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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제작한 책 리뷰 The 5 AM club 글 포스팅 대표 썸네일 이미지

The 5 AM Club-조용한 한 시간이 바꿔놓은 나의 삶

사실.. 처음 이 책 제목을 들었을 때 나는 솔직히 그냥 나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왔었다
그건 ‘5시에 일어나라’는 메시지는 이미 수없이 들어왔었고
늘 그 끝은 “아… 나랑은 안 맞아”로 마무리되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The 5 AM Club》이라는 제목은
그저 수없이 소비되는 자기계발 문구 중 하나라고 생각 되었고 나와는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 되었다
그냥…내 삶의 리듬 자체가 밤에 가깝다고 믿어 왔기 때문에 그랬었다

그치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집어 들게 된 것은
요즘의 내 삶이 이상하게 방향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딱히 무너지지도 않았고,
나쁘지도 않았고,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딘가 조금씩 ‘잠겨가는’ 느낌이 있었다.

정말 무게가 무거운 것도 아닌데
뭔가 손에 힘이 안 들어가는 느낌..
왜 그런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냥 계속 쌓여만 가는 피로감.
누구에게 털어놓을 만큼 큰 고민은 아닌데
매일 묵묵하게 바닥에 깔려 있는 무기력함 같은 것들.

말하자면 ‘번아웃에 가까운데 번아웃 같지 않은 상태’라고 해야 할까?..

그런 날들이 계속 길어지면서
나는 문득 ‘아,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게 뒤집을 수 있는 건 없었지만
적어도 아주 작은 부분에서라도
삶에 틈을 하나 내고 싶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타이밍에 우연히 마주친 책이
바로 《The 5 AM Club》이었다.

책의 첫 장을 넘기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책이 ‘일찍 일어나는 법’이나
‘아침 루틴 만들기’ 정도를 이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이 책의 내용의 방향성이랄까? 그건 완전히 내 예상 밖이었다.
자기계발서라기보다
소설처럼 이야기가 흘러갔다.
마치 인물들과 함께 새벽을 걷는 느낌이랄까…

특히 인물들이 가진 결핍과 상처,
그리고 ‘변화하고 싶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 삶의 구조’가
내 삶과 너무 비슷하게 겹쳐졌다.

그래서 책의 메시지는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내 삶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묵직한 감정들을
그대로 건드렸다.

책 속 멘토가 한 말 중에
유난히 오래 남았던 문장이 있다.

“당신이 자신을 만나는 첫 시간이 바로 당신의 삶을 결정합니다.”

처음엔 그냥 그럴싸한 멋진 하나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장이 넘어갈수록
이 말은 내 마음 어딘가를 툭툭 건드리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 나를 만났던가?
하루를 시작하면서
내가 가장 먼저 마주한 존재가
과연 ‘나’였던 적이 있었던가?’…

솔직히 말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루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핸드폰을 들여다봤고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일들, 메시지들, 알림들, 일정들,
그 모든 것들이 나보다 먼저 내 하루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늘 뒤늦게 따라가는 사람이었다.

책 속에서 말하는 5AM의 의미는
단순히 “시간을 일찍 확보하라”가 아니었다.

아무도 당신을 요구하지 않는 시간.
아직 세상의 목소리가 일어나지 않은 시간.
감정이 쌓이기 전,
피로가 쌓이기 전,
나를 꾸미기 전에
‘가장 맨 얼굴의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

그게 바로 새벽 5시라고 했다.

나는 그 설명을 읽는 순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감정이 올라왔다..

내가 너무 오랫동안
‘맨 얼굴의 나’를 잃어버리고 살았다는 걸
조용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늘 뭔가를 감당하느라 바빴고
마음은 늘 마지막 순서였다.
그래서 어떤 날은
‘내가 주체가 되어 삶을 살아가고 있는건가,
아니면 삶 속에 피동적으로 그냥 굴러가고 있는 건가’
라는 혼란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아주 조용하지만 분명한 한 문장을 던졌다.

“아침의 주도권을 되찾으면, 삶의 주도권을 되찾게 됩니다.”

책 속 20/20/20 포뮬러는
내게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운동 20분
성찰 20분
성장 20분

너무 단순해서
처음엔 조금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하루에 이 세 가지를
한 번도 ‘온전히’ 해본 적이 없었다.

운동은 늘 다음이나 내일로 미뤄졌고
성찰은 감정이 너무 뒤엉키는 밤에만 가끔 겨우 몇 줄 끄적이는 수준이었고
성장은 언제나 ‘언젠가 해야지’라는 막연한 생각 속에만 있었다

그런데 아침이라는 시간은
이 세 가지를 위한 가장 최적의 빈 자리였다.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 시간,
아무것도 나에게 요구하지 않는 시간.

그 시간의 한 구석을 나에게 온전히 허락한다는것..

그 단순함이 묘하게 깊은 울림을 만들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여러 번 마음이 조용히 무너졌다.

나도 모르게
내가 ‘좋아하는 삶’이 아니라
‘버텨지는 삶’을 살고 있었다는 걸
순간순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선택들은 몸이 선택한 것이었고
내 방향은 피로가 결정해주었고
내 하루의 분위기는
외부의 조건들이 만들어 준 것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하루의 창문을 열기 전에
이미 누군가의 소리로 가득 채워진 상태로 시작하고 있었다.

그 방향을 바꾸는 가장 작은 단위가
아침 5시라는 사실이
당황스럽도록 컸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과거의 나를 여러 번 떠올렸다.

새벽을 좋아하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 새벽을 더 이상 살지 않게 되면서
내 마음은 조금씩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굳어갔다.

새벽에 걸었던 길,
그 시간의 적막,
햇빛이 완전히 뜨기 전의 차가운 공기,
세상이 깨어나기 직전의 적요한 순간들.

나는 그 시간을 사랑했었는데
언제부턴가 잃어버리고 있었다.

《The 5 AM Club》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잃어버린 감정의 조각들을
하나씩 다시 만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그 시간의 나를 좋아했구나.”

책 속 인물들의 변화는
내게 다소 과장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엔 이상하게 깊게 들어왔다.

아마도 그 변화의 과정이
정말 거창한 것이 아니라
너무 작은 단위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하나의 습관.
아침의 자투리 시간 하나.
오로지 나만을 위한 고요한 1시간.

그 작은 것들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거대한 축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부분에서
혼자 오래 멈춰 있었다.

왜냐하면 그 방향의 전환이
지금의 내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책의 절정 부분에서
나는 아주 중요한 문장을 만났다.

“당신이 하루의 아침을 바꾸게 되면 하루 전체를 바꿀 수 있게 되고,
하루를 바꾸게 되면 인생 전체를 바꿀 수 있다.”

이 문장이 너무 유명해서
이미 알고 있었는데
막상 책의 흐름 속에서 다시 만나니
전혀 다른 깊이로 다가왔다.

그때 나는
“아… 이제 정말 뭔가를 바꿔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진심으로..진짜로 하게 되었다.

그동안의 나는
변화를 갈망하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작은 시도가
아마도 내 삶의 첫 단추가 될 것 같다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책을 덮기 전 이미
첫 5AM을 결정하고 있었다.

핑계나 계획 없이.
그냥 해보고 싶은 마음 하나로.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날의 결심이
내 삶의 여러 갈래를 조용히 바꿔놓았다.


첫 5AM 도전은
책을 덮자마자 찾아온 다음 날이었다.

알람을 5시에 맞추고 잠들기 전에 여러 번 다짐을 했다.

“내일은 무조건 일어난다.”
“한 번만 해보자.”
“해보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다.”

그런데…
뭐랄까, 의욕이 넘쳐 잠들었기 때문에
아침엔 더 힘들었다.

알람이 울리던 순간
진짜로 내 두 눈은 돌처럼 무거웠다.

설명할 수 없는 피로가
천장에서 떨어져
온몸에 들러붙는 느낌이었다.

몸은 완전히 반대편에 있었다.
이불은 내 다리를 잡고 등은 침대에 녹아드는 것 같았다.

누가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면
“저 사람은 절대 못 일어날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날의 나는…정말로 그러했다.

알람을 끄고
다시 눈을 감을까 고민했다.

잠깐만 더…
단 10분만…
그 작은 유혹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머릿속에서
책 속 문장이 아주 또렷하게 떠올랐다.

“당신 자신을 먼저 만나는 시간은
세상이 빼앗아갈 수 없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이 문장이
아침의 적막보다 더 크게 들렸다.

그리고 나는
허겁지겁 일어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조금 울컥하며’ 일어났다.

내가 나를 너무 오랫동안
다른 모든 것보다 뒤에 놓고 살았다는 사실이
그 순간에 유난히 깊게 와 닿았다.

그 감정이 첫 5AM에 나를 일으킨 유일한 힘이었다.

침대에서 발을 내디디는 일이
이렇게 큰 의미가 될 줄 몰랐다.

새벽의 공기는 차갑고 묘하게 비어 있었다.
그런데 그 비어 있음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내 마음이 참았던 숨들을
천천히 들이마시는 느낌이었다.

운동이라고 하기엔
민망한 수준의 몸풀기였지만
그 작은 움직임이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근육이 깨지는 것이 아니라
잠들어 있던 ‘내 의지’가 깨지는 것 같았다.

견고하게 굳어 있던 습관의 층 사이에서
아주 얇은 틈 하나가 열린 것 같은 기분.

조금 허술하지만 그 허술함이 마음을 숨 쉬게 했다.

그 다음 20분,
성찰 시간에는
더 놀라운 일이 있었다.

나는 펜을 잡으면
감정이 왜곡되는 편이다.
누군가가 볼까봐 걱정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스스로를 보는 일을
영 어색해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새벽의 성찰은 편안했다.

어제의 감정,
힘들었던 순간,
말하지 못했던 고민들,
남에게 털어놓을 순 없지만
마음의 밑바닥에 계속 남아 있던 무언가.

그것들을 적는 게
생각보다 자연스러웠다.

마치
내 마음이 하루를 견디기 전에
스스로를 정리하고 싶은 것처럼.

밤에 했던 감정 기록과는
완전히 다른 결이었다.

밤은 복잡했고
새벽은 맑았다.

그 차이를 저는 실은 처음 느껴봤다.

마지막 20분은 성장 시간이었다.

새로운 책을 펼칠까 하다가
이 책을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보기로 했다.

놀랍게도
어제 읽었던 문장이
아침엔 다르게 보였다.

“새벽은 당신에게 기회를 건네지만
그 기회를 붙드는 건 당신의 용기다.”

평범한 자기계발 문구 같지만
그날 아침엔 정말…
정말로 마음 밑바닥을 건드렸다.

내가 그날 붙잡은 건
용기라기보다
나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에 가까웠다.

그동안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일,
해내야 하는 일,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
누군가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는 마음들.

그 모든 것들 뒤에서
나는 내 감정을 제일 마지막에 놓고 있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몸이 조금 떨렸다.

책 속 인물들이 겪은 변화가
나에게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내 삶이 이미
그 변화의 필요성을 꽤 오래 전부터
속삭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첫 5AM의 끝에서
나는 아주 조용하지만
확실한 결론을 하나 내렸다.

“아…
이 시간을 계속 지키고 싶다.”

이건 어떤 성취감도 아니었고
의무감도 아니었고
‘내 인생 이제 바뀌어야 해!’ 같은 거창한 각성도 아니었다.

그냥
내 마음이 조금 덜 고장난 것 같다는 느낌.
조금 덜 흔들리는 느낌.
조금 덜 지친 느낌.

그 정도였는데 그것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 다음 날부터 바로 성공한 건 아니다.

둘째 날은
5시에 알람을 나도 모르게 꺼버리고
그냥..50분 가까이 다시 잠들어 버렸다.

글개서 다시 깨어났을 때
짜증이 확 나버렸다.
내 자신이 왜 이렇게 나약한가 싶었고
왜 이렇게 성실하지 못한지 정말 실망스러웠다.

나라는 사람은 그냥 이 정도의 사람인가? 이게 진짜 내 모습인가?
라는 생각이
씁쓸하게 떠올랐다.

그런데 책 속에서
습관 설치 기간에 대해 말했던 글귀가 떠올랐다.

“변화는 불편함을 반드시 동반한다.
이 불편함을 피하는 대신
그 불편함을 관찰하는 순간
습관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그 문장을 생각하자 조금은 달라졌다.

나는 나 자신에게
처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이 문장은
누군가 나한테 해준 말보다
내가 나에게 한 말이라서
훨씬 더 큰 힘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3일째 도전을 이어갔다.

생각보다
작은 실패와 작은 성공들이
교차했다.

어떤 날은
알람이 울리자마자 벌떡 일어났고
또 어떤 날은
알람을 끄고 침대에 그대로 있었으며
또 어떤 날은
몸이 움직이는데 마음이 울컥했다.

이 ‘들썩임’이
습관이라는 과정을
가장 인간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나는 완벽하게 일어나는 사람도 아니었고
매일 흐트러지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조금씩 흔들리고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이게… 변화구나.”

그 순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변화는 꾸준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돌아오는 사람이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음속에
아주 희미하지만
확실한 씨앗 하나가 생겼다.

“아침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돌아오는 길일지도 모른다.”

그 길은 생각보다 좁고
때로는 어둡고
때로는 헤매기 쉬웠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그 길을 걸어본 사람은 안다.

그 길 끝에
조용히 앉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바로 ‘진짜 나’라는 것을.

이제 막 5AM 도전이 시작되었을 뿐인데
나는 이미
그 길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은
내가 잃어버렸던 감정들을
하나씩 다시 데려오는 길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5시에 일어나는 일이
처음의 결심처럼 격렬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편안하지도 않았다.

이상한 중간 지점.

몸은 여전히 버거워했지만
마음은 조금이라도 일어나고 싶었다.
마음이 몸을 끌어당기고
몸이 마음을 붙잡고 버티는 그 미묘한 줄다리기.

어떤 날은 마음이 이겼고
어떤 날은 몸이 이겼다.

그러나 중요한 건
내가 그 줄다리기를 ‘의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의 나는
그저 ‘피곤하니까 못 일어나겠지’라고 단정했는데
지금은 피곤함 뒤에 숨어 있는 감정들을
조금씩 구별할 수 있었다.

‘피곤함’이 아니라
‘의욕 상실’일 때가 있었고,
‘실망’일 때가 있었고,
‘두려움’일 때도 있었다.

아침은
그 모든 감정을 가장 투명하게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밤에는 감정이 어둠 속에 섞여 너무 무겁게 보였는데
아침에는
마치 맑아진 창문 너머로
감정의 형태가 더 또렷하게 보였다.

그 시기쯤
나는 삶의 여러 부분에서
아주 미세한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업무를 시작하는 방식이
한결 단단해졌다.

이전에는
늘 일이 나를 휘둘렀다.
마감은 갑자기 밀려오고
메시지는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터지고
해야 할 일들이 뒤섞여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새벽에
스스로의 감정과 하루의 방향을 먼저 잡아두니
업무의 혼란이
날카롭게 흔들리기보다
내가 이미 마련해둔 흔들리지 않는 바닥 위에서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아침에 마음을 정리해두면
낮의 일들은
그 마음 위에 차곡차곡 쌓일 뿐이었다.

나는 또 다른 변화도 발견했다.

‘감정 회복 속도’가 빨라졌다.

나는 평소에 아주 사소한 말에도
마음이 쉽게 휘청이는 편이다.
칭찬엔 과하게 들뜨고
비판엔 과하게 흔들리고
다른 사람의 표정 하나에도
내 기분이 심하게 흔들릴 때가 많았다.

그런데 5AM 루틴을 시작한 후
내가 그 감정에서 회복되는 속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마음이 흔들리면
그 흔들림이 하루 종일 남아 있었다.

지금은 흔들리는 순간은 똑같이 오지만
그게 오래 남아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루의 첫 페이지가
이미 아주 단단하게 써져 있기 때문이다.

아침의 고요 속에서 한 번 스스로를 다독이고
하루의 감정적 방향성을 잡아놓으면

낮의 흔들림은
마치 물결이 바위에 부딪히는 것처럼
금방 흩어졌다.

그리고
가장 예상 밖의 변화가 있었다.

관계.

나는 원래
누군가의 감정에 과하게 민감한 편이다.
상대가 살짝 예민한 말투를 쓰면
내 잘못이 아닌데도
혼자 죄책감을 느끼는 날도 많았다.

그런데 새벽 루틴을 시작한 후
관계에서의 감정 균형이
조금씩 바뀌었다.

상대의 감정을 내가 ‘받아내는’ 방식이
서서히 달라졌다.

예전의 나는
상대의 감정이 내 마음에 그대로 들어왔고
그걸 소화하느라 하루 종일 힘들어했다.

지금은 감정이 들어오긴 하지만
내 안에서 ‘정리할 줄 아는 힘’이 생긴 느낌이었다.

아침에 내 감정을 먼저 정리하고 나니
낮에 누군가의 감정이 들어와도
그게 바로 내 내부로 파고들지 않았다.

어떤 날은
상대가 예민하게 말해도
그냥 “아, 오늘 힘들었구나” 하고
훨씬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부드러움은
상대에게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흔들리지 않는 데서 오는 부드러움이었다.

처음으로
관계 안에서 ‘나’를 잃지 않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진짜 변화는
한동안 눈치채지 못하는 방식으로
조용히 일어났다.

그건 바로
‘자존감의 회복’이었다.

나는 오래 동안
스스로를 의심하는 사람이었다.
대단한 실패를 경험한 것도 아니고
큰 상처를 받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늘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곤 했다.

성공해도 불안했고
칭찬을 들어도 불편했고
무언가를 해내도
그 순간만 지나면
또다시 나 자신을 의심했다.

그런데 새벽 루틴은
자존감을 억지로 높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자존감을 ‘조용히’ 일으키는 방식이었다.

내가 나에게 한 작은 약속.
그 약속을 하루에 한 번씩 지켜낸다는 감각.

그 감각이 쌓이자
나는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 자신을 믿기 시작했다.

“아, 나 이런 것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 한 문장이
마음의 작은 벽을 밀어 올렸다.

어떤 날은
5시에 일어나면서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차오르는 날도 있었다.

감정이 북받쳐서 울음이 나온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나를 다시 만나고 있다는 감각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울컥한 감정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외로운 순간은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게 아니라
스스로를 잃어버린 순간이라고들 한다.

나는 아마
그 순간을 꽤 오래 살았던 것 같다.

새벽은
내가 잃어버렸던 나의 조각들을
조용히 다시 데려오는 시간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더 깊은 변화도 생겼다.

나는 처음으로
‘삶의 주도권’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전의 나는
삶에 끌려다니는 사람이었다.
일이 나를 흔들고
사람이 나를 흔들고
세상의 일정에 따라
내 감정이 끌려갔다.

이제는 아주 작은 변화이지만
확실히 방향이 달라졌다.

내가 하루의 첫 문장을 쓰고 시작하니
하루의 다음 문장들이
그 첫 문장을 따라오는 느낌이었다.

새벽의 고요는 나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방향을 보여주는 시간이었고

그 방향이 잡히니
삶 전체의 흐름이
서서히 정렬되는 느낌이었다.

가장 신기했던 건
시간 사용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예전엔 시간이 자꾸 ‘새는’ 느낌이었다.

어디에 썼는지도 모르겠는데
시간은 이미 저녁이 되어 있었고
그날의 할 일은 휘몰아치는 속에서
매번 뒤엉켰다.

지금은
새벽에 마음을 정리해두고 나니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가
다르게 느껴졌다.

해야 할 일이 많아도
머릿속이 덜 어지러웠고
각 업무 사이의 전환도 더 부드러웠다.

마음이 조급하지 않으면
시간도 조급하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이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또 하나
책을 읽고 중요한 구조를
본격적으로 실행하면서
삶의 패턴이 진짜로 바뀌기 시작했다.

20/20/20 포뮬러.

운동 20분.
성찰 20분.
성장 20분.

이 구조는 생각보다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 삶에 적용하면
‘내 삶의 기반’을 완전히 새롭게 짜는 힘이 있었다.

20분 운동은
몸을 깨웠고
그 몸의 느낌이 하루를 붙잡아주었다.

20분 성찰은 감정을 정리했고
내 마음의 흐름을 투명하게 보여주었다.

20분 성장은
머리를 맑게 해주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었다.

하루의 60분이 하루의 나머지 23시간을
완전히 다르게 만드는 구조.

나는 그 구조를
처음엔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진짜 의미를 아주 분명히 알고 있다.

5AM은
내 삶에서 처음으로
‘삶을 다시 설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 시간이었고

그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놓쳐버렸던
‘내 삶의 중심’을 다시 찾고 있었다.


습관이 자리 잡는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개념이 바로
책 속에서 자주 언급된 66일 주기였다.

21일이 아니라
66일.

습관이 완전히 삶의 일부가 되기까지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는 뜻이었다.

처음엔
“66일이나? 나는 절대 못 하겠는데?”
이런 마음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새벽 기상을 시작해보니
66일이라는 숫자가
이상하리만큼 ‘정확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새벽 기상은 처음 며칠은 의지가 강해도
10일, 14일, 18일쯤 되었을 때
기이한 파도가 한 번씩 찾아오기 때문이다.

피로가 누적되는 것도 아니고
몸이 힘든 것도 아닌데
어디선가 느닷없이 올라오는
이유 모를 저항감.

이 저항이
습관 형성의 가장 큰 적이었다.

한 11일째 되는 날이었다.

아침 5시에 눈을 떠야 하는데
손가락이 스마트폰 화면에서
스르륵 알람을 꺼버렸다.

아무 생각 없이.

마치 몸이 먼저 반응한 것처럼.

다시 눈을 뜬 시간은
6시 40분쯤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말도 안 되게 화가 났다.

왜 이렇게 꾸준하지 못하지?
이 정도도 못 하는 사람인가?
또 포기하나, 또?

감정이 푹 꺼지는 느낌이었다.

그날 아침에 적으려 했던 일기는
아예 쓰지도 못했고
몸은 괜히 무거웠고 마음은 더 무거웠다.

어떤 날은
습관보다
내 감정의 기복과 싸우는 게
더 어렵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 밤 책 속 한 구절을 다시 읽게 되었다.

“습관의 정착은 자연스러운 균열과 회복의 반복이다.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너져도 돌아오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이상하게 숨이 조금 놓였다.

‘무너져도 돌아오는 사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건
오히려 그 문장이었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 컸고
한 번 깨지면
그걸 실패라고 단정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런데 새벽은
도망가는 나를 책망하지 않았다.

그저
“다시 오면 돼.”
라는 느낌으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12일째 되는 날
나는 다시 5시에 일어났다.

도망쳤지만
또 돌아온 것이다.

그날의 새벽은
앞선 새벽들과 다르게
조금 더 깊었다.

조금 더
‘내가 여기에 서 있다’는 감각이 분명했다.

사실
바로 그 순간이
변화의 핵심이었다.

완벽한 며칠이 만드는 변화보다
흐트러진 날에서 다시 돌아오는 그 하루가
변화를 훨씬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걸
그날 알았다.

20일쯤 되었을 때
나는 또 한 번 큰 벽을 만났다.

몸이 아니라 감정이 지쳐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긴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고
일기를 쓰려고 펜을 잡는데
단어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생각이 복잡해서가 아니라
생각이 비어 있었다.

그날의 나는 어떤 감정도 꺼내 쓰기 힘들었다.

감정이 너무 멀리 있었다.

그런 날은
사람 마음을 괜히 불안하게 만든다.

“아침 루틴이 나에게 맞지 않는 건가?”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괜히 헛걸음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 질문들이
새벽의 고요 속에서
더 크게 울려 퍼졌다.

고요는 때때로
자기 자신을 너무 솔직하게 보게 만드는 시간이라서
그 솔직함에 마음이 놀랄 때도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다고 해서
새벽 루틴을 그만두고 싶어지진 않았다.

몸은 지쳤지만
그 지침 속에서
아주 희미한 무언가가
계속해서 나를 이끌고 있었다.

아마 그건
‘회복하고 싶은 마음’
혹은
‘내 마음과 다시 이어지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삶이 벅차게 느껴지는 날에도
새벽은
내가 나에게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무대처럼 느껴졌다.

30일쯤 되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아침이 필요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전에는
아침이 ‘루틴’이었고
‘도전’이었고
가끔은 ‘의무감’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아침이 하나의 ‘자리’였다.

사람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서 있어야 하는 자리.

하루의 정신이
제일 먼저 내려앉는 자리.

그 자리가 이제 내 안에 생긴것이다.

그러고 나니
이상하게도
새벽의 고요함이
내 삶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마치 내 마음의 먼지들이 가라앉는 시간처럼
그 시간이 없으면
하루가 조금 흔들리는 날도 있었다.

습관 40일차쯤
나는 또 한 번 의외의 벽을 만났다.

이번엔 ‘삶의 피로’였다.

루틴을 유지하는 것 자체보다
현실의 고민, 인간관계, 일의 압박 등
하루 동안 겪는 감정의 총량이
갑자기 무겁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무게는 새벽에도
그대로 내 앞에 있었다.

어떤 날은
미묘한 슬픔이 먼저 올라왔고
어떤 날은
불안이 먼저 올라왔다.

그 감정들을
아침에 가장 맑은 상태에서 마주해야 한다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러나 그 어렵다는 사실이
오히려 아침의 의미를 더 깊게 했다.

아침은
기분 좋음만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나를 가장 솔직하게 마주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감정이 복잡한 날일수록
아침은 더 필요했다.

그날의 감정을
먼저 꺼내보고
쓴맛을 먼저 맛보고
정리가 되지 않아도
그냥 ‘마주하기만’ 해도

하루는
전혀 다른 결로 흘러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이 책의 메시지를
비로소 몸으로 이해했다.

“새벽에 자신을 만나고
그 자신과 하루를 함께 살아라.”

이 문장이
그냥 ‘좋은 말’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완전히 바꿔놓는 말이라는 걸.

습관이 50일쯤 되었을 때
가장 큰 변화가 찾아왔다.

이 변화는
눈에 보이는 성취가 아니라
내면의 정렬이었다.

감정의 방향.
하루의 리듬.
생각의 결.

이 모든 것이
묘하게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재배치되고 있었다.

나는 그때 느꼈다.

“아,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삶의 중심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고 있구나.”

그 감각은 무슨 자기계발적 흥분이 아니라
너무나 조용한 확신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벗어났던 길을
다시 찾는 느낌.

삶에 밀려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중심에서 조금씩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66일쯤 되었을 때
나는 아주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 깨달음은
모든 변화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시간을 버는 일이 아니라
나를 되찾는 일이다.”

나는 그 사실을
이제야 깊이 알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이 책을 읽은 진짜 이유였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새벽은 누구의 것도 아닌
오직 나만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나는
내 마음의 조각들을 하나씩 다시 주웠고
내 안의 소리를 다시 들었고
내 삶의 온도를 다시 맞췄다.

그 시간 덕분에
나는 다시
나의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책을 읽고 새벽 기상을 시작한 뒤
두 달이 조금 지나고
세 달이 가까워졌을 때
나는 비로소 어떤 변화를 ‘깨달음’으로서가 아니라
‘실감’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변화는 보통
삶의 앞쪽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항상 뒤에서,
아주 천천히 자연스레 퍼져
어느 날 문득
“아, 내가 조금 달라졌구나” 하고
깨닫게 하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그때야 비로소
그 변화는 사실 한참 전부터 시작되어 있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이제 본격적으로 내게 이루어지기 시작한 작은 작은 변화들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감정의 ‘기본값’이 바뀌었다

예전의 나는
감정의 기본값이 불안, 초조, 가벼운 스트레스였다.

별일이 없는데도
마음 한쪽에서 얇은 잡음이 계속 나는 것처럼
이유 없이 생각이 복잡해지고
사소한 말에도 감정이 출렁거렸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자
감정의 기본값이 ‘조용함’에 가까웠다.

하루의 첫 시간을
오롯이 나에게 사용하면서
마치 마음의 바닥이 다져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엔
하루를 출발하기도 전에
이미 어딘가 기울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하루의 출발선이 반듯해졌다.

그 작은 차이가 삶 전체의 느낌을 바꿔놓았다.


나 자신에게 던지는 말이 달라졌다

예전의 나는
나에게 말할 때
유난히 인색했다.

“왜 이렇게 꾸준하지 못해.”
“또 실패하네.”
“넌 정말 이런 게 안 되지.”

그 말들은 누구도 듣지 못하지만 내 마음에는 칼날처럼 남았다.

그런데 새벽 기상을 오래 하다 보니
내가 나에게 던지는 말의 톤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괜찮아. 오늘 조금 늦었지만 다시 시작하면 돼.”
“어제 힘들었으니까 오늘은 천천히 해도 돼.”
“네가 해낸 것들은 충분히 의미 있어.”

이 말들은 누군가가 내게 해준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해준 말이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삶의 방향 전체를 조금씩 바꾸었다.

나를 압박하며 살아가는 사람에서
나를 격려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이 변화는 어떤 성취보다 내 마음을 깊게 흔들어 놓았다.

내가 내 삶을 ‘저마다의 속도로’ 살기 시작했다

이전엔
늘 누군가의 속도를 따라가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SNS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성과,
회사에서 뛰어난 동료들,
이루어낸 사람들,
이미 앞서 가는 사람들.

그들과 비교하면
내 속도는 늘 너무 느렸다.

그런데 새벽을 보내며 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배웠다.

“삶에는 빠른 속도도, 느린 속도도 없다.
오직 나에게 맞는 속도만 있다.”

나는 그 속도를 아침에서 찾았다.

남의 속도에 맞추느라
내 마음이 마모되는 일들이 줄어들었다.

내가 만든 하루의 속도를 내가 걸어가는 것.

그 단순한 리듬 덕분에
삶의 피로가 훨씬 덜어졌다.

불필요한 감정적 소모가 줄어들었다

감정을 통제하거나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고 흘려보내는’ 능력이
생겨났다.

아침에 감정을 먼저 들여다보고
가볍게 정리하는 습관이 생기니

낮에 만나는 감정들은
마치 이미 준비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예전엔 감정이 들어오는 즉시
내 안에서 크게 출렁거렸다면

지금은
감정이 들어왔다가
내 중심을 흔들지 못하고
천천히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마음의 복원력이
조용히 강화된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이건 말로 설명하기 가장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변화였다.

예전엔
무언가를 시작할 때 항상
“지금은 괜찮겠지만, 곧 포기하겠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생각은
어릴 때부터 쌓여온 패턴이라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5AM에 대한 작은 약속들을
거듭 지켜내면서
나는 조금씩
‘나에게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 믿음은
성취보다 더 강한 힘을 줬다.

삶이 흔들릴 때
누군가의 말보다
내가 나에게 던진 작은 신뢰가
훨씬 오래 버티게 해주었다.

삶의 목적이 더 또렷해졌다

책을 덮고 시간이 지나자
나는 느리지만 분명한 방향을 보았다.

아침은
삶의 목적을 ‘찾아주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너무 시끄러운 하루 속에서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날카로운 성취의 욕망,
비교의 피로,
눈에 보이는 목표들 사이에서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은
조용하지만 단단한 안정,
내면의 평온함,
그리고 나를 잃지 않기.

그 단순한 진실들이
아침 속에서 조금씩 떠올랐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삶의 본질적인 방향’을 생각하게 되었다.

아침을 지키는 일이
결국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라는 깨달음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 사랑을 실천하는 방식은
삶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나는 그동안
나를 돌본 적이 거의 없었다.

내 감정보다
해야 할 일을 먼저 챙겼고
내 마음보다
누군가의 기대를 먼저 채워주었고
내 피로보다
책임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침은
그 모든 질서를 바꿨다.

아침은
내가 나에게 주는 가장 선명한 시간이었다.

“너는 중요해.”
“너는 먼저 만나야 할 존재야.”
“너는 돌봄을 받을 가치가 있어.”

이 메시지를
말로가 아니라
행동으로 전하는 시간.

그 조용한 사랑이
매일 5시에 쌓이고 있었고
그 사랑이 쌓일수록
나는 내 삶을 더 부드럽고 명확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는 나는 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단순히 시간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내가 하루를 주도하느냐,
아니면 하루가 나를 끌고 가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그리고
내가 내 삶의 중심을 되찾기 위해
필요했던 시간은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그저 조용한 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 《The 5 AM Club》은 정말 나를 바꿔놓았을까?

극적으로?
드라마틱하게?
모든 일상이 뒤바뀔 만큼?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 과장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이렇게 설명하고 싶다.

이 책은 나를 ‘되찾게’ 한 책이다.

삶에 치여 잊어버린 나를
새벽이라는 시간 속에서 다시 만나게 해준 책.

그 만남이 반복되면서
나는 조금씩 회복되었고
내 삶의 방향도 조금씩 정렬되었다.

그 변화는
겉으로 보기엔 아주 작지만
내 안에서는
삶의 축 하나가 분명히 움직인 변화였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가
앞으로 남은 시간에서
얼마나 큰 의미로 커질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이제
하루를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하루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그 방향 전환만으로도
이 책은 나에게
오래, 아주 오래 남게 될 것이다.

……….

나는 여전히 어떤 날은
5시에 못 일어난다.

하지만 그날도
아침의 의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5시에 일어나든
5시 30분에 일어나든
혹은 6시에 일어나든

내가 나를 처음 만나는 그 시간이 있다면
그것이면 충분하다.

이 깨달음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인생을 바꾼 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 삶의 방향을 살짝 틀어준 책.”

그 아주 작은 틀어짐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가 되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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