌었다.

“예수를 믿는 것의 끝은
예수처럼 사는 것이다.”

그 문장은
한동안 내 안에서 울렸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정말 천천히
예수를 따라 사는 삶을
다시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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