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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제작한 혼자 잘해주다가 상처받지 마라 책 리뷰 글 포스팅 대표 썸네일 이미지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 혼자 잘해주다 지쳤던 내가, 마침내 나를 돌보는 법을 배우기까지

사람 때문에 가장 많이 흔들리던 시기가 있었다.
잘해주면 좋은 일이 돌아올 거라고 믿었고,
내가 먼저 챙기면 관계가 더 단단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맞는 방식인 줄 알았다
내가 아끼는 사람일수록 더 잘해주는 게
어른스러운 태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비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애쓰고 있었는데
그 애씀에 아무도 닿지 않는 것 같은 날들이 많아졌다.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이상하게 혼자인 것만 같았다.
내가 하는 말들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 것만 같고
남에게 용기 낸 배려는 남들이 가볍게 여기고 지나가는 것만 같고
내가 진심을 다해 전달한 마음이
다른 이에게 전해지지 않거나 가벼이 치부되는 듯한 느낌..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는 관계를 “함께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혼자 만들어내고 있었다”는 걸…

그 무렵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이 눈에 들어 들어 왔고
큰 기대감은 없었지만 그냥 이 책을 읽게 됐다.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땐 순간 움찔했다.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라는 책 제목이
마치 나를 정확히 지칭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그동안 했던 방식이
한 문장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책을 펼치자마자
나는 아주 익숙한 단어들을 마주했다.
‘과잉 배려’, ‘정서적 책임감’, ‘관계의 불균형’,
그리고 ‘애착의 패턴’.
읽는 동안
내 마음의 구조가 하나씩 드러나는 것 같아서
조금은 불편했고
조금은 아팠고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안도되었다.

책은 내게
“너는 잘못된 게 아니야.
다만 너의 방식이 너를 너무 많이 다치게 한 것뿐이야.”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한참을 읽다가
손을 잠시 멈춘 문장이 있었다.
“좋은 사람이 되려 애쓰다가
정작 나에게만 그 ‘좋음’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문장에서 나는 조용히 멈춰 서게 되었다
나는 정말 그랬다.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서,
누군가에게 좋은 연인이 되고 싶어서,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온 힘을 다 쓰면서도
정작 나 자신에게는
그만큼의 친절을 쓰지 않았다.

사실 이 책이 짚어주는 건
결국 하나였다.
“너는 왜 너를 돌보지 않니?”
이 질문이 내 마음을 오래 흔들었다.


나는 그동안
상대의 감정을 먼저 읽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표정 변화, 말의 뉘앙스, 감정의 흐름을
내가 먼저 감지하고 맞추려 했다.
그걸 배려라 믿었고
어쩌면 그 방식이
관계를 더 안전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은 이렇게 말한다.
“배려와 과잉 헌신은 다르다.
관계를 돌보는 것과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나는 그동안
관계를 지키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방식을 ‘성숙함’이라고 오해했다는 걸
처음으로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오래 묵혀둔 장면들이 떠올랐다.
내가 많이 챙겼던 사람들,
내 감정을 너무 쉽게 넘겨주었던 순간들,
상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던 날들,
그래서 나만 지쳐서 돌아오던 밤들..

어쩌면 나는
상대에게 ‘더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렇게 해야
나라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비난 받지 않거나
미움 받지 않거나
나라는 존재 가치가 부정 당하지 않거나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내가 애써 누르려 했던 진실을
조용히 꺼내놓았다.
그리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살아오느라 정말 힘들었겠다”고..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책장을 덮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동안 외면해온 내 마음이
서서히 떠오르는 게
낯설고 또 따뜻해서였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그동안 왜 이렇게 쉽게 상처받았는지
이유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상대가 나에게 준 행동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 행동을 해석하는 방식 때문에
상처가 더 커졌다는 사실을
이 책은 아주 조용하게, 하지만 정확하게 짚어줬다.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조금만 무심해도
그 무심함을 ‘관심 없음’이라고 단정 지어버렸고
연락이 뜸해지면
내가 덜 중요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관심이 식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단지 바빠서일 수도 있고
여러 상황들이 있을 수 있는데
나는 그 모든 가능성의 생각들 중에서
가장 내 자신을 아프게 만들 수 있는
부정적 결론의 의미를 스스로 선택하고 받아들이곤 했던 것 같다

왜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아프게만 해석했을까.
한참을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던 어느 날
내 안에서 오랫동안 건드려지지 않은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아주 어릴 때 부터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려면
엄마, 아빠가 나라는 아이를 부끄럽지 않게 생각하실 수 있도록
‘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순간들

싫어도 싫은 감정을 참고 내색하지 않으면 착하다고 칭찬을 받았고
누군가에게 뭔가를 양보하면 성숙하다고 인정받았고
힘든 상황에서 억지로라도 괜찮은척 하면
문제가 없는 아이라고 여겨졌던 그런 시절..

그때의 나에게
‘싫다’는 말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
항상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썼고
그 애씀은 어느 순간
나의 성격처럼 굳어져 버렸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내어주는 사람들.”
이 책 속에서 묘사된 문장은
마치 내 초상화 같았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
사람들은 나에게
그렇게까지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스스로 기준을 높여서
스스로를 소진시키며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 과정이 오래되면
사람은 결국 지친다.

이 책은 그 지침을
이름 붙여 설명해줬다.
“정서적 과투자.”

나는 상대에게 ‘정서까지 투자’하고 있었고
그 투자를 통해
관계를 안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관계는
투자한다고 안정되는 게 아니었다.
두 사람이
비슷한 감정의 무게로 머물러야
관계가 편안해진다는 걸
나는 이제야 알았다.

책을 읽으며
한 문장이 오래 머릿속에 남았다.
“상대가 나에게 주지 않는 감정을
억지로 끌어오려 하지 말 것.”
이 말은
직설적이었지만
묘하게 따뜻했다.

나를 비난하는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외롭게 관계를 지탱하고 있었는지
보듬어주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그 뒤로
나는 문득문득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내가 바라던 감정은 정말로 상대에게서 받아야 하는 감정이었을까?”
“그 감정은 혹시 내가 나에게 먼저 주었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이 질문이 떠오르면서
내 감정의 흐름이
아주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상대의 말 한마디가
하루의 기분을 정했고
상대의 반응이
내 자존감의 크기를 결정했다.
관계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언제나 ‘내가 아닌 다른 이’에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처음으로
관계의 중심을
상대가 아니라
내 쪽에 두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 연습은
처음엔 어색했고
가끔은 내가 이래도 되나?라는 불안하기도 했고
뭔가 내가 잘 못하는 듯한 불편한 느낌도 들고
한편으론 두렵기도 했다.
내가 선을 긋는 순간
관계가 깨질까 봐.
내가 거절하는 순간
상대가 나를 멀리할까 봐.

하지만 이제는 안다
관계란
내 자신을 희생 시키기만 하고
내 자신을 혹사 시키고
내 자신의 감정 마저 외면하고
내 자신을 고통 가운데 몰아 넣으면서까지
유지시키는 게 아니라는 걸.
내 자신도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관계만이
오래도록 편안하고 따뜻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 할 수 있다라는 것을

어느 날
문득 이런 감정이 들었는데
그 감정은 내 삶에서 처음 느껴보는 종류였다.
“나를 먼저 챙기는 게
이기적인 게 아니구나.”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는 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이상하게
삶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사람에게 기대는 방식이 달라졌고
마음이 다치는 방식도 달라졌다.
예전처럼 상대의 모든 반응을
내 잘못으로 해석하지 않게 되었고
상대의 태도가 달라져도
내가 급히 감정을 수습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아주 중요한 변화를 느꼈다.
관계가 더 이상
‘시험’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예전엔 관계가 안전하려면
내가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어떤 관계는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도 괜찮다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그 변화는 작아 보이지만
내 삶의 무게를
눈에 띄게 가볍게 만들었다.


관계에서의 작은 변화를 경험하고 나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조급하게 사람을 붙잡으려 했는지도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조급함은
상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떠나거나 나를 싫어하게 되었을 때
내가 버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책에서는 그 감정을
‘애착의 불안’이라고 말한다.
사람에게 너무 빨리 마음을 주고
관계가 멀어질까 봐 불안해하며
상대의 기분을 맞추려는 패턴.
나는 그걸 사랑이라고 믿었지만
이 책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불안을 관리하기 위한 행동일 뿐이다.”

이 문장은
오래된 진실을 드러내는 것처럼
묘하게 아팠다.
하지만 동시에
이제는 그 감정을 정확히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조용한 안도가 스며들었다.

나는 사람을 잃을까 봐
사실 너무 오래 두려워해 왔다.
누군가의 말투가 변하면
내가 뭘 잘못했는지부터 찾았고
메시지 답장이 느리면
그 느림에 감정을 투영했다.
상대의 감정 변화에
내 감정이 바로 흔들렸고
조금의 거리감을 느끼면
내가 사람으로서 가치가 떨어진 건 아닌지
미묘한 불안이 나도 모르게 마음에 깃들었다

책은 그런 나를
꾸짖지도 않고
달래지도 않았다.
그저
“그 불안도 너의 일부야.
하지만 그 불안을 관계 위에 올려두면
네 마음이 다쳐.”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 말을 들은 뒤로
나는 관계의 중심을 조금씩 이동했다.
상대가 중심이었던 관계에서
‘나’를 중심으로 올려놓는 작업.
처음엔
내가 조금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조금 무심해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그건 이기심이 아니라
균형에 가까운 감정이라는 걸.

어느 날 저녁
친한 지인과 통화를 하다가
문득 이런 말을 내뱉었다.
“내가 챙겨야 하는 사람보다
나를 챙겨야 하는 마음이 더 커진 것 같아.”
지인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그게 원래 정상이지.
그걸 늦게 배운 거지.”
그 말이 크게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진짜 변화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내가 나를 조금 더 돌보는 순간들.
하루를 급하게 소비하지 않고
조금 천천히 앉아 쉬거나
거절이 필요한 상황에서 부드럽게 선을 긋거나
내 감정이 힘들 때
억지로 괜찮은 척하지 않는 것.

그런 작은 행동들 덕분에
나는 내 삶을 처음으로
‘내 편’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책에서는
관계에서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자기 회복 시스템이 약하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 문장을 보며
마치 내 마음속 빈자리를 들킨 것처럼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으면
혼자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충분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행동을 반복해서 떠올리고
그 장면을 다시 되감으며
왜 그랬는지 의미를 찾고
내가 더 잘했어야 하는 건 아닌지 자책했다.
그 자책의 반복은
상처보다 더 큰 상처를 남겼다.

“상대의 행동보다
그 행동을 기억하는 나의 방식이
더 날카롭게 날을 세울 때가 있다.”
책 속에서의 이 문장은
내가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치유의 시작이었다.

그 문장을 읽고 난 뒤
나는 상처를 ‘기억하는 방식’을 바꾸려 노력했다.
상대의 부족함을
내 탓으로 돌리는 습관을 멈추고
상대의 무심함을
내 가치와 연결시키지 않는 연습.
관계가 멀어지는 순간
내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
여러 번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 연습이 익숙해진 어느 날
나는 문득 깨달았다.
과거의 상처가
생각만큼 나를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 때문에 아프던 시절과는 다르게
요즘의 나는
내 감정을 스스로 붙잡을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이 책이 내 삶에서 한 가장 큰 변화는
‘상처받을 수 있는 나’에서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나’로
한 걸음 옮겨놓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 한 걸음은 크지 않지만
내 삶의 무게를 완전히 바꿔놓기엔
충분한 걸음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관계에서 ‘내 몫’을 정확히 계산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내가 얼마나 쓰고 있는지,
얼마나 지치고 있는지,
이 관계가 나에게 어떤 감정적 비용을 요구하는지
제대로 따져본 적이 없었다.
그저 잘해야 한다고,
잘해주면 좋은 관계가 만들어질 거라고 믿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상대가 조금만 기대고 앉아도
나는 무너질 것처럼 힘들었고,
상대가 조금만 거리를 두어도
나는 버려진 것처럼 느껴졌다.
관계가 나에게 주는 감정보다
내가 관계를 위해 들이는 에너지가 훨씬 더 컸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이런 상태를
‘감정의 폭주’라고 부른다.
상대를 향한 감정이 지나치게 앞서 나가고
그에 따라 나의 감정 반응도
과하게 요동치는 상태.

나는 그 폭주가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건 사랑이 아니라
내가 사랑받지 못할까 봐
미리 초조해지는 마음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어느 날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아주 오래전 일을 떠올렸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기억인데
그때 처음으로 그 장면을
다른 감정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어릴 때 가족에게 상처받았던 기억이 있었다.
아마 그때 나는
사람이 잠깐만 마음을 닫아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꼈던 것 같다.
그 경험은
이후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반복됐다.
상대의 작은 침묵,
작은 무심함,
작은 표현 부족들이
마치 그때의 감정을 다시 불러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마음을 완전히 열어주지 않는 순간부터 불안해했다.
불안해하니
더 잘해주려 애썼고
더 잘해줄수록
상대는 오히려 부담을 느끼고
결국 관계는 멀어졌다.

그 패턴을
나는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이었어야 한다고,
내가 더 참았어야 한다고,
내가 더 배려했어야 한다고.
하지만 책은 그 패턴을 이렇게 짚어낸다.
“과한 배려는 상대의 감정에 공간을 주지 않는다.”

그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오래 들고 있던 무언가가
천천히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내가 관계를 망친 게 아니었다.
다만
내가 관계를 붙잡는 방식이
너무 무거웠던 것뿐이었다.

이제는 조금씩 알 것 같다.
누군가를 너무 많이 챙기면
그 사람이 숨 쉴 공간을 잃는다는 것을.
내가 그 사람의 감정까지 대신 책임지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나에게 기대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나에게서 멀어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사람의 마음은 참 묘하다.
너무 가까워져도 답답하고
너무 멀어져도 불안하다.
그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알아가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책은 그 거리감을
“감정적 경계선”이라고 부른다.
경계선은 벽이 아니다.
나를 지키기 위한 공간이며
상대에게도 책임을 돌려주는 건강한 선이다.

그 경계선을 처음 만들었을 때
약간의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내가 그만큼 따뜻하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고
조금은 차가워진 것 같아서
스스로에게 어색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경계선을 만들고 난 뒤
나는 더 이상
관계 때문에 휘청거리지 않게 되었다.
상대의 말과 행동이
내 기분을 흔드는 폭이 줄었고
그 여유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감정이 먼저였고
나는 그 뒤에 따라붙는 사람처럼 살아았다
그런데 요즘은
먼저 내 감정을 살피고
그다음에 상대의 감정을 바라보는
아주 단순한 순서를 회복했다.
그 순서가 바뀌었을 뿐인데
삶은 너무 많이 달라졌다.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건강한 관계는
나를 잃지 않는 관계다.”

처음에는 그 문장이
너무 당연해서
왜 중요하게 다뤄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너무 당연한데
실제로 지키기는
가장 어려운 문장이라는 것을.

사람에게 잘해주는 건 나쁜 게 아니다.
다만
그 잘해줌이
나를 소모시키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
그 기준을 알게 된 이후
나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방식이 바뀌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마음을 열지 않아도
내가 더 주려고 달라붙지 않았고
상대가 갑자기 차가워진 날이 있어도
그 차가움을
내 전부로 해석하지 않았다.
상대가 잠시 멀어졌다면
그 사람에게도
정리해야 할 감정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항상 나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서서히 깨달았다.
어떤 관계는
남겨두는 게 아니라
내려놓는 게 옳다는 것을.

그 내려놓음이
상대에 대한 포기라기보다
나 자신에 대한 보호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어쩌면
내가 관계에서 계속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지켜야 하는 관계’와
‘놓아야 하는 관계’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특히 내가 먼저 정을 준 관계라면
더더욱 끝을 쉽게 인정하지 못했다.
상대가 멀어져도
내가 조금 더 다가가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고
상대가 마음을 닫아도
내가 더 잘해주면
다시 열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뒤
나는 아주 단순한 진실을 알게 됐다.
“관계는 한 사람의 노력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 문장은
오랫동안 나를 붙잡고 있던
관계의 집착을 천천히 풀어냈다.

나는 그동안
누군가의 마음을 잃는 게 두려워서
관계를 억지로 이어왔다.
그 두려움 때문에
상대의 무관심까지 내가 ‘합리화’했던 적도 많다.
조금이라도 따뜻했던 순간이 있으면
그 한 장면만 붙잡고
그 사람이 본래 그런 사람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버텼다.

그런데
진짜로 슬픈 건
상대의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을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그때의 내 모습이었다.

책 속에는
‘감정의 침묵은 상처를 키운다’는 문장이 나온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한참을 눈을 감았다.
정말 그랬다.
나는 감정이 상할 때도
표현하지 않았고
말하지 않았고
그저 넘어갔다.
넘기는 순간들은 쌓이고 쌓여
결국 나만 아프게 만들었다.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는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서로의 거리는 점점 벌어진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감정을 드러내는 일을
오랫동안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내 감정을 드러냈다가
상대가 나에게서 떠나갈까 봐
그게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은
그 두려움의 뿌리를
정확히 짚어냈다.
“상대가 떠나가는 게 아니라
너 자신을 잃을까 봐 두려운 것이다.”
이 말은
내가 몰랐던 감정의 중심을
정확히 보여줬다.
나는 사람을 잃는 게 아니라
사람을 잃는 과정에서
내가 무너지는 게 더 무섭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상대의 감정까지 책임지려 했고
관계를 잃지 않기 위해
지나치게 희생하는 사람처럼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나는 마음속에 조용히 다짐했다.
“내 감정을 잃는 방식으로
어떤 관계도 유지하지 않겠다.”

그 다짐을 한 뒤
삶이 조금 달라졌다.
누군가에게 상처받아도
예전처럼 오래 끌지 않았고
내가 했던 배려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져도
예전처럼 불쾌감이 길게 남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상대의 문제를
내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상대의 선택을 책임질 필요가 없고
상대의 감정을 대신 짊어질 필요도 없다.

그 사실을 깨닫자
관계의 무게가
놀랄 정도로 가벼워졌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고
여전히 관계를 소중히 여기지만
예전처럼
마음이 쉽게 휘청거리지 않는다.
누군가 멀어지면
그 멀어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누군가 다가오면
그 다가옴을 조용히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다.

예전 같으면
누군가의 말투 하나에도
마음이 깊게 흔들렸겠지만
요즘은 마음이 고요하게 유지된다.
그 고요는
관계를 포기해서 생긴 고요가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에서 생긴
새로운 균형 같은 것이다.

나는 이제서야 이해한다.
좋은 관계란
둘이 노력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지
한 사람이 전부를 떠안을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걸.

어쩌면
이 책이 내 삶을 바꿔놓은 가장 큰 지점은
이 부분일 것이다.
관계의 중심에서
‘상대’가 빠지고
‘내’가 들어온 것.

그 변화는
삶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마음이 덜 아프고
기대가 덜 과하고
상대에게 덜 매달리게 되었다.
무엇보다
관계 때문에 내 자신을 잃지 않게 되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말이 있다.
“건강한 관계는
나를 지키는 사람과
나를 존중하는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나는 그 문장을 천천히 여러 번 읽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고백했다.
“나는 이제
나를 지키는 사람이 될 것이다.”



관계를 다시 바라보는 눈이 생기고 난 뒤
나는 일상의 작은 순간들에서
이전과는 다른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내 마음의 속도를 따라 걷는 경험이
이렇게 편안한 줄
그전에는 정말 몰랐다.

예전엔
메시지가 조금 늦게 오면
하루 종일 신경이 쓰였고
상대의 말투가 차가워지면
내가 뭔가 잘못한 건 아닐까
끝없이 해석하곤 했다.
그 해석의 반복은
감정 노동에 가까웠다.

이제는 메시지가 늦게 와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대도 자기 삶이 있으니까.
힘든 날이 있을 수도 있고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그날은 그냥 대답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걸 이해하니
내 마음의 무게가 정말 많이 줄었다.

책에서는
“상대에게 여유를 주는 만큼
나에게도 여유를 줘야 한다”

라고 말한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유라는 것을
늘 상대에게만 줬지
나에게 준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항상 누군가의 기분을 먼저 생각했고
내 마음은 나중으로 미뤄두는 삶을
오래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필요할 때
정작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그 사람을 귀찮게 하거나
피해를 주는 것 같았고
그로인해 미안한 마음이 생기는게 힘들었고
기대고자 했을 때 거절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사람에게 기대는 건
자신의 어떠한 약함의 표현도 아니라
일종의 신호라는 것.
내가 지금 힘들고
조금 쉬고 싶고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신호.

그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누구도 내가 힘든 줄 모른다.
그러면 나는
혼자 버티는 사람으로 남게 된다.
그 버팀이 길어지면
결국 마음의 균형이 무너진다.

책에서는
“나를 돌보는 일은
관계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라는 문장이 있다.
그 문장을 읽고
나는 나를 돌보는 방식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천천히 떠올려 보게 되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나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을 위한 배려는 자연스럽게 했지만
나 자신을 위한 배려는
습관처럼 홀대하거나 외면했다
마음이 지칠 때면
억지로 참았고,
힘들어도
표현하지 않았고,
상처받아도
괜찮은 척하며 넘겼다.

그 습관이 오래가면
나라는 사람에게
‘정서적 부채’가 쌓인다.
그 부채는
어느 순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리고
결국 나는
누구의 작은 말 하나에도
쉽게 쓰러지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 책은
그 부채의 정체를
정확한 단어로 설명해줬다.
“감정의 과소비.”
내가 내 감정을 관리하지 못하고
남에게 너무 많이 내어주면서
정작 내 안에는
쉴 공간이 없어진 상태.

그 말을 이해하고
나는 조금 울컥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마음에 쉴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면
관계는 부담이 되고
사람은 두려움이 된다.

나는 그동안
그 공간을 만드는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작은 실천을 시작했다.
하루 중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10분을 만드는 것.
휴대폰도 멀리 두고
음악도 틀지 않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
처음에는
그 10분이 너무 어색해서
두 번이나 일어나서
기지개를 켰다.
정지해 있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하지만 그 10분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내 마음의 소리를
또렷하게 들었다.
“나는 생각보다 많이 지쳐 있구나.”
“나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구나.”
“나는 이 관계에서 너무 애썼구나.”
그 작은 진실들이
조용히 떠올랐다.

책은
‘자기 돌봄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라고 말한다.
그 말이 점점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 태도를 배우고 나니
나는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
관계의 무게가
예전보다 가벼워졌다.
그리고
나에게도 따뜻해졌다.

최근에는 내가 예전의 나보다
훨씬 단단해졌다라는 느낌이 든다.
단단함이라는 말이
강해졌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에
내 감정이 너무 깊게 흔들리고
무너지는 일이
예전보다 훨씬 줄었다.

내가 나를 돌볼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삶을 대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뜻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씻고 나서 소파에 털썩 앉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요즘 좀 편해진 것 같은데… 왜지?”

그 ‘편해짐’은
누가 나에게 잘해줘서 생긴 것도
삶에서 큰 사건이 없어졌기 때문도 아니었다.
오히려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루였는데
나는 예전보다 훨씬 편안하고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그 편안함은
누군가가 나를 보살펴줘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돌보는 방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이 사실이
묘하게 울컥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나는 나를 꽤 잘 돌볼 수 있다는 확신이
살면서 처음 든 순간이었다.

예전의 나는
관계 속에서 상처가 생기면
그 상처가 ‘내 문제’라고 생각했다.
상대가 조금만 차가워져도
내 불찰 때문이라고 여겼고
상대가 내 마음을 배려해주지 않으면
내가 덜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결론으로 향했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의 순서가 달라졌다.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감정적으로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
그 사람의 삶도 나름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게
내 존재 가치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

그 사실을 알게 되자
계속 긴장하며 살아온 어깨와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었다.

책에서는
“타인의 감정을 지나치게 빨리 읽어내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가장 늦게 본다.”
라고 말한다.

나는 이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 문장 속 ‘나’를 너무 정확하게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늘 상대의 표정을 먼저 봤다.
말투를 먼저 분석했고
상대의 감정 변화를
내 책임처럼 받아들였다.
그걸 배려라고 착각한 채
한참을 살아왔다.

그런데 그 방식은
관계를 지켜주는 게 아니라
나를 잃게 만드는 방식이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상대를 먼저 보느라
정작 가장 중요한 내 감정을
제일 마지막에 밀어두는 삶.
그 삶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고단한지
이제는 너무 잘 알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상대의 표정보다
내 표정부터 본다.
상대의 기분보다
내 마음의 상태를 먼저 살핀다.
처음엔 이게 참 어색했다.
자기 중심적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너무 이기적인 건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정상적인 순서’라는 걸 깨달았다.
관계에서 나의 감정이 사라지면
관계가 아무리 유지돼도
나는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동안 나는
내가 너무 예민하고 민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방의 말투가 조금만 차갑게 변해도 흔들리고
조금만 거리가 생겨도 불안해하고
너무 사소한 것에 상처받는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지만 책은
이 민감함을
‘결함’이 아니라
‘감정의 과거가 만들어낸 패턴’이라고 말해줬다.
그 말이 나를 살렸다.
왜냐하면
패턴은 고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감함을 탓하는 대신
그 민감함이 왜 생겼는지
조용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민감함은
누군가에게 버려졌던 기억,
말하지 못하고 삼켰던 감정,
사랑받고 싶은 몸부림들 위에
조용히 쌓여 만들어진 것임을
이제는 덤덤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걸 알게 되자
나는 나를 조금씩 용서하게 되었다.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고
그 방식으로라도
관계를 지키고
스스로를 보호하려 했던 나를
더 이상 나무라지 않게 되었다.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아프게 반응하는 건
당신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당신의 마음이 오래전부터
도움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 문장은
내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
오래 내려앉았다.
나는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
그저 너무 오래 혼자 버텨온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자
삶이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고
여전히 사람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만
예전처럼 오래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려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나만의 중심이
이제는 있다.

그리고 그 중심은
누가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자리 잡은 것이다.

그 사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단단함 속에는
따뜻함이 있었고
그 따뜻함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방식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누군가에게 무조건 잘해주지 않는다.
그 대신
건강하게 잘해준다.
무리하게 마음을 바치지 않고
선의의 경계를 두고
너무 빨리 감정의 문을 열지 않는다.

놀라운 건
그렇게 했더니
오히려 관계가 더 편안해졌다는 것이다.

나를 너무 많이 주지 않으니
내가 지치지 않고
지치지 않으니
상대에게 더 평온하게 다가갈 수 있다.
그 평온함이
관계를 더 안정적이게 만든다.

이 변화는
책 한 권이 바꾼 것이 아니다.
책을 통해
내 감정을 다시 바라보게 된 내가
스스로의 방식으로
다시 삶을 조용히 재정렬한 결과이다.


가끔은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늦게 배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왜 이제야 이런 것들을 깨닫는 걸까.
누군가는 이미 오래전에 알고 넘어갔을 감정들을
나는 마흔이 넘은 지금에서야
조심스럽게 배우고 있는 걸까.

그런데 요즘은
그 생각마저도 부드럽게 흘려보내게 되었다.
무엇이든
내가 이해할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배워지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들려줘도
그 시절의 나는
받아낼 그릇이 없었을 것이다.
그릇이 생기고 나서야
그 말들이, 그 문장들이, 그 배움이
도착할 수 있었다.

관계를 다시 배우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포기’와
훨씬 더 많은 ‘기다림’을 요구했다.
내 방식이 변한다고 해서
상대도 같이 변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경계를 세운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몇몇 관계는
서서히 멀어져 갔다.

예전 같았으면
그 멀어짐이
상실처럼 느껴졌을 거다.
하지만 요즘은
그 멀어짐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안다.
어쩌면 그 관계는
이미 오래전에
나에게서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억지로 붙잡고 있었을 뿐.

책에서는 말한다.
“당신이 노력해야 유지되는 관계라면
이미 한쪽은 부담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장면들이
조용히 떠올랐다.

내가 더 노력해야 유지되던 관계들.
내가 더 이해해야만 버티던 관계들.
내가 계속 이유를 만들어줘야만
그 사람의 행동이 의미가 있었던 관계들.

그 관계들은
사실 진작에 끝나 있었는데
나만 혼자
그 끝을 인정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이제는
그 끝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모든 관계가 오래 유지될 필요는 없고
모든 사람이 내 곁에 남아 있을 필요도 없다.
어떤 사람은
내 삶의 일정 구간만 함께 걷는 사람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내 방향이 바뀌면서
부드럽게 멀어지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걸 인정하고 나니
삶이 한층 가벼워졌다.
나는 이제
떠나는 사람에게
애쓰지 않고
머무는 사람에게
조금 더 따뜻하게 마음을 쓴다.

이 변화는
내 감정의 안전을 지키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예전에는
사람에게서 상처받으면
그 상처를 더 크게 키웠다.
상대의 행동을 과하게 해석하고
그 해석 속에서
나를 자책했다.
하지만 요즘은
상처가 생기면
그 상처를 ‘지금 이 감정’으로만 바라본다.
확대하지 않고
의미를 덧붙이지 않고
그저 그 순간의 감정으로 다룬다.

그러다 보니
상처가 오래 남지 않는다.
예전에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둘, 셋, 넷…
며칠이고 반복해서 꺼내보며
혼자서 다시 아파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젠 그 반복이 줄었다.

상처를 기억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책에서는
“상처를 복기하는 방식이
당신의 감정 구조를 결정한다.”
라고 말한다.
처음엔 큰 의미를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살면서 점점 알게 되었다.
상처는
기억하는 방식에 따라
날카롭게도
둔하게도
혹은
그냥 지나가는 감정으로도 살아남는다.

나는 예전보다
상처를 훨씬 덜 날카롭게 기억하게 되었다.
그저 그런 날이 있었던 것뿐이라고
잠잠히 넘기는 일이 많아졌다.

이런 변화는 누가 나를 구해줘서 생긴 게 아니다.
내가 나를 봐주는 방식이
조금씩 바뀌었기 때문에 생긴 변화였다.

요즘 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이전보다 훨씬 넓은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 넓음은
상대에게 여유를 주기 위한 넓음이 아니라
내가 내 감정이 휘둘리지 않을 만큼의 넓음이다.

상대가 건넨 말이
조금 거칠어도
예전처럼 바로 무너지지 않고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 천천히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 천천함 속에서
나는 내 감정을
더 정직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정직함은
관계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오래 유지시키는 힘이었다.
억지로 괜찮은 척하는 관계는
언젠가 금이 간다.
하지만 서로의 감정을
조금씩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관계는
견디는 힘이 강하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나니
나는 관계에서
불필요한 긴장감을 내려놓게 되었다.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던 방식에서
서서히 벗어나
‘내가 편안한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 변화는
겉으론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내 삶에선 아주 큰 균열을 만들었다.
좋은 의미로 말이다


요즘은
사람 때문에 크게 흔들리는 일이 드물어졌다.
그게 내가 차가워진 것 때문이 아니라는 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예전보다 마음이 더 따뜻해졌다.
다만 그 마음을
‘무작정 다 주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지킬 수 있는 선 안에서 주는 방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예전의 나는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썼다.
나의 가치를
상대의 반응에서 찾으려고 했고
상대가 조금만 멀어지면
나라는 사람 전체가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이제 생각해보면
그건 상대가 나를 흔든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붙잡지 못해서 흔들렸던 것이다.

책에서는
“당신을 지키는 사람에게 마음을 써라.”
라는 문장이 나온다.
나는 처음에 이 문장을
너무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당연함’을
나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지킨 적이 없었다.

나는 늘
지켜주지 않는 사람에게 마음을 더 썼고
내 감정보다
상대의 감정을 먼저 챙겼고
내가 다 드러나는 관계에서조차
상대의 태도에 따라
내 마음을 줄였다 늘렸다 하며 살았다.

그런 방식이
언제 어떻게 시작된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쩌면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관계 속에서
내 몫보다 더 많은 무게를 들어왔던 것 같다.
그 무게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다른 방식이 있다는 걸
아예 몰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
상대가 나를 존중해주면
그 존중에 맞게 따뜻함을 내어주고
상대가 내 경계를 넘어서려 하면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나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
더는 죄책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 변화는
아무에게도 쉽게 보이지 않는
아주 조용한 변화이지만
내 삶 전반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얼마 전,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이
예전처럼 나에게 무심하게 굴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내가 뭔가 잘못했나?’
‘왜 이런 태도를 보이지?’
몇 날 며칠을 그 의미를 찾아 헤맸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놀라울 만큼 담담했다.
그 사람의 태도는
그 사람의 상태였을 뿐이고
그것이 곧
나의 가치나 잘못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지인의 말투에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고
지나치게 마음을 쓰지도 않았다.
조용히 마음속으로
“오늘은 저 사람한테 여유가 없었나보다.”
라고 말한 뒤
그 감정을 그대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게 가장 놀라웠다.
상대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내 감정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나는 이 변화가
마음의 독립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가까이 지내되
감정적으로 과하게 엮이지 않는 상태.
상대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도
내 감정을 숨기지 않고
내가 느끼는 것들을
정직하게 인정할 수 있는 상태.

이런 마음이 생기고부터
관계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거리를 두어야 할 관계는
무리하지 않아도
스스로 멀어졌다.
내가 지키고 싶은 관계는
내가 억지로 붙들지 않아도
조용히 나에게 남아있었다.
이 단순한 사실이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싶다.

이제는 안다.
내 마음을 지키는 방식이 바뀌면
관계의 질이 달라진다는 걸.
그리고 삶의 무게 또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가온다는 걸.

책에서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사람을 멀리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필요한 만큼의 거리에서
필요한 만큼의 정성을 주면 된다.”
라고 적혀 있다.

나는 이 말을
요즘 내 삶의 중심에 놓아두고 있다.
사람을 완전히 밀어내지 않으면서도
내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거리.
그 거리를 찾기까지
수년이 걸렸지만
지금은 그 거리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거리를 알게 되자
사람과의 관계가
오히려 더 따뜻해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고
억누르지 않고 표현할 수 있고
상대의 감정에 과하게 흔들리지 않으면서
내 감정도 숨기지 않는 방식.

그게 얼마나 자유로운지
요즘의 나는 몸으로 느끼고 있다.


가끔은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아직도 예전 방식 그대로
관계 안에서 휘청거리며 살고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
나는 누군가에게 잘해주는 걸
어떤 의미에서는
나 자신을 존재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삼았고
그걸 당연한 습관처럼 사용해왔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희생’이라고 믿었던 시절이
정말 길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많이 달라졌다.
좋은 일이 생기면
예전처럼 급하게 나누고 싶어 하지 않고
슬픈 일이 생겨도
누구에게 붙잡히듯 기대지 않는다.
어떤 감정도
조금은 느리게,
조금은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건
책 속의 인사이트보다
내 안에서 조용히 일어났던 변화들이었다.
책이 나를 완전히 바꾼 건 아니지만
분명히
내 삶을 ‘조금 다르게 사는 힘’을 만들어줬다.

예전의 나는
대부분의 관계에서
“내가 더 잘해야 한다”라는 압박을 느꼈다.
지금은 그 압박이
조금씩 사라졌다.
내가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진짜로 나를 아끼는 관계는
나를 떠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 안쪽에 쌓였던 여러 겹의 두려움이
조용히 벗겨지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사람이 나를 떠나는 것보다
내가 나를 잃는 게 더 무섭다는 걸 안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것도
내 마음을 받는 것도
조금은 천천히 하고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를 주면
예전처럼 바로 무너지지 않고
그 상처가 던지는 의미를
천천히 바라본다.
그 과정에서
상처는 생각보다 빨리 흐려지고
내 마음은
생각보다 더 쉽게 회복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제
나 스스로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너는 혼자 잘해주지 않아도 돼.
너도 기대도 되고,
기대고 싶을 때 기대도 되고,
너도 지칠 수 있고,
너도 쉬어도 되고,
너도 사랑받아도 돼.”

이 문장은
아마 나 자신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문장일 것이다.
그리고 이 문장을 알게 된 건
이 책 덕분이다.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는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답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그 대신
내 마음 속에 오래 묻혀 있던 감정들의 모양을
하나씩 보여주는 책이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살다 보면
사람 때문에 아픈 일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 때문에
내가 나를 잃을 이유는 없다.
이 책은
그 단순하지만 중요한 진실을
아주 다정한 방식으로 알려주었다.

나는 이제
조금은 더 단단하면서도
조금은 더 부드러운 마음으로
사람을 대한다.
예전처럼 무조건 잘해주지 않고
그렇다고 마음을 완전히 닫지도 않는다.
필요한 만큼 주고
필요한 만큼 거리를 두고
내가 흔들리지 않는 범위에서
관계를 이어간다.

이 정도면
내 삶에는 충분한 변화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토록 오래 기다려온 변화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이 변화가 앞으로도
나를 더 좋은 방향으로 데려갈 거라는
확신 같은 것을 조용히 느낀다.
누군가에게 잘해주는 것보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되는 법을
이제서야 배우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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